상상한다! 수십만 개의 비극을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를! 후쿠시마현민 대집회’ 고리야마대회 참관기
다카노 사토시(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지난 3월 8일에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를! 후쿠시마현민 대집회’가 후쿠시마현 내 세 곳에서 동시 개최돼 필자도 참가했다.
서울에 있으면 14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아직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칫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수량으로 표현할 수 없다. 고향과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이 흩어지게 된 14만 개의 비극이 있다. 피난하지 않더라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포함하면 그 비극은 수십만 개에 이를 것이다. 다시금 사고의 중대함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이 대회를 기록하고자 한다.
피폭자,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증언
먼저 후타바마치에서 고리야마시로 피난온 남성이 증언했다. 배상금으로 집을 새로 지었는데 그것은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고, 고향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년간은 다시 일어나는 3년이 아닌, 체념하기 위한 3년이었단다. 끈질기게 버팀으로써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일반적인 재해와는 다른 어려움을 느꼈다.
한편, 그런 고리야마시에서 효고현으로 자주피난 간 어머니도 무대에 올라 증언했다. 고등학생 딸을 가진 이 어머니는 딸이 피폭될까봐 걱정됐지만, 병든 친정아버지와 그를 보살피는 어머니를 두고 갈 순 없다는 생각에 피난 못 가고 있었다. 그런데 단기피난 프로그램에 참여한 딸의 의식 변화를 계기로 상담을 받아 피난을 결심했던 경위를 그는 증언했다.
그것과 동시에 부흥이라는 미명하에 귀환을 우선하고 자주피난에 대한 지원과 대책이 뒷전으로 미뤄지는 것에 대한 분노 또한 호소했다. 부흥이라는 미명하에 가족, 이웃간에 분단이 진행된다는 현실도, 다른 지진 재해 때와 구별되는 현상이다.
고리야마시에 남아 있는 여자 고등학생도 발언했다. 그는 사고 시 후쿠시마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피폭자’라는 딱지가 붙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짊어지게 된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 또 방사능에 식품이 오염되지 않았을까하는 ‘비일상이 일상화’돼 버린 후쿠시마에서, 이것이 본래 당연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후세에 전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사고 이전부터 핵발전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어른들은 핵발전소를 후쿠시마에 지었는가하는 의문을 씻어낼 수 없다고 통절히 말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윤리관과 책임감이 내포된 격조 높은 발언에 눈시울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즐거운 청춘시절을 보내야 할 어린학생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해 버린 어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증언만 보더라도 입장과 직업, 세대, 그리고 거주지역에 따라 피해 양상은 갖가지인데 공통점은 모두가 사고 피해자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종종 잊힌다. 큰 요인 중 하나는 방사능에 대한 생각 차이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피해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방사능에 대한 생각 차이가 그대로 그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차이로 나타난다.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이 비극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
예를 들어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주민을 초청해 서울에서 강연했을 때, 사례 대신 그가 현지에서 가져온 유기재배 면으로 만든 인형을 판매하는 기획을 세우자, 방사능오염을 걱정한 사람들이 행사 개최 중지를 요구했던 일이 있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후쿠시마는 이미 망했다” 등의 선동적인 제목의 기사가 공유되며, “사무라이 정신으로 후쿠시마에 남아 있지 말고, 빨리 피난 갔으면 좋을 텐데…” 식의 너무도 무신경한 의견을 본 적도 있다.
방사능에 대한 생각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후쿠시마에 머무는 이유나 심정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면, 그 차이는 그대로 피해자들의 노력과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말과 태도로 돌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라는 사실의 무게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의 수십만 개의 비극을 하나라도 더 많이 보고 듣고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후쿠시마사고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핵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발행일 : 201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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