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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후쿠시마에서 온 편지

후쿠시마에서 온 편지

 

아유미*

 번역, 오하라 츠나키(편집위원)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깨달았다.

핵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성립된다는 것을, 한번 사고가 나면 제어 불능으로 마구마구 폭주하는 무서운 발전 방식이라는 것을. 핵발전을 추진해 온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고가 나면 막대한 리스크(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그래서 핵발전소를 대도시에는 절대로 건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줘야 할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문제는 뒤로하고 경제 우선 정책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사고 후 나의 생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180도 달라졌다. 방사능이 포함된 쌀, 야채, 고기 등 식품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 먼 곳에서 어렵게 구해서 먹고 있다. 수돗물은 절대로 마시지 않고 있으며, 오염된 공기를 피하기 위해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후쿠시마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어디를 가던, 아예 모든 것을 잊고 도망가든,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사실은 평생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언제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 또 만약에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을 때 정부는 그것을 방사능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해 줄까? 후쿠시마에서 함께 사는 나의 친구들도 모두 건강을 해치지 않고,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산다.

 

갈수록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100만명 중 한명이 발병한다는 소아갑상선암이 고작 인구 200만명인 후쿠시마현에서만 벌써 33명이 발병하고 있다.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지난 27일 후쿠시마현민 건강 관리조사 검토위원회 발표내용). 그러나 그것에 반비례해 일본 국민들의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관심은 희박해지고 있다. 사고가 아직도 수습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아베 총리는 오염수는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고 발표해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결정해 버렸다. 앞으로 방사능 오염 사실은 더욱 은폐될 것이다. 올림픽 유치 결정을 환영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경제 발전·부흥의 이름으로 제염과 방사능 대책이 소홀해지고 있다. 남겨진 후쿠시마 사람들은 매일매일, 말 그대로 지옥 속에 고통과 함께 살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독당한 채, 날마다 방사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후쿠시마에 사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다. 후쿠시마와 같은 비참한 사고는 앞으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절실한 생각과 달리 우리(일본)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핵발전기술의 해외수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대참사가 후쿠시마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돈에 눈 먼 분별없는 사람들은 많은 약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제어불능의 괴물을 손에 쥐며 온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우리가 잃은 것은 셀 수가 없다.

대지진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자연의 힘 앞에,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핵발전소 신화는 완전히 그 갑옷을 벗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대손손 농사지어온 땅을 떠나야만 했다. 인간들과 달리 대피하지 못하는 동·식물은 무저항으로 피폭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숨 쉬었던 고향이 붕괴되고 말았다. 따뜻했던 집, 함께했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방사능이 스며든 나의 갑상선, , 장기를 예전 같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려줄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핵발전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핵발전은 우라늄의 발굴에서 폐기물 처리까지 수많은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에너지이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의 희생자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

 

한국 국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국 국민 여러분! 한국도 핵발전소가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정부도 핵발전소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그런 어리석은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안 낸다면, 여러분들도 그것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구조를 무너뜨릴 힘은 여러분들 개개인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후쿠시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향후 수십년에 걸쳐 주민들의 건강 피해가 서서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100mSv(밀리시버트) 이하의 피폭은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피폭 한도는 년 1mSv라고 일본의 법률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과 자신의 건강 피해의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한 채 힘든 나날을 지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 여러분, 사고가 일어난 후에 아무리 발버둥이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번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 버린 유리를 원래대로 고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본은 과거에 두번이나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핵폭탄과 달리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핵발전소라고 합니다만,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큰 희생 위에 겨우 만들어지는 댓가, 그것이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력입니다.

일본에서는 핵폭탄 피해자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폭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의식있는 시민들과 함께 탈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이후 동경 수상관저 앞에서 핵발전소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매주 금요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거기에서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외칩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핵발전소 OUT(그만)’을 계속 외치고 싶습니다. 그 행동은 매우 소중하고 숭고한 것이라 믿습니다.

 

  * 아유미(가명) 학생은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현재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약 30km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작년 여름 광주환경운동연합이 진행한 ·일청소년 에너지캠프에 참여해 한국 청소년들에게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호소한 바 있다. 이 글은 핵 없는 세상 광주·전남행동이 주최하는 38() 후쿠시마 3주년 추모행사를 위해, ‘편지글로 보내온 것으로, 본명으로 드러나는 것을 조심스러워해 가명으로 처리했다.

발행일 : 20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