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생협과 함께한 ‘후쿠시마 리프레시 투어’
오승현(바른두레생협 상무이사)
핵발전소 업체에서 이야기하듯 삶이 편리해지고, 일자리가 늘고, 전력생산비가 낮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해도 한번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것이지요.
“방사능 때문에 병에 걸리고 싶지 않습니다. 방사능 때문에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제가 결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2012년 3월 9일, 후쿠시마 2주년 서울시청 광장 행사장에서 후쿠시마에서 온 아베 유리카 어린이가 한 이야기가 아직도 맴돕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2011년 3월 11일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어마어마한 사태가 TV화면에서 연속해서 방영될 때, 우리 모두는 원자력으로 포장된 핵발전소의 폐해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 각인되어 갔습니다. 그후 후쿠시마 사고는 한국에서도 탈핵운동이 생협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핵발전소 1기 줄이기’를 위한 활동,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이런저런 탈핵을 위한 활동 등…….
그렇게 2년이 지나갈 즈음 일본에서 활동하는 생활클럽연합회로부터 두레생협으로 제안이 왔습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생활클럽 생협조합원들을 ‘후쿠시마 리프레시 투어’라는 행사를 통해, 일본 32개 생활클럽 생협이 있는 지역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삶을 충전하는 기회를 진행하여 너무 좋은 반응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지요.
2011년 3월11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한국에서 조합원들과 모금활동도 하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던 그 마음으로 흔쾌히 동의하며 6개월간 준비를 했습니다. 장소의 문제, 언어의 문제, 프로그램의 문제……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하나 준비하며 쉴 수 있고, 한국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갔습니다.
6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한·일 가족들이 함께한 4일
드디어 7월 25일. 연일 계속 내리던 비가 멈추고 햇살이 눈부신 날, 인천공항으로 센다이에서 하루에 한번 오는 비행기를 마중 나갔습니다. 새벽부터 준비하고 비행기 타고 오느라 다소 피곤한 듯 하지만, 모두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공항에서 가까운 참좋은두레생협 청라점 견학을 갔습니다. 생활클럽 후쿠시마생협은 점포 없이 운영되는 곳이라 다소 신기해하며 생협매장에서 필요한 생활재들을 구입하고는, 바로 행사장인 파주에 있는 유일레져타운으로 이동했습니다. 먼 길 오느라 시장할까봐 준비한 두레방아협동조합의 떡을 받아들고는 모두 감동했지요. 그 멋과 맛에 말입니다.
이어 도착한 파주에서는 한국 측에서 참가한 10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환영식을 가졌습니다. 한국 측에서 일본 동요를 부르고, 일본 측에선 한국 동요를 부르고, 경기두레생협의 오카리나 공연, 은평두레생협 어린이들의 노래공연……, 그렇게 흥겨움 속에서 첫날을 보냈습니다.
둘째 날, 우거지갈비탕으로 아침 식사 후 두드림 드럼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언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함께 리듬을 타며 신명난 타악기의 즐거움에 흠뻑 취하여 음악으로 모두가 하나됨을 만끽한 시간이었습니다. 오후에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신나는 물놀이를 하는 동안 어른들은 후쿠시마의 상황과 한국에서의 탈핵운동에 대해 공유하며 그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 진행한 프로그램은 떡 만들기였지요. 미리 방앗간에서 쪄온 찹쌀을 떡메로 치고, 콩가루를 묻혀 먹는 인절미 만들기. 어린이들부터 돌아가며 떡메를 치고 곧바로 고소한 콩가루에 묻혀 먹는 그 맛에 다들 손들이 바빴지요. 저녁 식사 후에는 봉숭아물들이기를 했는데, 예전에는 일본에서도 더러 했지만 요즘은 거의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추억을 남기고픈 마음에 다들 손톱과 발톱에 하나씩 물들이며 둘째 날을 보냈습니다.
셋째날, 아침식사 후 숙소 뒤에 있는 박달산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습니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그리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 후쿠시마에서는 현재 마음껏 걸을 수 없기에 발길에 느껴지는 그 촉감까지도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냥 걷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가 봅니다.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장명루 만들기. 서로 실을 잡아주며 색색의 실을 엮어가며 만드는 장명루에는 무병장수의 의미가 담겨졌다고 하지요. 생각보다 어린이를 포함한 모두가 열심히 하나씩 만들어 손목에도 차고, 발목에도 차보며 웃음가득했지요.
점심 식사 후 간단한 쇼핑을 위해 근처 마트를 다녀와서는 춤테라피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음악속에 나를 맡기고 몸을 흔들며 영혼의 자유로움을 만나는 시간. 역시 언어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바비큐 파티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바로 이어지는 게임 및 캠프파이어. 이제는 정도 많이 들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게임도 하고 흥겨워하며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아쉬워했습니다. 못내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 속에 헹가래도 치고 각자 준비한 선물도 나누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숙소로 발길을 돌렸지요.
다음날 새벽, 다시 센다이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오전 일찍 있는 관계로 새벽부터 서둘러 다시 공항으로 향하며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말이지요.
행사 후, 일본 가족이 보내온 편지
며칠 뒤 다음과 같은 감사의 짧은 글이 도착했습니다.
‘리프레시 투어 in 한국’에 아들 린(14세)과 참가했습니다. 해외에 가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만, 한국은 처음이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많은 한국가족들과 교류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떡만들기, 장명루만들기, 댄스 등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고 한일 양쪽의 가족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일본가족, 한국가족이 각각 하나의 테이블이나 방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2일째, 3일째가 되면서 서로 섞여서 식사를 하거나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의 벽은 있었지만 한국 분들이 다 일본어를 조금씩 공부해주시고, 열심히 말을 걸어주셔서 정말 감격했습니다. 다음에 갈 때는 이쪽도 조금 더 한국어를 공부해갈 생각입니다. 아들 린도 같은 중학교 3년생 남자아이나 연상의 남자아이와 친구가 되고, 영어로 조금은 소통이 된 것 같아 기뻐했습니다.
한국 분들의 따뜻한 대접에 정말 감사합니다. 또 생활클럽 생협의 스탭 여러분에게도 신세를 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본에서 무라카미 아키코
한달여 시간이 지난 지금, 손톱에 물든 봉숭아물을 보며 그리고 손목에 있는 장명루를 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겠지요. 핵발전소 없는 평화의 땅을 그리면서 말이지요……
발행일 : 20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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