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핵기술 개발의 역사⑧
2000년대 핵발전소의 사건·사고 _ 예견된 후쿠시마
이번 호에서는 2000년대 일본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관련 사건과 사고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이번 호를 통해 독자들도 후쿠시마는 예견된 사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핵발전소에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 일본 정부는 스리마일섬 핵발전소 사고 당시 미국의 가압경수로는 자국의 가압경수로와는 제조 기업이 다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발생 직후에는 설계사항을 넘어서는 사고가 발생해도 일본의 핵발전소는 “충분한 여유가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재 우리는 이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부터 안전신화라는 허술한 방패 속에 핵발전소의 위험이 임계점을 아슬아슬하게 맴돌고 있었음을 보여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다.
도쿄전력의 트러블 기록 조작과 은폐 사건
2002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도쿄전력이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트러블과 관련된 기록을 고치고, 은폐한 항목이 29건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2000년 제네럴일렉트릭(GE)의 계열사인 GEI의 한 미국인 기술자가 자신이 점검을 담당했던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제2핵발전소, 니가타의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 관리실태를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에 내부고발했다. 고발 내용은 도쿄전력이 핵반응로에서 발견한 균열 지점 수를 축소하여 기록하거나, 핵반응로에 공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를 한참 지나서야 발견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도쿄전력은 이를 부인하다가 GEI이 조사에 협력하면서 결국 인정했다.
일본 사회는 부정행위가 밝혀지는 데 2년이나 걸린 점, 도쿄전력의 자체 점검만이 아니라 규제기관의 점검에서도 부정행위가 있었던 점에서 일본 정부도 비난했다. 이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진다며 도쿄전력 사장 경험자 5명이 사임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시간이 지난 뒤 도쿄전력에 복귀했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도쿄전력 임원들이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사임하고, 사외 이사로 취임했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쿄전력은 정보공개와 투명성의 확보, 핵발전 부문 사내감사 강화, 기업문화 개혁 등의 ‘약속’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도 사업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국가의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이와 같은 약속은 당장의 위기를 피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이후에도 도쿄전력의 핵발전 부문에서 1977년부터 36건의 트러블 은폐와 데이터 조작이 이루어졌음이 발각되었다. 한 예로 1992년 점검 중이던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는 격납용기의 방사능 누설지점이 발견되었음에도 재가동 예정일에 맞추기 위해 수리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운전하기도 했다. 임계사고를 은폐한 적도 있었다. 중대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은 안전신화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이후 도쿄전력 이외의 전력회사들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발각되었다.
쥬에츠 지진과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
도쿄전력이 일으킨 사회적인 파장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되었다. 2004년 8월 9일에는 간사이전력의 미하마 3호기(가압경수로) 터빈 건물의 2차계 배관이 파손되어 고온고압의 증기가 분출되었다. 점검을 위해 터빈 건물에 있던 협력회사 직원 중 사상자가 나온 끔찍한 사고였다. 이후 2차계 배관 두께 관리 부위가 관리대상에서 누락되어 핵발전소 가동 시작 이후부터 한 번도 점검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미하마 3호기는 1976년에 가동을 시작한 노후 핵발전소로, 20년의 수명연장 허가를 받은 후 2021년 6월 재가동했다가 테러대책시설 미비로 10월 23일 다시 정지했다.
미하마 3호기 사고로부터 3년 후에는 후쿠시마를 예고하는 듯한 재해가 일어났다. 공휴일이었던 2007년 7월 16일 오전 10시 13분경 일본 서북부 니가타현에서 규모 6.8(동일본대지진은 9.0)의 쥬에츠 지진이 발생했는데, 진앙으로부터 16km 떨어진 도쿄전력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해당 핵발전소는 카시와자키시(市)와 카리와촌(村) 두 지역에 걸쳐 7기의 핵반응로가 밀집해 있다. 지진 발생 당시 3, 4, 7호기가 운전 중이었으며 2호기가 조절운전 중이었다. 해당 호기들은 지진 발생 후 모두 자동정지했으나, 3호기의 소내 변압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6호기의 배수구에서는 방사능이 누출되어 약 9만 베크렐이 바다에 흘러나갔다. 7호기의 배기탑을 통해서도 방사성 아이오딘 등 4억 베크렐이 누출되었다.
지진은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의 안전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진으로 인해 액체가 진동하는 슬로싱(sloshing) 현상이 발생해 각 호기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의 물이 넘쳐 핵반응로 건물 오퍼레이팅 플로어에 고인 것이다. 물은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었고, 6호기에서는 바다로 방출되기까지 했다. 지진이 발생하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에서도 방사능이 누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지진으로 비상대책본부도 제때 역할 못 해
도쿄전력, ‘상정외’라는 말로 변명
또한 지진으로 발전시설만이 아니라 사무본관 ‘긴급 시 대책실’의 문이 변형되어 장시간 들어가지 못했고, 들어간 후에도 내부 기기들이 손상되어 있어 대응에 차질이 있었다. 특히 해당 대책실은 비상대책본부로 기능해야 했지만 이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지자체, 소방서와 연결되는 전용회선을 사용할 수 없어 초기 사고대응과 정보제공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도쿄전력은 쥬에츠 지진이 설계 시 생각하지 못했던 ‘상정외(想定外)’의 규모였다고 주장했다. ‘상정외’라는 말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발생 후 도쿄전력과 일본 규제기관이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되는 단어였다.
최근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는 재가동을 둘러싸고 논란을 부르고 있다. 먼저, 해당 핵발전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보다 더 많은 7기의 핵반응로가 밀집해 있어 사고가 발생한다면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연구자들과 탈핵운동 측에서 해당 핵발전소 부지 23개의 단층 중 활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해 왔으나, 도쿄전력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2020년 9월에는 도쿄전력 사원이 타인의 ID카드로 중앙제어실에 출입한 사건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침입자를 감지하는 보안시설 중 여러 군데가 고장난 것을 도쿄전력이 알고 있었음에도 방치했던 것도 드러났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21년 3월 해당 핵발전소의 보안성을 가장 낮은 단계로 평가했다.
현재 도쿄전력은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강조하며 일본 정부와 함께 가시와자키가리와 7호기 재가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시민들은 해당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예견되었던 후쿠시마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과 사고들을 통해 후쿠시마는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일본대지진이 파괴적인 대규모 자연재해였다 하더라도, 안전을 중시하는 문화와 인식을 찾아볼 수 없는 전력회사와 이에 동참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았을 때, 상업용 핵발전소가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한 지 40년이 지나서야 후쿠시마가 발생한 것은 그동안 운으로 사고를 피해갔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음 호에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돌아보고자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지진 국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쓰나미가 유일한 원인은 더욱 아니다. 어느덧 사고 11주기가 다가오지만 사고는 아직 진행 중이다. 우리는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사고의 불씨가 모든 핵발전소에 잠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떠올려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자료
原子力安全委員会. 1987. “原子力安全委員会ソ連原子力発電所事故調査特別委員会報告書(要約)”
松井亮太. 2019. “東京電力のトラブル隠し事件と2006年以降の津波想定の比較分析:行動倫理学の観点から.” 「日本経営倫理学会誌」. 26(0): 117-133
新潟県. 2007. “新潟県中越沖地震記録誌”
최종민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연수연구원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목도한 것을 계기로 핵기술을 비판적인 측면에서 공부하고자 결심하여 귀국 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2020년 8월 「일본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담론투쟁: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력 안전신화’를 중심으로(1954-1980)」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탈핵신문 2022년 1월(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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