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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밀양송전탑 투쟁, 온라인 기록관으로 싸우다

밀양송전탑 투쟁, 온라인 기록관으로 싸우다

- 글쓴이: 남어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기록관 담당 활동가

 

 

현재의 밀양

 

 

2005, 여수마을 주민들이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에서 풍물을 두드리며 송전탑 반대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6년이 지난 2021년 현재, 아직까지도 111세대의 경과지 주민들이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고 밀양송전탑의 부당함을 존재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지 밀양 주민들도, 정부도, 한전도 몰랐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밀양 할매 할배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밀양은 어떤 상황인지 자주 묻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다시 주민들에게 질문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여수마을 주민 김영자 님이 말씀하십니다.

 

 

“항상 괴롭다 캐봐야 내 인생, 즐겁다 캐도 내 인생. 즐거운게 났지. 안 그래요. 그래서 항상 마 즐겁게 생각하고 살라고. 괴롭게 생각하면 넘 인생 되면 내가 뭐 우째 신경을 바짝 한 번 써보도록 하겠는데. 즐거워도 내 인생이고 괴로워도 내 인생이니까. 어차피 사는 거 즐겁게 사는게 안 맞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즐거워요 뭐.” (구술: 오지필름)

 

 

탈핵탈송전탑 원정대, 기장 월내마을 방문 2015.03.25. (사진=정택용)

 

송전탑이 완공되고 전기가 흐른 지 6, 마을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단순히 이 갈등이 돈 때문이었다면 골이 이렇게까지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을 함께 산 이웃들의 배신과 포기, 남은 자들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끊이지 않습니다. 품앗이, 들 밥, 회의와 같이 마을이 전통적으로 작동하던 방식이 사라졌습니다. 사태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밀양에 남아있지 않고, 문제를 풀어야 할 정부는 어떠한 진상조사나 사과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모두들 대전환을 이야기하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전환의 기준 중 하나가 되었을까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동될 핵발전소의 건설은 재개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기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발전소 인근 주민,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 중앙집중식 전력 체제가 불러오는 에너지 불평등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밀양 할매가 이야기하는 즐겁게 잘살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국가폭력에 대한 분노, 함께 싸워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 한국 전력정책에 전환점을 만들어내었다는 자긍심 등 각자의 이유로 밀양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 일상의 투쟁을 고정마을 주민 김영순 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말 없이 싸워도, 싸우는 건 싸우는기지 싶은데, 말이 없어도, 안주 합의 안 보고 남아있다는 거 그거 한 개만 있어도.” (구술: 오지필름)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희망버스가 온 날의 밀양역 광장, 2013.11.30. (사진=정택용)

 

 

사라질 수 없는 기록으로 미래를 준비하다

 

 

20205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이하 밀양대책위)[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기록관]을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밀양대책위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부의 책임 있는 진상조사와 사과이고 두 번째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송전탑을 뽑아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16년간 생산되고 수집된 기록들을 정리하고 전시하여 송전탑을 뽑아내는 밑거름으로 쓰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마을에 오프라인 기록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시와 탈핵 탈송전탑 교육, 농활, 견학과 같은 사업으로 시민들이 계속 밀양으로 걸음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와 공간을 유지하는데 드는 인적 구성 등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자료들을 분류하고 전시하는 일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온라인 기록관]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됩니다. 밀양송전탑 투쟁을 상징하는 76.5장면을 주민들의 말과 함께 구성하는 기획전시, 밀양송전탑 투쟁 16년 동안의 흐름과 주요 사건을 읽을 수 있는 약사, 문서·사진·영상 등을 기록물 형태에 따라 47가지로 분류한 아카이브 페이지입니다.

 

최근까지도 다른 지역의 신규 송전선로 경과지,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송전탑과 관련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어떻게 싸우면 잘 싸울 수 있는지 밀양에 물어봅니다. 이들의 투쟁에 기록으로 연대하려고 합니다. 에너지 정책, 인권, 국가폭력과 같이 밀양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 연구자와 학생에게는 소중한 자료가 되려고 합니다. 밀양과 함께 연대했던 이들이 다시 각자의 삶에 밀양을 새기는 되는 계기가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아서 버티는 주민들에게 긍지가 되고 싶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정리한다는 일이 쉽게 투쟁의 종료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밀양 주민들은 괴로운 나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충돌은 끝났으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전기에는 시작(발전소)과 끝(도시, 공장)이 있지만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송전탑을 뽑아내는 일이 주민만의 몫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작은 일부터 하나씩, 온라인 기록관을 만드는 일로 내일을 맞으려 합니다.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은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박은숙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주민대표는 대한민국에 전기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기록관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붙여서>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온라인 기록관을 함께 만들 ‘밀양의 친구들’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 9월 9일부터 한 달간 텀블벅을 통해 후원자를 모집하였고 341명의 시민들이 동참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텀블벅은 종료되었지만, 함께 하시고 싶은 분들께서는 밀양대책위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밀양대책위 010-9203-0765)



탈핵신문 2021년 10월(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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