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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평창 송전탑 반대 투쟁]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찬성할 수 없잖아

송전탑 투쟁과 끝나지 않은 국가폭력(3)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찬성할 수 없잖아

 

 

해발 700미터 되는 산허리 골짜기 마을에 드넓은 배추밭이 펼쳐져 있다. 신기하게도 배추 사이사이에는 아직 꽃이 핀 감자싹 줄기와 시들해지는 줄기가 보였다. 이곳은 날씨가 추워 감자 파종을 늦게 하고, 감자를 8월에 캐면 적당한데 그렇게 하면 이모작을 할 수 없다. 이곳 주민들은 감자만으로는 농가소득이 어려워 감자 이랑 중간에 배추를 심은 것이다. 지금 자라는 배추는 추석 때 출하할 예정이고, 감자는 10월에 캔다. 10월까지 감자를 땅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진조리, 8월 3일 이 마을을 찾아갔을 때 추석 때 출하할 배추는 한창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김장배추를 심는다고 밭을 일궜다. 부지런하고도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 보이는 또 하나의 풍경은 산꼭대기마다 하늘을 찌를 듯 보이는 765kV 초고압 송전탑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또 500kV 초고압직류송전(HVDC) 송전탑이 건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도 송전탑 피해가 큰데 그 아래 또 송전탑을 세우겠다니. 고랭지 청정한 바람에도 마음속은 염천이다.

 

강원도 평창군 진조리 ⓒ용석록


마침 밭을 일구던 마을 주민 한 분을 만났다. 진조리에 시집와서 40년 살았다는 김모 씨는 이 마을에 송전탑이 1990년 중반 이전에 들어섰는데, 당시에는 송전탑이 떡하니 세워지기 전까지 그게 뭔 줄도 몰랐다고 한다. 김 씨는 이 골에만 벌써 세 사람이 암에 걸렸다며 송전탑 전자파로 인한 영향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재산 가치는 건넌 마을과 비교하여 땅값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송전탑-풍력-변전소-철도-고속도로
청정지역 진조리 마을 곳곳이 몸살

 

장순구 진조리송전탑반대대책위 위원장과 함께 진조리 이장이자 평창군송전탑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 강원도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은 김정래 위원장 집을 찾아갔다. 김 위원장 집에 도착하자 한기마저 느껴졌다. 서울이 연일 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인데 평창군 진조리는 추울 정도이니 고랭지 배추와 청정지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사는 집에서는 765kV 송전탑과 풍력발전이 모두 보인다. 그는 “겨울에는 송전탑 선로에서 윙윙 우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했다. 그의 집과 송전탑과의 거리가 약 850~900미터 되는데 그래도 소음에 시달린다고 한다. 

 

평창군 진조리 김정래 위원장 집에서는 기존의 765kV 송전탑이 보이며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전력은 기존의 송전탑 아래쪽으로 다시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왼쪽은 장순구 진조리 송전탑반대 대책위 위원장, 오른쪽은 김정래 평창군송전탑반대 대책위 위원장이다. ⓒ용석록 

 

김 위원장은 “한전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는 이번에 추가로 들어온다는 500kV 송전탑 건설 예정을 2019년 14차 입지선정위원회 회의 때 알았다고 했다. 그때 한전은 한화리조트 4층에서 하기로 하였던 입선위 회의를 몰래 6층으로 옮겨 진행했다고 한다. 그는 마을에 풍력발전 들어설 때도 표 대결 하니까 89%가 찬성했는데 이는 3km 바깥에 거주하는 주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집에서는 겨울에 바람이 많이 불면 풍력에서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소음에 시달리는데, 가까이 사는 사람은 피눈물이 나고 멀리 살면 찬성하고 지원금 받는다며, 한전이 송전탑 건설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했다. 다행히도 진조리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15개 마을 중 2개 마을만 합의 안 해
합의한 마을 중 비대위 만들어 소송하는 곳도

 

진조리를 찾아가기 이틀 전인 81, 평창 시내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평창군송전탑반대투쟁위원회송향섭 간사를 만났다.

 

평창은 5개 읍면 15개 리를 거쳐 78개의 송전탑이 38.47km에 걸쳐 건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송전탑 경과지 15개 마을 중 13개 마을이 한전과 합의하고 2개 리만 남았다고 한다. 남은 마을은 봉평면 진조리와 평창읍 지동리다. 진조리에는 약 120가구, 지동리에는 28가구가 살고 있다.

 

진조리는 주민 100%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반면, 지동리는 찬반 비율이 5050이라고 한다. 송향섭 간사는 만 2년 전 7월에 송전탑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전 주민이 반대를 결의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찬성파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 오른쪽이 송향섭 평창군송전탑반대 대책위 간사다. ⓒ용석록

 

송 간사는 마을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 한전이 지원금을 주어도 개인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며, 송전탑이 들어서도 이득 될 게 없다고 설득하였다. 그 후 주민 중 많은 사람이 반대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한전은 이후에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내부규정을 만들어서 마을 기금으로 50%, 가구당 지급하는 지원금 50%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역시나 찬성 쪽으로 기우는 주민들이 또 생겼다고 한다. 송 간사는 이처럼 상위법이 없어서 한전이 임의로 내부규정을 변경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하였다. 이어 더욱이 한전은 철탑 계획이 백지화되더라도 이미 나간 지원금에 대해서는 회수하지 않는다고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주민 간 고소 고발, 파괴되는 공동체

 

 

평창군 방림면 방림3리는 주민들에게 마을공동사업비외에 주민생활 안전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에게 현금 지급을 처음으로 한 곳이다. 이 마을은 주민등록이 안 된 사람에게는 돈 안 주고, 3년 미만 거주자에게는 400여만 원 차등지급, 오래 거주한 주민은 800만 원 지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기에 불만을 가진 주민들이 이를 문제 삼았다.

 

400만 원을 받은 주민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16세대가 참여했다. 비대위는 차등지급 근거와 규정을 대라며 국민신문고와 산업부, 한국전력 등에 민원을 넣었으나 비공개라며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비대위는 차등지급을 문제 삼아 경찰에 마을대표단을 고소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주민등록이 안 되어 있다고 해서 실거주자가 송전탑 피해를 안 보는 것이 아니며, 3년 미만 거주했다고 하여 앞으로 송전탑 피해를 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차등지급하느냐며 마을 결정과 한전의 규정이 문제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자신과 마을 사람들이 방림3리 마을대표단(송전탑 찬성추진위 추진위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사실이 없으나, 마을대표단이 사문서를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한전이 송전탑 건설 명목으로 마을에 지급하는 지원금은 마을 주민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평창군송전탑반대투쟁위원회 송향섭 간사는 어떤 마을은 가구당 지급규정 생기기 전에 지원금을 받아서 개인이 돈을 못 받은 마을도 있고, 어떤 마을은 1가구당 1천만 원씩 받았다더라. 또 어떤 마을은 송전탑 3기가 들어서는데 1가구당 600만 원씩 나눠 가졌다고 한다. 한전과 합의서 쓰고 집행 못 하거나 줄다리기하는 마을도 있다라고 평창 소식을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동리는 아직 합의하지 않은 마을인데 찬반 주민 의견이 팽팽해 주민 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송 간사는 “(찬성 쪽 주민이) 내가 인사하면 외면한다. 찬반 반반으로 나뉘니까 대화가 단절된다. 집안끼리도 찬반에 따라 분열되기도 한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주민들은 언제까지 이런 갈등을 겪어야 하는지 이제나저제나 끝나길 바라는데, 그렇다고 제가 찬성할 수는 없잖아요라며 갑갑해 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력의 공동체 파괴와 국가폭력은 이처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밀양에서의 고통과 마을 파괴가 울진-가평 간 송전탑 경과지 선정 과정에 재현되고 있다.

 

용석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8월(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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