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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악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칼럼

 

악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양기석 신부(천주교 창조보전연대 대표)

 

 

20192월의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에서 1, 2심 재판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처분은 신청서류인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서의 법정 기재사항 중 일부가 누락돼 이를 심사하지 않았고 위원 자격이 없는 2명이 의결에 참여해 위법하지만, “특정 산업분야와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1조 원이 넘는 손실에 다양한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면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기에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을 기각한다는 사정판결을 내렸다. 평범한 시민들의 값어치는 너무나 싸서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핵산업의 중심인 거대기업과 관련 산업계의 목소리는 소중히 여기는 사법부를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올해 318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이 해법은 없고, ‘검토와 논의 바란다를 나열한 권고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검토위원회는 권고문에서 원전지역주민, 시민사회계, 원자력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하에 새롭게 논의를 진행하여 주시기를 권고하였다. 또한 울산 등 인접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가감 없이 청취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였다는 점을 밝힌다고 하였다. 하지만, 주민의 의견수렴 범위를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하고 지역실행기구 구성에 울산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하였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깊어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 건설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인구밀집지역인 울산시민들의 의견은 공론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하였다. 특히 울산 북구는 월성핵발전소로부터 7~20km 안에 거의 다 포함되었음에도 그러하였다. 법과 정책의 실행 과정에서 공정함은 사라지고 핵산업계의 자본을 지키고자 하는 논리만 난무한 결과물이다.

 

요즘 핵산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 내부에서조차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한 이야기를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탈원전 기조는 변화가 없지만, 탄소중립에 핵발전이 가진 역할이 있을 것이라며 소형원자로의 연구와 수출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고 한다. 핵산업계와 언론은 소형원자로가 방사능이 적게 나오고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증명되지 않은 내용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탈핵 사회를 표방하였던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후반부에 이르렀건만 핵산업계와 에너지 정책을 협의해 왔던 관료들의 퇴행적인 관성이 확인된다. 정부 관료들은 경제지표를 무기로 한 핵산업계와 밀착한 경제세력들의 압력에 부화뇌동하고, 시민들의 안전과 미래는 관심 없는 정치인들의 부도덕함이 부실하기만 탈핵 기조마저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핵의 위험은 우리 사회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한다. 악은 원래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생태계 멸절의 위기 시대에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두렵게 만드는 악은 시민의 생명이 아니라 돈을 최우선하는 핵산업이다. 그러나, 이 판을 바꿀 자는 역시나 시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핵신문 2021년 8월(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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