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자가 벌써 8개월째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마을에서 생활하며 월요일 아침이면 주민들과 같이 상여시위에 나가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마주하며 ‘그들은 왜 7년째 쉬지 않고 상여를 끄는지’ 듣고, 기록하고, 체험하고 있다. 탈핵신문은 지면을 통해 월성이주대책위 소식을 여러 번 전하기도 했으나, 김우창 연구자의 <그들은 왜 상여를 끄는가,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를 연재하며 핵발전소 주변 지역주민의 생생한 목소리와 함께 이주요구 7년의 여정과 과제를 싣는다. - 편집자 주
∥ 그들은 왜 상여를 끄는가,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1)
나는 왜 월성을 연구하나
2020년 11월부터 경주 양남면에서 박사 논문을 위한 현장연구를 시작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이주대책위의 상여시위였다. 농성장에서 핵발전소 정문까지,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300m도 채 되지 않았으나 계란이 바위를 치듯 상여와 관을 끌었다. 언제, 왜, 어떻게, 누가 이주대책위를 만들었고 현재까지 상여시위를 하는가? 연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채워갈 것이다. 또한, 올해 초 삼중수소 누출 관련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월성원자력본부 본부장은 “주민들의 감성적인 마음으로 불안한 부분은 있을 수 있지만….”이라고 말했는데,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역시 주민들의 걱정이란 매일, 매 순간 핵발전소 옆에서 겪어야 했던 불안과 위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탈핵이란 결코 산업과 에너지 생산의 관점에서 핵발전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만 늘리면 되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삶과 지역변화를 포함하여 ‘전환’이라는 복잡한 지평 속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함께 고민하길 바라며, 이곳에서 느꼈던 것들을 공유할 것이다.
월성핵발전소 최인접마을에 산다는 것의 의미
경주에는 현재 총 5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가압중수로인 월성 2,3,4호기와 가압경수로인 신월성 1,2호기가 가동 중이며, 월성1호기는 고리1호기에 이어 2019년 12월 24일에 영구정지되었다. 핵발전소가 위치한 양남면은 경주시의 동남부에 있으며, 핵발전소가 인접한 감포읍, 양북면(최근 문무대왕면으로 변경)과 함께 동경주로 불린다. 2020년 11월 기준으로 양남면(15개 법정리)에는 3443세대가 살고 있으며, 나아리(402세대)는 읍천리(746세대)와 하서리(600세대)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나아리는 70년대 이후 장아, 모포, 송하마을이 월성 핵발전소 부지로 편입되어 사라졌고 수아(收兒: 신라 석탈해를 거두어 들인 곳)라는 나아천의 남쪽에 있는 옛 마을만이 남았다. 장아, 모포, 송하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이주하였으나, 나아리 주민 중 원자로 기준 914m(거주제한구역)의 밖에 사는 주민들은 핵발전소 지척에 살고 있다.
정수희(2011)는 「핵산업과 지역주민운동: 고리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에서 고리 핵발전소가 처음 건설될 때 지역 주민들은 “굴뚝 없는 공장”을 환영하며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라고 지적했는데, 월성도 다르지 않았다. 나아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이나 뒤늦게 정착한 사람들 누구도 핵발전소를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국가, 한국수력원자력만이 아니라 언론과 교과서에도 핵발전소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한수원의 말마따나, 월성1호기를 지을 때 지역 주민 대다수가 “호미, 대야로 파서 나르는 등 터파기 작업에 참여하였다”라고 김진선 씨는 설명했다. 초기에는 “장비 대신 손으로 하다 보니 (발전소) 한 기를 완공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고, 특히 핵발전소 직원들은 오지에 갇혀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을 못해 여기서 사 먹고 뭐든 구입했”기에 지역경제도 성장하는 듯 보였다.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한수원의 경험이 쌓일수록 10년 넘던 준공 기간이 반으로 줄었고, 도로가 확장되었다. 핵발전소 직원들은 나아리에만 머물지 않고 경주 시내, 포항과 울산에서 통근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외부에서 사 왔고, 주민들이 체감하는 발전도 조금씩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핵발전소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안전신화는 흔들린 적이 없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났지만, 황분희 씨는 “너무 멀리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와닿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한수원 역시 주민에게 “구소련의 열악한 기술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국내 핵발전소의 안정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 한수원은 자체 예산을 편성해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기 시작했고, 1989년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이 생긴 이후 지역에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수원으로부터 확보한 ‘2016~2021년 월성원자력본부 승인사업목록’에 따르면 교육이나 환경개선 등 교육장학지원사업이나 비상소화장치 설치, 소화기 보급 등 ‘주변 환경 개선사업’ 등에 사업자지원사업비를 쓰기도 했지만, 해마다 적지 않은 비용이 ‘주상절리 걷기대회’, ‘한마음 축제’, ‘문무대왕 문화제’나 동네잔치 등 크고 작은 일회성 행사에 지원됨으로써 주민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고향, 내가 사랑하던 마을…
그러나 겨울보다 혹독했던 2011년의 봄
이주대책위 상여시위에 매주 참여하는 김진선 씨와 김진일 씨(위원장) 형제는 나아리와 나산리에 산다. 그들에게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1592년 4월에 입향선조가 터를 잡은 이후 조상들이 400년 이상 살아왔기 때문이다. 김진선 씨는 “바닷가엔 아름답고 큰 소나무와 바위가 있었고, 특히 전복, 소라 등 해산물이 훌륭했다”라며 핵발전소가 들어서기 전의 아름다웠던 바다를 기억했다. 황분희 씨(부위원장)는 남편의 좋지 않았던 건강을 염려하여 공기 좋은 이 마을에서 3년만 몸을 추스르고 나가려고 했다. 그녀는 “걸어서 5분 거리의 바닷가에는 해당화가 피어있고, 집 앞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어서 지상낙원이었거든. 나는 안동이 고향인데, 바다를 안 보고 살다가 여기 오니까 너무 좋은 거야”라고 말하며, 당시 축사도 잘 되고 남편의 건강도 좋아져서 아예 그곳에 살기로 했다. “이런 곳에서 애들 키우고 살면 너무 좋겠다”라는 희망을 품고 자식, 손주들과 함께 살면서 축사를 없애고 그 자리에 가족들이 먹을 과일을 키우기 시작했다. 황분희 씨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체르노빌 사고가 났던 1986년이며, 35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누구도 평범한 일상과 행복에 이미 불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 몰랐지만, 최악의 사고가 후쿠시마에서 터졌다. 2011년 봄 이후 이곳은 더이상 ‘나의 살던 아름다운 고향’이 아니었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던 누군가의 꿈도 사라졌다. 사고 이후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의 분노와 절규 그리고 절망은 이 작은 마을까지 와닿았고,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발하였다. 주민들은 월성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라던 한수원의 안전 신화에 조금씩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김우창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에너지정책, 밀양송전탑 갈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 피해 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사업 합의의 의미와 맥락: 합의 주민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전의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갈등 관리전략으로 인한 이해관계자 변화와 공동체 붕괴」 등이 있다.
탈핵신문 2021년 6월(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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