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칼럼] 방사능을 강요받는 사회

칼럼


양기석 신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대표



2015년 일본 도쿄와 후쿠시마 일대에서 진행된 일본 천주교 관계자들과 시민들과 함께 한일탈핵간담회에 참가했을 때, 후쿠시마 출신의 한 젊은 아버지는 고향(후쿠시마)에서 사는 것이 애국이다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이 늘고 있고, 대중매체는 여과 없이 이런 발언을 영상과 지면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고 전하며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며 울먹였다. 코로나 19로 연기되었지만, 도쿄올림픽을 위해 후쿠시마의 성공적인 재건을 내세우고 싶어했던 자민당 아베 정부의 태도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는 인간들이 하늘까지 치솟는 높은 탑을 쌓는 오만함을 보이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징벌을 받아 흩어지며 실패하였다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유대교의 미드라쉬와 탈무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석해준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이 서로의 언어를 못 알아듣고 흩어지게 하신 것은, 탑을 쌓는 자들이 인부들의 생명보다는 벽돌 한 장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에 주변 지역을 지배하던 니물롯족은 자신들의 언어 외에 다른 언어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벨탑 이야기는 폭력을 기반으로 한 독재자였던 니물롯족의 이야기를 통해 힘쎈 이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뜻을 억압하고 왜곡하며 탐욕을 부리고, 그 끝이 어떠할지를 경고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도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의 엄청난 핵 재앙을 겪었으면서도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후쿠시마는 안전하다고 홍보한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얼마 전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경주 월성핵발전소 고준위핵폐기물 임시 저장시설인 맥스터증설을 결정하는 지역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다. 시민참여단 145명의 투표결과 맥스터 '증설 찬성' 118(81.4%), '반대' 16(11.0%), '모르겠다' 11(7.6%)의 결과가 나왔다·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2007년 제정)에 의하면 전국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관련 시설'을 만들 수 없도록 명시한 유일한 지역이 경주다. 그런데 정부와 한수원은 '관련 시설'이 아니라, '관계 시설'이고 '임시저장시설'이기에 불법이 아니라며 우리말의 뜻까지 왜곡하며 억지 주장을 부리고 있다원자력안전법 103조에 의하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시 수렴하는 지역주민의 범위가 핵발전소 반경 30km비상계획구역경계 안에 들어가는 울산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이곳 주민들의 의견도 함께 물어야 지만, 대도시 울산 주민들에 의해 소도시 경주 주민의 의견이 묵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아예 울산 주민은 의견수렴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사용후핵연료재검토위의 입장에서 알 수 있듯이 공론화 과정 자체가 위법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와 핵산업계와 찬성 측은 발전기금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고대의 바벨탑을 쌓던 니물롯족이 그러하였듯이 힘없는 다수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돈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힘 있는 자들은 이번에도 불법을 자행하고 합리화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주민들처럼 경주와 울산, 그리고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핵방사능이 쌓이는 땅에서 살 것을 강요받고 있다.


반민주적인 현대의 바벨탑인 핵발전소의 그 끝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기가 두렵다.


탈핵신문 2020년 9월(81호)





탈핵신문은 독자의 구독료와 후원금으로 운영합니다.

탈핵신문 구독과 후원 신청 https://nonukesnews.kr/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