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2년, 탈핵의 길은 멀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지난 3월 9일,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기, 추모와 우정의 탈핵 축제’가 열렸다. 2012년과 비교해서 행사가 썰렁하게 열려서 그런지, 한국 사회가 탈핵 에너지 전환으로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각종 사건·사고와 비리로 핵발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유지되고 있으니 당연한 측면도 있지만, 2년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의 변화상을 평가한 녹색당은 10가지 성과를 이렇게 꼽는다. ①탈핵을 표방한 정치세력 출현-녹색당 창당과 탈핵국회의원모임 결성, ②지방자치단체 탈핵 선언-서울시 핵발전소 하나 줄이기와 탈핵에너지전환 도시 선언, ③탈핵에너지전환기본법 발의와 시민사회 탈핵시나리오 마련, ④탈핵학교 개교와 탈핵신문 창간, ⑤시민 힘으로 세운 시민방사능감시센터, ⑥각계각층의 탈핵선언과 실천, ⑦삼척과 영덕의 신규 핵발전소 반대운동과 고리1호기, 월성1호기 폐쇄 운동, ⑧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운동과 탈핵희망버스, ⑨ (많은 숙제가 남아 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출범, ⑩ 후쿠시마 2주년 탈핵 광장에 모인 시민들.
물론 이런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야겠으나 탈핵 진영이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새로 들어선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에 핵발전 확대와 수출정책이 버젓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핵 카르텔은 여전히 강고하다. 반면 탈핵진영은 이 핵카르텔을 제어하기에는 자체 역량과 사회적 영향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탈핵의 대표주자로 자임하는 세력들이 구사하는 싸움의 자세에 있다. 일부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탈핵 네트워크인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제 길을 가고 있는가 따져봐야 한다. 공동행동의 태도가 (잠재적인) 탈핵 시민들과 함께 하는 데 주력하기 보다는 관성적인 연대 사업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이미 판이 짜인 무슨 계획, 무슨 위원회만 쫓아다니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마련이다. 오히려 지역과 현장에서의 활동들, 그리고 새롭게 시도하는 자발적 실천들을 부지불식간에 억누르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탈핵운동의 정체 혹은 위기는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탈핵세력의 방향타가 잘못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30여 년간 핵발전소를 품고 살았던 세월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대선에서 핵발전이 취급될 정도로 바뀐 세상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탈핵운동의 위기 운운하는 것이 너무 성급하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보건대 우리 앞에 위기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재앙적 핵발전 사고를 겪고도 탈핵의 첫발을 떼지 못하는 일본을 보라. 오히려 극우적 편향 속에서 핵무장화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일본의 경로를 따르지 말란 법도 없다. 독일의 경로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다.
안전 관리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핵해야 한다는 논리보다 위험 발생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도록 안전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하는 국면에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과 재처리가 공론화되는 국면이 만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우리가 튈 남쪽은 정해져있지 않다.
후쿠시마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2단계 탈핵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탈핵을 위한 사회적, 집단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마치 환경단체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성찰적 사고에서 시작해야 한다. 탈핵에너지전환이라는 공통적인 것을 위해 일상에서 창조적인 균열내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은, 일정 정도는 이런 잘못된 생각과 사업 방식 때문이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평범한 시민들의 창조적 잠재력이 발현되기를 바랄 수 없다.
이제 확실히 하자. 탈핵에 어떤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개혁 야당의 품에 안겨서도 안 되고 오래된 관습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후쿠시마 2주기를 지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탈핵진영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어차피 긴 싸움이라면 숨 고를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를 내려놓는 진정성이 없으면 이마저도 불가능하겠지만.
발행일 : 20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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