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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에너지전환

기후위기와 탈핵(1) _ 유엔 기후체제 협상에서의 핵발전 논쟁사

국내외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 행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핵발전으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낡은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더는 늦출 수 없는, 그리고 후회 없는 기후위기 해법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핵발전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탈핵신문은 이번 호부터 연중기획으로 <기후위기와 탈핵>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

 

|기후위기와 탈핵 연중기획 

유엔 기후체제 협상에서의 핵발전 논쟁사

온실가스 감축을 말하는 찬핵론자는 누구인가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보는 핵발전

핵사이클과 온실가스 배출

기후위기 대응, 비용과 시간의 문제

지구온난화는 핵발전소도 위협한다

세계 핵발전 추진국과 온실가스 감축 실적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충돌하는 핵발전 시스템

탈핵과 탈석탄은 동시에 가능하다

 


핵발전은 기후변화의 대안 아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핵발전을 언급하는 이들이 있다. 핵산업계는 핵발전이 우라늄을 핵분열시켜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가정은 틀렸다. 우라늄 핵분열 과정에 온실가스가 안 나오는 것은 맞지만, 우라늄의 채광·정련, 핵발전소 운영·폐기, 사용후핵연료 처분 과정에는 온실가스가 나온다.


2018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 보고서 채택에 환호하는 IPCC 의장단 (사진 출처 : IPCC)


2008년 영국 서섹스대학교의 소바쿨 교수가 전 세계 108개 논문을 검토한 결과, 핵발전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1kWh1.4~288g, 평균값은 1kWh66g이었다. 이 평균값은 석탄화력(960~1050g)이나 천연가스(443g)보다는 현저히 낮지만, 풍력발전(9~10g)과 수력(10g), 태양광(32g)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높았다. 특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과정에 온실가스가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홍보와 달리 운영과정에서도 1kWh당 평균 11.6g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었다. 핵분열 과정 이외에도 핵발전소 운영과정에 사용되는 에너지와 각종 화학약품 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 이것으로 핵발전과 온실가스를 둘러싼 논란은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화력발전소보다 핵발전소가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기후변화협약에서 핵발전소를 온실가스 저감 수단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줄기차게 있었다.

 


청정개발체제에 핵발전을 포함할 것인가?


현 기후변화협약은 온실가스 저감방안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고나라별로 자발적인 감축 행동을 촉구하며매년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측정·보고·검증하는 온실가스 보고·검증제도(MRV)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따라서 특정 에너지원을 선택하는 것은 철저히 각국의 판단에 따른다하지만 1997년 교토의정서에 포함된 청정개발체제(CDM)의 경우는 다르다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투자를 할 경우온실가스 감축분으로 인정해 줘야 하므로 어떤 기술에 투자하는 지가 중요하다.


 

용어설명

청정개발체제(CDM)와 공동이행제도(JI)

청정개발체제(CDM)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한 사업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질 경우그 감축분을 선진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공동이행제도(JI)는 청정개발체제와 같은 방식이지만 선진국 사이의 투자라는 점만 다르다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나 수소불화탄소처럼 온실효과가 큰 가스를 회수하는 설비 투자 등이 CDM과 JI 사업으로 인정된다이들 제도는 개발도상국의 재원조달에 도움을 주는 장점이 있으나선진국들에게 온실가스 저감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높았다이들 내용은 수년간의 논쟁 끝에 1997년 교토의정서에 포함되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유엔의 전문기관인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에 의해 1988년 만들어진 국제기구과학적인 규명을 주요 임무로 맡고 있으며지만독자적인 연구를 추구하기보다는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제기된 문제를 검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 한다보고서 작성에 195개 회원국 출신 3천여 명의 기상학자해양학자경제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청정개발체제에 핵발전을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교토의정서가 체결된 이후 계속되었다. 1999년 독일 본에서 열린 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핵발전을 옹호하는 영국, 프랑스, 인도, 중국 등은 핵발전을 CDM에 포함할 것을 공식 의견으로 제출했다. 반면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해수면 상승으로 피해를 보는 도서국가연합은 핵발전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것이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의 핵발전을 둘러싼 최초의 논쟁이다.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6차 당사국 총회 이전까지 핵산업계의 로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핵산업계가 주축인 국제핵포럼(INF)CDM에 핵발전을 포함해야 이산화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하는 각국 정부에도 전달되었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패널’(IPCC)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핵발전은 비용·편익 측면에서 뛰어난 에너지원이라며 핵발전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반대 입장을 내는 등 찬반 논쟁이 계속되었다.


결국, 6차 당사국 총회는 합의문을 작성 못 하고 얀 프롱크 의장이 프롱크 안이라는 이름의 초안만 작성하고 끝났다. 이 안에는 CDM 사업으로 핵발전을 추진하는 것을 자제(refrain)하도록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핵발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제 요청문구가 포함된 것이다.


프롱크 안은 다음 해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6차 당사국 총회 속개 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핵발전은 핵폐기물과 안전문제·환경문제 등도 있으나, CDM으로 핵발전이 인정될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할 온실가스 저감 검증이 어렵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 핵발전소 도입으로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였는지 세부 데이터로 상호 검증해야 하는 데, 핵발전은 보안 문제로 투명한 공개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핵발전이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자제하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이다.


이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원자력기구 등 핵산업계의 로비는 치열하게 벌어졌지만, 막상 당사국 총회장에서 핵발전에 대한 언급이 더는 없었다. 핵발전에 대한 국가 간 찬반이 분명하고 단점이 명백한 상황에서 추가 논의는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2018IPCC 1.5도 보고서


△ IPCC 총회를 마치고 워킹그룹 공동의장과 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 (사진 출처 : IPCC)

 

다시 핵발전을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 불을 붙인 것은 IPCC였다. 201810,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48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파리협정 당시 기후변화협약이 요청한 이 보고서는 지구 온도 2도 상승과 1.5도 상승에 따른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다.


이 내용 중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에 핵발전을 검토한 부분이 있다. 보고서 발표 당시 일부 국내 언론은 화석연료 사용 안 하려면 핵발전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나, 실제 보고서 내용은 이와 다르다보고서 내용 중 다양한 에너지 기술을 평가하는 항목에 핵발전이 포함된 것이 전부다


핵발전은 지구 물리적 특성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 관리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수용성이 제약받고 있다고 명시하고, 점차 핵발전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밝혔다.

 

논란은 오래되었으나, 결국 채택되지 못한 핵발전

 

핵폐기물과 대형 핵사고 등을 거치면서 핵발전에 대한 인식이 점차 안 좋아지자, 핵산업계는 기후변화의 대안 원자력이란 슬로건으로 핵발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 자리에서 핵발전은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핵발전을 선택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산업계는 이런 복잡한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계속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핵발전이 갖는 거의 유일한 장점인 온실가스가 적게 나온다는 사실보다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 보안 문제 등 다른 단점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국제회의에서 핵발전이 설 자리가 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

탈핵신문 2020년 4월(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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