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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6호> 비키니 수영복, 고질라, 그리고 일본반핵운동

비키니 수영복, 고질라, 그리고 일본반핵운동

- 195431. 5후쿠류마루 사건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1: 미국          3, 소련     5. 영국     7. 피키스탄

2. 프랑스     4. 중국     6, 인도      8. 북한

 

캐슬 브라보(castle bravo)’.

59년전인, 195431일 비키니 환초에서 진행된 미국의 수소폭탄(이하 수폭) 실험 코드네임이다. 1952년 미국은 세계 최초로 수폭 실험에 성공하지만, 이는 습식폭탄이었다. 폭탄의 연료인 수소가 액체로 보관되어야만 했고, 이 때문에 제조가 어렵고 폭탄의 크기가 큰 것이 단점이었다. 미국은 비행기에 탑재가 가능한 더 작고, 제조가 용이한 폭탄이 필요했다. 반면 소련은 미국보다 늦은 1953년 수폭을 개발했지만, 그들이 개발한 건 건식폭탄(리튬폭탄)이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건식수폭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캐슬 브라보계획이었다. 폭탄의 실험 장소는 태평양 중서부 마셜제도에 위치한 비키니 환초(고리모양의 산호초), 서울 면적보다 약간 작은 594의 면적에 23개의 섬으로 구성된 곳이다. 태평양 일대 섬들의 역사가 흔히 그렇듯이, 비키니 환초도 유럽탐험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19세기 독일보호령을 거쳐, 1차 세계대전이후 일본 위임통치를 거쳐, 태평양전쟁 이후 미군이 통치하고 있었다. 핵무기 개발경쟁이 치열하던 1946년 미국은 이곳을 핵무기 실험기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섬주민들을 이주시켰다. 세계 최초의 수폭 역시 이 곳 비키니 환초에서 실험되었다.

캐슬 브라보에 사용된 폭탄이름은 쉬림프(shrimp, 새우)’. 그러나 그 위력은 이름 같지 않았다. 애초 폭발 규모를 6메가톤(Mt, 1메가톤은 TNT폭약 100만톤의 폭발력으로, 반경 6.5km내 도시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편집자 주)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파괴력은 15메가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750배에 달하는 파괴력이다. 제작자의 실수로 잘못 계산된 폭발력. 그러나 폭탄의 위력이 크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이로 인한 피해가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참치잡이 어선 제5후쿠류마루, 일본 반핵운동의 시작

당시 폭발로 순식간에 7km에 달하는 화구(fireball)가 만들어졌다. 400km밖에서도 관측되었던 이 화구는, 10분 동안 지름 100km, 높이 40km 짜리 버섯구름을 만들며 성층권을 통해 전세계로 방사능 물질을 퍼져나가게 했다. 미국이 지정한 위험수역 밖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 참치잡이 어선 제5후쿠류마루(第五福竜丸)는 이 날 폭발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선원 23명 전원이 피폭을 당한 상태로 귀환했다. 미국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캐슬 브라보계획을 계속 추진했는데, 5월 중순까지 모두 6차례 수폭 실험을 강행한다. 이로 인해 1954년말까지 856척의 어선이 잡은 486t의 오염된 물고기는 전량 폐기되었다.

이 문제가 알려지자, 일본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다. 42일 도쿄의 대표적인 수산시장인 츠키지 시장에서 생선가게대회가 열렸고, 5후쿠류마루의 모항인 야이즈항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제5후쿠류마루 피폭 선원이 원폭, 수폭에 의한 희생자는 내가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면서, 일본내 반핵운동은 급격히 확산된다. 그 중에서도 핵무기폐기 서명운동은 매우 폭넓은 반향을 일으켰다. 다음해 8월까지 집계된 서명참여자가 3158만명으로, 이는 당시 일본 유권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로, 광범위한 참여와 지지속에 일본의 반핵운동은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국적인 핵무기폐기 서명운동과 일본 총리까지 참석해 축사를 한, 1955년 제1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 그리고 이후 만들어진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까지, 피폭국가 일본에서 본격적인 반핵운동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세계 핵실험 국가별 현황 >

 

비키니 수영복과 고질라

한편, 비키니 섬에서의 핵실험은 반핵 운동 이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비키니 수영복이다. 비키니 핵실험이 시작되던 1946, 프랑스의 기술자 루이레아는 비키니에서의 핵실험에 영감을 받아 핵실험만큼이나 충격적인 투피스 수영복 비키니 수영복을 개발했다. ·하의가 분리되고 디자이너가 반지에 통과할 수 없으면 비키니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최소 면적의 이 수영복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비키니를 수영복 이름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비키니 핵실험과 관련한 또하나의 창조물은 고질라이다. 5후쿠류마루호 사건으로 일본 전체가 시끄럽던 1954, 일본의 영화사 도호(東宝)비키니 환초 해저의 공룡이 수폭 실험으로 깨어 일본을 습격한다는 내용의 고지라(ゴジラ)를 개봉한다. 국내관객 961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 영화는, 이후 각종 일본 괴수영화의 전형을 만든다.

인류는 지금까지 약 2천여회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 중에서도 비키니 핵실험은 핵무기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계기를 제공했다. 최근 비키니 환초는 2010년 유네스코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아픈 과거이지만, 비키니 환초에서의 핵실험은 인류의 허황된 꿈과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