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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6호> 한국의 핵무장론,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핵무장론, 어떻게 볼 것인가?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또 다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에도 핵실험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결이 다르다. 우선 핵보유국 북한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북핵 위협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고, 이는 눈에는 눈, 핵에는 핵이라는 한국 핵무장론의 인식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또 하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 협정을 개정해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공교롭게도 2014년이 개정 시한인 원자력 협정 문제는 북한의 핵과 로켓 능력 강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핵무장은 가능하고 타당한 발상일까?

우선 독자적 핵무장론은 미국 핵우산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미동맹은 전형적인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모델이다.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에 정책 자율성, 즉 주권의 일부를 양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동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 핵을 믿을 수 없으니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은 곧 미국에게 동맹을 깨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여건도 녹록치 않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재처리 시설이 있어야 한다. 여건상 고농축 우라늄 방식은 대단히 어렵다. 핵 개발에 착수하는 순간, 원전 가동에 필요한 우라늄 수입을 금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만톤에 달하는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대안이 되기 어렵다. 미국이 한국의 재처리 시설 보유에 동의할 것인지도 불확실하지만, 설사 동의해 주더라도 핵무기화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들의 반발로 재처리 시설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난항을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실질적인 핵무장을 위해서는 수차례의 핵실험이 필요한데, 과연 좁은 영토에 5천만명이 모여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 실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우선 전력 대란을 각오해야 한다. 다량의 우라늄 광산이 있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농축 우라늄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가장 먼저 받게 될 제재가 바로 우라늄 금수 조치이다. 자체적인 핵연료 저장량이 넉넉하지 않은 한국으로선 비자발적인 원전 제로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의료 대란도 불가피하다. X레이, CT 촬영, 항암 치료 등 현대 의학은 방사성동위원소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의존도가 85%에 달하는 한국은 국제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의 움직임에 대단히 민감하다. 북한처럼 우라늄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란처럼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것도 아니면서 한국은 이들 나라보다 훨씬 국제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이는 곧, 핵무장 시도 시 한국이 치러야 할 경제적 비용이 북한이나 이란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로 막대할 것임을 뜻한다. 결국 한국은 핵무장 추진 시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다.

설사 모든 제약을 극복하고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서 핵무장에 성공하더라도 과연 실효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핵무장론자들은 공포의 균형을 통해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만개 안팎의 핵을 갖고 있는 미국도 핵 위협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을 핵무장의 빌미로 이용했다. 그런데도 한국이 몇 개의 핵무기, 혹은 핵무장 잠재력을 갖춰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과연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인가?

일부 정치인들과 안보전문가들, 그리고 언론인들은 희생을 무릅쓰고 용단을 내려야 한다며 핵무장론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건 용단이 아니라 만용이다.

발행일 : 20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