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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ICRP 권고와 한국의 선량규제

지난달에는 국제방사선방호협회(ICRP)의 핵심철학과, 주요 권고내용 변경과정을 확인하였다. 이번호에는 ICRP 권고내용에 따른 한국의 선량규제 정책을 살펴본다

글을 쓴 박찬호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은 피폭노동을 연구하며, 핵발전소 노동자, 생명을 살리는 반핵등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1991년에는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에 함께하면서 녹색병원 설립 초기부터 실무자로 참여했다. - 편집자 주 -


ICRP, 일반인 이해 어렵게 선량개념 변경하고 피폭조건 완화 


지난달에는 국제방사선방호협회(ICRP)의 핵심철학과, 주요 권고내용 변경과정에 대해 확인하였다. ICRP가 제시한 권고를 시대별로 파악해보면 반핵운동 확산에 따른 선량한도의 형식적 인하, 선량개념 변경 등을 통한 선량한도 인하의 무력화, 내부피폭이나 저선량에 대한 철저한 외면 등의 특징을 제시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선량규제는 ICRP 권고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ICRP 권고내용을 대체로 수용하고 있어 독자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사실상 ‘ICRP의 권고 = 공식적인 핵발전소 운영지침이 성립한다. 그러나 실제 각국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일부 예외적인 내용도 채택한다. 예를 들어 방사선으로 인한 직업병 인정기준이나 절차, 혹은 방사선 선량규제 등에 각국의 여러 상황을 반영한 내용들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의 선량규제 정책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는 ICRP의 권고를 수용하여 다음과 같은 선량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위 표에서 연간이라는 단어는 그해 11일부터 1231일까지를 지칭한다. 해가 바뀌면 선량을 다시 적용한다. 지난달에 이미 밝힌 바 있듯이 ‘12개월이라는 개념을 연간으로 바꾼 것은 ICRP1977년 권고부터이다.

예컨대 어떤 노동자가 20185월부터 20194월까지 핵발전소에 근무했다고 가정하자. 만일 이 노동자가 20185~201812월까지 35밀리시버트(mSv), 20191월부터 4월까지 16mSv 피폭했다면 합계 51mSv를 피폭하여 선량한도를 넘은 것이지만, 현재의 기준으로는 연도 별로 각각 따지기 때문에 한도를 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실제 피폭량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유효선량개념은 실제 측정 가능한 양 아니다

 

1을 유심히 보면 가로 구분은 유효선량한도와 등가선량한도 두 가지가 있고, 세로구분은 사람을 3개의 범주로 나눈다. 즉 세 범주의 사람에게 두 가지 선량한도를 적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위 표를 나름 비판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선 특히 유효선량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방사선은 원자단위의 입자와 파장의 형식이기 때문에 예컨대 농약에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 등에 적용하는 ‘ppm’이라는 단위를 적용하지 않는다. ICRP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선량의 개념이나 단위를 계속해서 변경해 왔다. 선량개념 변경은 피폭의 조건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설명한다면 어쨌든 방사선은 물질이기 때문에 측정해야 하고 양의 개념으로 셀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효선량은 측정할 수 없는 양이다. 이것은 ICRP가 방호에 사용하는 방호량과 실제 방사선 물리량의 개념인 실용량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유효선량은 방호량이지 실용량이 아니다.

ICRP2007년 권고 135절에 인체 관련 방호량인 등가선량과 유효선량은 실제로 측정 가능한 양이 아니다. 따라서 조직이나 장기의 유효선량 또는 평균 등가선량의 측정이나 감시에는 실용량을 사용한다고 규정하였다.

즉 유효선량은 실제 물리량으로서의 선량이 아니라, 물리량에 이중으로 가중치를 적용하여 나온 개념이다. 가중치의 이중적용은 ICRP가 정한 모델을 통해 계산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이해는 어려울 수 있다.

 

유효선량, 실제 공간선량의 55%~85% 수준 


독자들이 기억해야 하는 내용은 복잡한 공식이 아니라, 가중치를 적용하는 과정에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을 더 오염시켜도 좋다고 사실상 ICRP가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 있다. 유효선량이라는 개념 적용을 통해 방사성핵종의 농도 기준은 1977년 권고 당시 기준으로 그 이전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유효선량이 실제 물리량 개념의 공간선량과 비교했을 때 55%~85% 수준에 불과하다고 인정한다.

 

유효선량 모델 기준남성

유효선량 = 피폭량 줄이는 속임수 


아울러 유효선량은 개인별 방사선 민감성이나 체형의 차이 등을 전혀 반영할 수가 없다. ICRP가 자체 개발한 소위 팬텀이라는 모델도 세계인의 표준이라는 명분으로 덩치가 큰 서양인을 기준남성으로 채택했다. 결론적으로 유효선량은 어떤 피폭노동자의 유효선량이 20mSv라고 할 경우에 이중으로 가중치를 적용하고 기준남성이었을 때 나오는 수치이지, 실제 해당 노동자의 피폭선량의 물리적인 개념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유효선량은 도대체 누구의 선량인가?”라는 문제제기도 했던 것이다.

ICRP 스스로도 유효선량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ICRP는 가령 노동자 개인의 선량평가에서 선량한도에 근접하거나 초과할 정도일 때는 실제 상황을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원안위 산재 기준이 이중삼중 산재인정 가로막아


노동자 선량한도 이중기준

ICRP 20mSv로 인하했다고 속여

 

그렇다면 노동자의 선량한도가 과연 적정한지 확인해보도록 하자(일반인에 대해선 생략한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반노동자라 할 수 있는 방사선작업종사자의 선량한도가 이른바 이중기준이라는 점이다.

방사선작업종사자의 선량한도는 연간 50mSv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5년간 100mSv이다. “5년간 100mSv라고 할 경우에는 1년에 평균 20mSv가 선량한도로서 적용되어야 하지만, 특정 연도만 놓고 봤을 때 50mSv까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기준의 적용은 일용노동자가 많은 핵발전소 고용 특성상 50mSv가 실제 선량한도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이중기준은 ICRP 1990년 권고에 따른 것이다. 당시 ICRP는 언론 발표용 보도자료에 일반인의 선량한도를 연간 1mSv로 내리고 이를 대대적으로 부각시켰다. ICRP는 이중기준 운용방침(5년간 100mSv, 특정연도 50mSv)을 숨기면서 1년에 평균 20mSv로 인하했다고 속였다. 핵발전소 특성상 50mSv가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을 숨긴 것이다.

 

유효선량과 선량한도 이중기준이 산재 불인정 기준으로 악용

 

사례를 들어보자. 비정규직 노동자 김종일은 월성핵발전소에서 20093분기부터 20101분기까지 근무한 이후에 총 21.3mSv에 피폭하고,호지킨스림프종이 발병하였다. 그는 실제로 3분기동안 21.3mSv에 피폭하여‘5년간 100mSv의 평균 선량’ 20mSv를 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량규제는 ‘12개월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특정 일자를 규정한연간’(11일부터 1231일까지) 개념을 적용한다. 즉 합계 21.3mSv가 아니라 2009년도 15.43mSv, 2010년도 1분기 5.89mSv라는 식으로 각각 분리해서 계산한다. 여기에 더해 이중기준의 핵심인 특정연도 50mSv까지는 허용한다.

김종일은 산재인정 신청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담당 재판부는 유효선량한도(연간 50밀리시버트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5년간 100밀리시버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위와 같은 정도의 피폭방사선량만으로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 판결하였다. 담당재판부는 유효선량이 선량한도를 나타내는 개념에 불과하고, 실제 개인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ICRP의 권고 자체는 물론, 방사선의 특성 등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한 사람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ICRP 권고가 적용되었을 때 노동자에게 나타나는 효과인 것이다.

 

사람 차별하는 선량기준

수시출입자 6mSv, 방사선작업종사자 50mSv

 

한국의 경우 IAEA 관계자 등은 수시출입자로 분류되며, 선량한도를 5밀리시버트로 인하했다. 하지만 방사선작업종사자는 연간평균 20밀리시버트에 특정연도 50밀리시버트까지 인정하고 있으며 사실상 연간 50밀리시버트가지도 허용한 것이다. 방사선에 자주 노출되는 노동자 선량기준은 수시출입자의 50배가 넘는 것이다.  IAEA

 

이제 또 다른 문제점인 수시출입자와 일반노동자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수시출입자란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28호에 방사선 관리구역에 청소, 시설관리 등의 업무상 출입하는 사람으로서 방사선작업종사자 외의 사람을 말한다.”로 규정한다. 다만 핵발전소의 특성상 수시출입자란 규정에 나타난 사람 외에도 원자로 관련 전문기술자들이 많다.

2017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수시출입자의 선량한도를 연간 12mSv에서 6mSv로 무려 50%를 인하했다. 일반 노동자는 연간평균 20mSv에 특정연도에는 50mSv까지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수시출입자의 연간 선량 한도를 50%나 인하한 것이다. 더 많은 양의 방사선을 쪼이는 방사선작업자들보다 방사선을 가끔 쪼이는 사람에게만 선량한도를 50%나 인하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ICRP는 이런 구분을 권고하지 않는다. 즉 모든 선량한도는 작업장을 중심으로 구분해야지 사람을 중심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일반 노동자든 수시출입자든 같은 작업구역이라면 선량한도는 똑같아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핵발전소의 경우에 수시출입자는 한수원이나 원자력안전기술원 또는 외국의 기술자일수도 있고, IAEA같은 국제기구의 감시관일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수시출입자의 선량한도는 곧 외국의 전문가나 한국의 고위 전문가 등의 선량한도로도 볼 수 있다.

수시출입자를 이렇게 이해할 때만이 원안위의 갑작스러운 선량한도 50% 인하를 이해할 수 있다. ICRP의 권고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한국의 원안위가 방사선작업종사자의 높은 선량 한도를 그대로 놔둔 채 수시출입자에게만 더 낮은 선량한도를 적용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선량인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해야 마땅한 것이다.

 

원안위 산재 인정 범위

이중삼중으로 직업병 인정 가로막아

 

△ 한국의 경우 핵발전소 하청 노동자는 수시출입자보다 높은 선량한도 기준이 적용된다. IAEA

 

선량한도에 대한 차별과 함께 한국의 핵추진파들은 공식적으로 피폭노동자를 인정하지 않을 목적으로 원안위 고시형태인 방사선작업종사자 등의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에 관한 규정’(이하 규정’)으로 한 번 더 차별한다.

규정에서는 방사선으로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을 백혈병과 고형암 16개로 제한하였다. 또한 백혈병의 경우엔 직업력 2년 이상의 규정과 고형암의 경우엔 직업력 5년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암의 발병에 대해 일률적으로 시간을 제한할 수 없다. 개인들의 방사선 감수성이나, 방향, 혹은 피폭량, 연령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과학적인 규정이다. 둘째, 고형암의 종류를 16개로 확정하여 다른 암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도 문제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경우 우리나라에는 포함 안 된 다수의 고형암을 포함시켰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규정과도 모순이다. 셋째, 암 이외의 질병은 사실상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심장질환, 순환기계통 등의 장애는 방사선으로부터 발병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넷째,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제10조에는 제외되는 고형암이라는 제목으로 악성종피종, 호지킨스림프종, 흑색종을 제외시켰다. 이렇게 구체적인 고형암을 제외할 경우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어떤 검토를 했는지 의문이다. 특히 호지킨스림프종은 방사선으로 발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원안위의 이러한 규정은 이중 삼중의 제한장치로 피폭노동자들의 직업병인정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산재 보상의 취지에 맞도록 개연성혹은 상당인과관계개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의미 있는 산재 인정 사례

저선량 피폭도 백혈병 발생 인정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위원장 정진주, 이하 질판위’)는 올해 월성핵발전소에서 약 2년간 하청노동자로 근무한 노동자 A에 대해 직업성 암을 인정했다. 필자가 판단할 때 이번 판정은 방사선 피폭 노동자들의 직업성 인정에 대한 현재의 제도나 관행을 뿌리부터 뒤흔든 대단히 의미 있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 탈핵신문 707)

한국수력원자력은 노동자 A가 근무기간 동안 외부피폭 42.16mSv와 내부피폭 0.72mSv에 피폭한 것으로 추정했다. 질판위는 외부피폭량을 근거로 계산한 95%, 99% 신뢰상한에서 인과확률이 각각 40.63%, 45.97%로서, 95% 신뢰상한에서 50%이상인 경우만 인정하고 있는 지침 값에는 모자라지만 다른 위험요인을 확인할 수 없고,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비롯한 백혈병이 50mSv 이하의 저선량 피폭에도 발생가능하다는 역학 연구가 있으며, 미량이지만 내부피폭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업무관련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질판위는 최종적으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노동자 A에 대한 업무상 질병을 승인하였다.

위의 내용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1)한수원은 법정한도 이내에서 피폭을 관리했으나 직업병이 발생했다, 2)원안위의 고시 방사선작업종사자 등의 업무상 질병 인정 범위에 관한 규정에서 인정요건으로 규정하는 소위 <인과확률>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3)50mSv 이하의 저선량피폭에도 백혈병이 발생한다고 인정했다, 4)업무관련성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본 취지인 상당인과관계를 적용했다, 5)미량의 내부피폭을 인정근거로 설명했다.

박찬호 반핵의사회 운영위원

탈핵신문 2019년 11월(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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