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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절차적 합리만 따지는 공론화 폐해 우려

정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4월 3일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재검토위원회’ 위원을 중립적 인사 15명으로 구성할 계획임을 밝혔다. 산업부는 고준위핵폐기물 관리방안을 공론화 할 계획으로, 그 공론 의제와 공론 방법 등을 설계할 위원을 중립적 인사로 구성하겠다는 뜻이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방안을 두고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수십 년 동안 처분방법, 부지선정 등을 두고 고심해 왔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20년 가량 심지층 처분 방식을 택해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했다. 하지만 스웨덴 환경법원은 심지층 처분에 사용하는 구리용기 부식 등을 이유로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허가 신청을 거부했다. 

한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해 몇 차례 부지선정 방식을 변경해 왔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택한 방식은 ‘공론화’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 정부는 건설재개와 중단측이 싸우게 했다. 정부는 양 측이 싸운 결과를 가지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했다. 당시 많은 언론은 그 공론화를 ‘숙의민주주의’라고 찬양했고, 정부 역시 스스로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자찬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결정은 숙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한 일인지 따져보자. 신고리 5‧6호기 건설부지 주변은 국가 평균인구밀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원자로를 건설해서는 안 되는 지역이다. 이 부지와 주변지역은 활성단층대가 60개 넘게 발견된 지역이며, 다수호기로 인한 사고위험도가 높고, 중대사고 시 주민보호조치도 적절히 수립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공론절차를 거쳐 다수가 건설을 재개하자고 하면 정부는 그 의견을 따라야 하는가? 다수가 건설을 재개하자고 하더라도 건설하지 않아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으면 건설은 중단하는 것이 맞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추진하려는 고준위핵폐기물 관리방안 공론화 역시 명확한 정부 입장 없이, 공론화라는 절차적 합리성을 얻어내면서, 최종처분에 대한 대책 없이 핵발전소 부지 안에 임시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는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핵발전소를 멈추더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국민을 설득해서라도 고준위핵폐기물 관리방안에 대해 더 깊은 내용을 가지고, 오랜 기간 사회적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

정부는 지난 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 재검토 준비단’을 운영했다. 하지만 국민들 가운데 재검토준비단을 왜 운영했는지는 고사하고, 운영한 사실조차 대다수는 모르고 있다. 정부는 이 사실을 공론장으로 올리는 일에 조금도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는 핵폐기물 문제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나서 그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탈핵신문 2019년 4월호(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