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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부산·울산·경남 380만 명 주민들은 ‘공공’의 테두리 안에 없었다

∥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 소송 참관기 _ 고이나 시민

 ▲ 고이나 시민


부산·울산·경남 380만 명 주민들은 ‘공공’의 테두리 안에 없었다


나는 '일상생활 속 에너지 절약' 정도만 챙겼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2011년에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내 삶은 달라졌다. 이유식 식재료 공부를 하다가 방사능의 심각성을 느꼈고, 더욱 집중해 알아보니 방사능이 ‘핵, 핵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탈핵에 관한 강연·세미나·토론회에 가고, 경주 나아리 주민들도 만나고, 영덕에 내려가 골목마다 다니며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아이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가 ‘잘가라 핵발전소 서명 운동’도 했는데 그 때 내가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물려줍시다”였다.


2016년, 신고리5·6호기 건설허가를 두고 매번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를 방청했다. 6월 23일 엉터리로 건설 허가가 나는 과정을 보았고, 회의장에서 분한 눈물을 흘렸다. 결과를 바꿀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에 나와 아이도 참여했다. 그렇게 나는 117번째 원고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6월 29일 첫 재판이 열렸다.


법정은 가득 찼고, 양측의 변론이 오갔다. 그런데 피고 측 변론의 대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피고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고,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들며 무조건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우겼는데 재판 때마다 그랬다. 피고 측 변호인들은 말이 거의 없고, 오히려 방청석에 있는 피고 측 사람들이 부지런히 쪽지를 주었고, 이 사람들이 대신 나와 답변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2년 가까이 걸린 이런 재판과정에 두세 번 빼고 거의 참석했다. 핵이 생소해 처음에 많이 어려웠을 재판장은 늘 양측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고, 공정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2월 14일 재판 결과가 나왔다.


2년 가까이 재판마다 우리 측 변호사 두 분께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시며 위법한 이유를 주장했는데, 열 번도 넘게 변론을 듣고도 13가지 중 2가지만 위법이라니. 더군다나 지진에 대해 피고 측 의견을 다 받아들이고, 우리 측 의견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정한 평가를 내줄 거란 기대는 무너졌다. 위법이니 취소처분을 내려야 하는 게 맞을 텐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건설은 계속 하라니. 위법해도 핵발전소를 지으라는 말을 법정에서 들었다.


380만 명의 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은 ‘공공’의 테두리 안에 없었다. 판결문 마지막에 “피고 패소 판결이다. 그러니 패소자가 부담하는 소송비용을 전부 피고 측이 부담하라”고까지 했는데, ‘공공복리’를 위해 건설을 취소할만한 까닭은 없다는 것.


이대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에 발걸음을 같이 하고 싶다. 변호사님들, 그리고 재판 내내 애쓰신 그린피스 활동가님들, 같이 방청석을 채워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탈핵신문 2019년 3월호(복간준비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