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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김형률 12주기 추모제 후기

폭의 후유증이 유전을 통해 후손들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국내 최초로 알린 청년, 김형률. 그가 떠난 지도 벌써 12년이 지났다.

 

지난 527() 부산 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소극장에서 김형률의 12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40여명 정도 참석한 추모제는 강제숙 추모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평화를 위한 묵념을 한 뒤 강세진 감독이 촬영한 영상을 시청했다. 부산 영락공원에 안치되어 있던 김형률의 묘소를 합천의 선산으로 이장한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김형률의 부친 김봉대 님은 나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형률이의 묘를 계속 관리하기 위해 조상이 묻힌 합천으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핵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을 또박또박 읽는 어머니 이곡지 님의 얼굴에는 예전보다 그늘이 많이 걷혀 있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기념비 제작자 우송 정상래. 그 오른편으로 김형률 부친 김봉대,

모친 이곡지. 전진성 교수(부산교대), 한정순 전 회장(한국원폭2세 환우회)

 

여는 인사말에서 김종세 민주관장은 김형률을 피해자가 아닌 반핵평화인권운동가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매년 김형률 추모제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고바야시 하츠에 부장(일본 피폭자 청년대책)김형률 동지, 우리들은 아베를 반드시 타도하고 전쟁을 막겠습니다. 합천에서 질타·격려하며 지켜봐주세요. 반드시 승리합니다라는 내용의 추도사를 했다. 한홍구 교수(성공회대)작년에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다행히 올해는 정권이 바뀌어 김형률을 기억하는 실질적인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김형률이 떠난 뒤 원폭2세들의 인권 개선에 실질적인 성과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미국의 사과를 촉구한 김형률의 유지를 반드시 실현하자, “핵폭탄을 제작한 록히드 마틴 등 미국 군수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가해자인 미국에 꼭 사죄와 보상을 받아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배성민 부위원장(노동당 부산시당)핵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김형률의 길에 노동당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핵폭탄의 끔찍한 흉터 위에서 평화의 꽃을 피워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흉터의 꽃에 대해 저자인 본인이 소개를 했는데 생계를 위해 합천에서 히로시마로 떠난 할아버지의 삶이 소재가 된 소설이다. 권병재 도토리숲 대표가 핵폭탄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쓴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라는 동화를 소개했다. 한정순 원폭 2세 환우회 부회장은 최근 동안 병마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환우와 김형률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낭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형률의 조카가 다정다감했던 삼촌을 추억하며 추모편지를 낭송했다. 김형률의 부친, 김봉대 님은 원폭 2세를 배제한 원폭특별법 개정운동을 통해 아들의 뜻을 이어나가겠다고 인사말을 했다.

 

추모제 마지막 순서로 김형률의 부친 김봉대 님이 김종세 관장(부산 민주 공원)에게 김형률의 유품을 기증하는 사료 기증식이 있었다. 김종세 관장은 김형률의 유품을 잘 분류하고 정리해서 고인의 뜻을 후세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이어 김형률을 생각하는 모임의 전진성 교수는 부산 민주공원에 김형률의 유품자료실이 잘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민주공원에 자료실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반독재 민주화에서 인권과 평화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김형률 사료기증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봉대 님은 자신의 생전에 아들의 유해가 합천으로 이전되고 유품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소감을 밝혔다.

 

527() 김형률 12주기 추모제 행사 중 부산 민주 공원에 김형률의 유품을 기증하는 사료

기증식이 있었다. 부친 김봉대 님(사진 왼쪽)과 김종세 관장(부산 민주 공원)의 모습

 

 

헌화와 분향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2015년 민주공원에 심은 추모나무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다음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합천으로 이동했다. 김형률 추모 사업회는 해마다 부산과 합천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김형률의 숭고한 뜻을 지키고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김형률이 생전에 늘 외쳤던 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원폭 2세 환우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탈핵신문 2017년 6월호 (제53호)

김옥숙(장편소설 흉터의 꽃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