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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눈으로 바라본 차별과 배제의 땅, 후쿠시마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한다. 이후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재일조선인인 서경식 교수가 220() 전주에서 차별과 배제의 땅, 후쿠시마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서경식 교수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현재 도쿄경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승과 서준식의 구명운동을 벌였고, 1980년대초부터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실, 일본의 우경화,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 등을 화두로 글을 써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개월 후에 서경식 교수가 찾아간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조선인학교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차로 3시간 떨어진 니가타현으로 학생들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운동장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는데, 일본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 조선인학교에서는 제염(오염제거)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주중에는 니가타현에서 공부하고 주말에만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서 그 조선인학교는 폐교된 것으로 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후쿠시마에는 1945년에 17,000명 정도의 조선인이 있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식민지의 궁핍한 사람들이 강도 높은 노동을 견디며, 탄광과 금광의 노동자로 일한 것이다. 1960년대 에너지 정책이 핵발전으로 바뀌었고, 여전히 가난한 조선인과 일본인이 광산에서 핵발전소로 옮겨가 일하게 되었다. 이들이 근대 국가 일본의 에너지 근본을 지탱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후쿠시마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서 교수는 핵폭탄 투하의 현장이나, 관동대지진의 예를 들며, 재난에도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이시무레 미치코라는 시인의 증언에 의하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까마귀들이 많이 날아와 시체를 뜯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조선인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과 달리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고, 사망 후에도 거두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은 지진의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소문과 그에 따른 일본인들의 폭력에 희생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후쿠시마에서 강도질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SNS 상에서 떠돌았던 것이다. 그런데, 5년이 지난 뒤에 한 대학에서 일본인들에게 설문했더니 86%의 응답자가 그 소문을 믿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은 언제라도 차별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서 교수는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2등 국민 취급받은 오키나와인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할 때 오키나와인들은 자결을 강요받거나, 폭격 속으로 뛰어나가도록 요구받았다. 일본인에게 오키나와인들은 결국 믿을 수 없는 존재이거나 필요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 반하는 일본인 역시 차별받기는 마찬가지이다. 핵발전소사고 이후 불안해서 스스로 피난한 사람들을 자주피난자라 부르는데, 국가는 이제 이들더러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고 그동안 주었던 보조금을 올해 3월에 중단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불안 속에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타지에서 생계를 걱정하거나를 선택해야 한다.

 

서 교수는 핵발전이 중단되려면 일본의 근대 구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핵발전이 유지되는 이유로 플루토늄을 보유해 핵무기를 가지려는 일본 정부, 도쿄전력과 같은 대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일본의 부자·기업들, 국가의 보조금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가난한 지자체의 정치인들을 들었다. 가난한 ‘2등 국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배경으로 깔고서 말이다.

따라서 탈핵운동은 반전운동과 연계되어야 하고, 역사 인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며, 긴 시간 척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서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했다.

 

탈핵신문 제50호 (2017년 3월)

김재병 통신원(전북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