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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에너지전환

에너지 전환을 역행하는 전력 시장 개방

정부는 지난 6월 전력판매시장 민간개방 정책을 발표했다. 단계적 민간개방을 통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다양한 사업모델을 창출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다수의 민간사업자 참여로 소비자 선택권이 보장되고 신규서비스(통신과 전력의 결합 상품 등)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유사한 논리로 통신과 정유산업이 민영화되었지만,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원가조차 모르는 높은 요금, 과잉중복 투자와 민간의 독과점 시장, 그리고 과잉소비의 현실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전력판매 시장 1단계 개방 대상은 설비용량 1kW 이상, 2단계 개방 대상은 300kW 이상 소비자이다. 이들은 바로 산업용 전력을 사용하는 대공장들이다. 이들 산업용 고객들은 송전탑을 통해 고압전기를 직송받기에 변전·배전·검침비용이 현저히 적다. 한전 입장에서는 우량고객이다. 그러나 판매시장이 개방되면 이들부터 한전의 고객에서 이탈할 것이다. 현재 전력의 발전부문 중 2023%를 포스코, SK, GS 등이 점유하고 있다. 그만큼 민영화되었다. 최근에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발전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스스로 생산한 전기를 계열사에게 값싸게 공급하고, 남는 전기는 적정 이윤을 붙여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 이것이 전력 시장 개방이다.

 

우량 고객을 잃은 한전은 당장 수익은 줄 것이다. 그러나 전기공급비용은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남겨진 저압고객 즉 불량 고객인 국민들이 적자 등 각종 이유로 모든 비용을 떠안게 된다. 정부의 판매시장 개방 시나리오에 따라 2021년이 되면, 전체 소비자에게 판매시장이 개방된다. 서서히 불량 고객들을 중심으로 가격을 올릴 것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는 판매사업자들은 충분한 이윤이 보장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장개방의 비용은 판매사업자들과 에너지 다소비 기업, 민간사업자들에게는 이윤을 창출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국민들, 불량소비자들은 비용을 떠안는 구조로 변환할 것이다. 이 시점에는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핵발전과 석탄화력 축소 등의 정책은 발 디딜 수 없다. 생산·판매업자들 입장에서는 생산단가가 낮은 혹은 판매원가가 적은 핵발전과 석탄만을 선호할 것이 무척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외사례를 강조하지만,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 핵발전소사태의 주범인 도쿄전력 등 9개 민간전력 기업이 철저히 지역을 독점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조차 전혀 먹히지 않는 완전 민영화된 나라이다. 일본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한국의 3배이다. 민간 지역독점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민간끼리 경쟁을 시도한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 바로 현재 일본의 모습이다. 전력 민영화를 가장 앞서 추진했던 영국은 에너지 빈곤층이 20%에 달한다. 미국의 대다수 주들은 개방 정책을 철회하고 강한 규제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 전력산업을 점차 재공영화 형태로 바꾸어나가고 있다.

 

전력 민영화는 요금 상승, 잦은 고장과 공급 불안, 서비스 질의 악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민영화된 나라들의 선례를 보면 완전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발전과 판매가 결합하는 시장, 대기업들의 과점시장으로 변모했다.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들이 직접 전기를 생산하면서 또 싼 가격으로 판매·거래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으로, 한국과 같이 산업용 전기소비가 높은 다소비 국가일 경우, 소비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미 2001년부터 시작된 한국 전력산업 민영화의 실패는 충분히 입증되었다. 고유가로 한전이 매년 수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전기요금을 연달아 인상할 때에도, 민간 발전회사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챙겼다. 20119월에 순환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는 1인당 전력 소비가 OECD 국가 기준보다 너무 높다고 강조하면서 전력부족 사태의 주범이 국민인 양 호도했다. 한국의 주택용 전력 소비량이 OECD 33개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고 산업용 전력 소비량은 OECD 평균의 2배에 육박한다는 사실, 한국의 총 전력 사용량의 55.4%가 산업용인데 반해 주택용 전력 사용량은 13.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감췄다. 2015년 기준 주택용 전력 요금단가는 123.69원이고, 산업용 전력 요금단가는 86.84%나 저렴한 107.41원이다. 그래서 산업용전력 사용량은 지금도 가파르게 상승중이고, 핵발전과 민간화력발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축소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이에 역행한다. 근본적인 대안 창출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의 대응은 오히려 전원별 대응으로 분산되어 있다. 핵발전을 줄이면 석탄을 늘릴 것이고 재생가능에너지는 신에너지·신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되고 있다. 에너지 시스템 전반의 재편을 위한 기획, 기저발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바로 이 때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에너지 저소비를 실현하는 주체로 마땅히 자임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그 비용을 우리만 감당해야 한다면 참으로 부당하지 않은가.

 

국민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재벌과 대기업만을 이롭게 하는 전력산업 민영화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탈핵신문 2016년 8월호

송유나(사회공공연구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