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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71년만에 인정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은 오바마

수천명의 한국인의 죽음을 애도한다(mourn the dead,thousands of Koreans).”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에 희생당한 사람들 중에 한국인이 있다는 이 말을 공식적으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듣기까지 71년이 걸렸다.

 

2005NPT(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에 평통사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가 지원하는 비행기를 타고 온 일본인 천여명이 자신들의 나라가 세계유일의 피폭국이라며 핵무기에 의한 참상을 홍보하고 핵없는 세상을 주창하고 있었다. 천여명이 넘는 일본 사람들은 미국의 핵폭탄투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북한이나 이란의 핵을 규탄하는 기이한 행보를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피폭1세인 곽귀훈 선생 한 사람이 일본인들과 함께 주변행사에 참가했다.

 

5월 27일, 일본방문단이 히로시마 공원 한켠에 외로이 서있는 한국인피폭자위령비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며, '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는 모습.

 

 

한국, 세계 두 번째 핵폭탄 피해국가미국·일본·한국 정부, 71년째 조사도, 사죄도, 배상도 없어!

한국은 일본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피폭을 당한 핵폭탄 피해국가다. 오바마는 히로시마 연설에서 한국인 사망자 수를 수 천명으로 언급했지만 이는 실상을 모르는 소리다.

한국인 피폭자는 7~10만명으로 일본인 피폭자의 1/10이 넘으며, 사망자는 약 5만명으로 일본인 사망자의 1/6에 달한다. 살아남은 한국인 피폭자 중 43천여명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들과 그 후손들은 가난과 냉대, 무관심 속에서 핵폭탄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숨져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후세들이 핵폭탄 피해의 유전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폭 7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이나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폭자들 전모에 대한 조사도,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무능과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이에 평통사는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알리고 미·일 양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NPT 평가회의에 피폭1세인 심진태 선생과 피폭2세인 고 김형율 씨 부친 김봉대 선생과 함께 참가했다. 심진태 선생은 유엔본부 안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미국과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의 책임을 묻는 연설을 진행하였다.

 

피폭 1~2세 등 히로시마 방문단,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참배 촉구오바마, 결국 외면!

오바마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소식을 접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로 가서 오바마 대통령을 직접 만나 한국인 피폭자 인정, 조사, 사죄, 배상을 촉구하자고 마음을 모으고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려내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 평통사에 지원을 요청했다. 심진태 선생을 비롯한 피폭1세 어르신 다섯 분과 피폭2세 한정순 선생, 그리고 이분들의 방일활동을 도울 합천평화의집 강제숙 운영위원과 나를 포함한 평통사 성원 세 사람, 모두 열 사람의 일본방문단이 히로시마로 향했다.

 

일본방문단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 527() 하루만 다섯 번의 기자회견과 브리핑, 설명회를 진행할 정도로 국내·외의 많은 언론을 향해 방일 목적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일본 피폭 희생자뿐만 아니라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도 참배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인 핵폭탄피해자 위령비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밖에 세워졌다가 1999년에야 공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봉쇄된 찻길을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간 후, 일본 희생자들을 향한 헌화와 참배, 연설, 일본 피폭자들과의 악수, 포옹을 진행했다. 그리고 아베 총리와 나란히 공원 안을 걸어 원폭돔이 보이는 곳에 멈추어선 후 마지막 애도의 표시를 했다. 바로 그 마지막 지점에서 100발자국 떨어진 곳에 한국인 위령비가 있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리무진을 타고 공원을 떠나버렸다. 그는 연설을 통해 한국인 피폭자도 희생되었다고, 71년만에 공식적으로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왜 한국인들이 아무 이유없이 피폭당하고 죽어가야 했는가?”, 누군가는 답해야 한다!

왜 한국인들이 아무 이유없이 피폭당하고 죽어가야 했는가? 이 질문에 누군가는 대답해야 하지 않는가? 이 질문으로부터 아베 총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 피폭자들은 경찰의 봉쇄에 막혀 공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공원 바깥 길가에서 피켓을 들었다. 오마마 대통령이 일본 피폭자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는 동안 한국인 피폭자들은 오바마, 아베는 한국인 피폭자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피켓을 들지 말라는 일본 경찰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피폭1세 심진태 선생(앞 왼쪽)과 피폭2세 한정순 씨(앞 오른쪽) 모습  사진제공=박석분

 

일본 방문단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히로시마 공원 한켠에 외로이 서있는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앞에 서서 작별인사를 드렸다. “우리가 힘이 없어 겨우 인정받는데 그쳤습니다. 기어이 사죄받고 배상받겠습니다. 핵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향이 목 타게 그리웠을 영령들을 위해 고향의 봄노래를 불렀다. 모두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와 회한과 다짐의 눈물이

 

탈핵신문 2016년 6월호

박석분(부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