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자란’ 미디어활동가의 영덕주민투표 현장 참관기

미디어활동가들이 투표 전날 영덕에 모여, 미디어팀을 꾸리기로 했다. 나는 갈등이 고조된 영덕으로 가면서 잔뜩 긴장했다.

영덕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한 말을 들었다. “수민 카메라 들고 빨리 따라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투표소 가까이 천막을 치고 직원을 20명씩 배치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내 어깨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영덕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 사무실에 가니 모두 투표소로 나갔는지 아무도 없다. 둘러보니 온갖 것이 보였다. 그중 헤드라인에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는 불법’이라고 찍힌 지역신문이 눈에 띄었다. 넘겨보니 20면 중 5면에 한수원 광고와 주민투표 반대 광고가 실려 있다. 한수원은 지역신문뿐만 아니라 영덕주민에게도 물량공세를 했다. 쌀이나 수박을 돌리며 ‘주민투표 불참’을 외치고 다녔다. 영덕은 마지막 신규핵발전소 예정지다. 영덕주민의 핵발전소 반대의견이 강력해, 영덕에 핵발전소를 짓지 못하면 한수원은 갈 곳이 없다. 그러니 노골적인 물량공세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미디어활동가의 역할은 주민투표 기록과 한수원의 투표방해 행위 감시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가 든 카메라는 도움이 될까?

 

투표 첫날, 내가 간 곳은 달산·지품 투표소다. 2012년 4대강 댐 건설 반대운동의 기억으로, 주민이 잘 단합하는 동네다. 주민들은 새벽부터 트럭을 타고 함께 투표하러 왔다. 주민투표를 반대하는 현수막은 찢겨 있다. 투표소 맞은편 주차장에서 1시간째 서성이는 남자를 봤다. 투표소 사진을 찍고 있다. 투표소 관리원에게 물어보니 한수원 차 두 대에 직원 네 명이 와 있단다. 투표소 쪽으로 대놓은 차에는 블랙박스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다. 한수원에서 나온 차 대부분은 렌트카다. 자신의 정보는 숨기면서 투표하는 주민의 얼굴을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하러 온 주민을 인터뷰하려 했지만 좀처럼 카메라 앞에 서려 하지 않았다.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인터뷰는 포기하고 투표소 풍경을 촬영했다. 투표소 관리원이 주민의 얼굴을 정면으로 찍지 말아달라고 했다. 주민들은 투표하러 왔다는 것이 혹시나 이웃에게 알려질까 걱정한단다. 한수원의 투표방해 행위와 그에 따라 ‘주민투표 불참’이라 말하는 이웃을 봤기 때문이다. 그제야 인터뷰를 거절했던 것이 이해됐다.

 

첫째 날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한수원이 너무 조용한 것이 수상하다며, 둘째 날에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했다.

투표 둘째 날에는 주택가 가운데에 있는 강구3투표소에 갔다. 카메라가 오기 전, 찬성 측 주민과 한수원 직원이 투표소에 와서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한수원 차 여섯 대가 있다. 11일에는 많아도 두 대였다. 그래도 카메라가 오면 차 몇 대가 빠진단다. 뿌듯하기도 했지만 카메라가 없을 때는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내가 한수원 차를 찍자, 차에서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나왔다. 코앞에서 위협하며 ‘왜 찍느냐’고 소리를 높였다. 내가 어려보이고 여자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 사이 경찰 6명이 왔다. 몸이 떨렸다. 이 작은 주택가에서 소란을 크게 피워 주민들 겁주려는 것 아닌가? 나는 영덕에 있는 3일 내내 한수원의 투표방해 행위를 봤다. 핵발전소 반대 영덕주민들은, 이렇게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한수원의 압박을 꽤나 받았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탈핵을 계속 외칠 수 있을까.

 

투표가 끝났다. 미디어팀은 개표방송을 하러 개표소로 갔다.

 

자정, 투표율을 공표하고 개표를 시작했다. 쏟아지는 투표용지에 플래시가 터졌다. 개표 시작을 찍은 사진 기자들이 개표소를 떠났다. 곧 언론사들은 기사를 내보냈다. ‘영덕 원전 주민투표 참여율 32.5%, 투표자수 미달로 효력 상실’ 영덕의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기사를 의심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미디어팀이 개표방송을 한 이유가 그것이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숫자가 포함하고 있지 못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디어팀의 개표방송에는 영덕을 지키는 눈을 담았다. 투표소 자문변호사를 맡은 변호사의 눈, 주민투표를 준비해 온 두 단체의 눈, 5년 동안 반핵운동을 한 영덕주민의 눈(‘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개표 생방송’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개표위원장이 개표결과 발표를 했다. 온 건물에 탄성소리가 울렸다. 서로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지친 얼굴들이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개표 결과를 밝게 전하지 못했다. 박혜령 위원장의 눈물 섞인 개표결과 발표를 끝으로 4시간 30분의 개표방송이 끝났다.

 

2015년 12월호 (제37호)

김수민(‘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영덕’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