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선인 피폭자이자 조총련 활동가 이실근 선생(1929년생)의 좌충우돌 인생과 활동의 자전적 기록 『Pride:공생으로의 길, 나와 히로시마(共生への道 私と広島)』(2006, 矽文社)인 자서전을 번역한 책이다.
전체 4장, 에필로그·후기·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장까지는 가족과 출생, 성장, 재일 조선 청소년이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과 자각 등을 거쳐, 한국 전쟁 시 조총련 활동과 투옥, 감옥생활 등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개인사를 진솔하고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다.
‘나의 히로시마’라는 책 제목에서 낚였던(?) ‘히로시마’ 피폭과 히로시마현조선인피폭자협의회(이하, 히로시마조피협) 구성, 국내·외 활동 등은 10~2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만 서술되어 아쉬웠다.
이실근 선생은 1945년 8월 7일 귀가 도중 히로시마에서 입시피폭(入市被爆, 핵폭탄 투하 이후 히로시마시에 가족을 찾는다거나 구조활동 등을 위해 들어간 이들이 잔류 방사능 영향으로 인해 피폭을 당한 경우를 말함)을 당한다. 하지만, 조총련 활동과 수감 등을 거친 이후인 1975년부터 오랫동안 맘 먹었던 조선인피폭자 조직 구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히로시마 거주 조선인 피폭자들의 실태조사, 1979년 조선인 피폭자들의 삶의 증언집 『하얀 저고리의 피폭자(白いチョゴリの被爆者)』 도서 간행, 1980년대 유럽·미국 등 해외활동, 1989년부터 북한 피폭자들을 찾아내고, 교류하는 활동 등등을 정렬적으로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실근 선생의 주요 활동의 ‘흐름’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서술했다면 더욱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었을 터인데, 다소 아쉽게 정리된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 활동 평가 등을 언급하는 데서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꽤 진국도 있다. 꽤 애쓴 번역이지만, 미흡한 점과 한계도 군데군데 보인다.
암튼, 이런 이실근 선생과 히로시마조피협 활동의 의의를 역자인 양동숙 씨가 부록인 ‘이실근의 생애와 히로시마조피협 약사(略史)’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 데,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한국 원폭피폭자운동은 …(중략)… 일련의 ‘수첩재판’의 승소와 일본의 피폭자 원호제도의 편입과정에서 점차 정치성을 잃고 반핵·평화운동 사상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히로시마조피협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전쟁책임을 일관되게 묻고 다른 동아시아의 전쟁 피해자와의 연대를 중시하고 일본정부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또 조선인 원폭피해자를 재외 원폭피해자 모두의 문제와 연관 짓고, 전 세계 반전·반핵·평화운동 안에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 오늘날 한국 원폭피해자는 일본의 지원제도에 편입해, 일본인 원폭피해자와의 동화를 스스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중략)… 이는 한국 원폭피해자운동이 그 문제를 소홀히 한 채 걸어온 데에 하나의 성찰점을 던져준다”
나의 히로시마―공생의 길, 평화의 길
이실근 지음, 양동숙·여강명 옮김, 논형, 2015년 7월
탈핵신문 2015년11월호
윤종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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