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째 굴러온 당신’ 남자 주인공의 뜬금없는 대사, 협찬이란 돈의 힘
네, 정답입니다. 날창날창한 아나운서의 말이 사뭇 궁금했던 답을 시원하게 알려준다. 핵발전과 관련된 상식을 또 하나 알게 됐다는 건 덤. 이어 한수원 직원들을 비추는 똑똑한 화면. 믿으세요. 핵발전은 이렇게 똑똑한 직원들이 똑똑하게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진실. 그날의 똑똑한 원전은 돈의 힘으로 가능했다. 한수원이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4억원을 통 크게 쏨으로 이뤄졌다. 원자력을 친근하게 알리기 위해 국민의 세금과 전기료로 지상파 프로그램을 통째로 산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비단 이뿐이랴. 근래 종영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 남자 주인공이 뜬금없이 날리는 ‘양성자를 이용한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 완치율이 증가…’어쩌구 하는 대사도 역시 협찬이라는 이름으로 원자력문화재단이 집행한 돈의 힘. 이런 에피소드가 8번 나오는데 집행한 돈은 1억6천5백만원.
숱한 비리사건, 밀양송전탑 논란 등…한수원은 얼마나 광고예산을 집행했나?
궁금했다. 지난해는 한수원 입장에서 보면 각종 원전비리사건이 연일 터졌고, 밀양에선 송전탑으로, 고리핵발전소는 수명연장으로 꽤나 속 시끄러운 해였다. 한수원은 얼마나 광고 예산을 집행했을까? 어느 방송에, 어느 중앙지에, 어느 지역신문에 돈을 썼을까? 그 광고료로 언론은 어떤 논조의 기사가 실렸을까?
알려주세요. 한수원이 집행한 광고·협찬·축하·특집·광고 등 언론관련 집행내역, 언론간담회 및 간담회 홍보물품 집행내역, 언론사 행사지원내역, 원전시찰 및 취재협조 내역, 영상보도자료 제공 현황, 참 ‘우호적 언론네트워크 형성 위한’이라고 명토 박아 놓고 예산신청한 정기간행물 내역까지. 한수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공문목록 3년치를 뒤져 정보공개청구했다.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한수원의 답변, ‘영업비밀’, ‘자료없음’
영업비밀입니다. 해당 내용은 언론사영업비밀이라고 비공개 결정했다. 그래도 켕기는 게 있는지 연도별 광고집행 전체 내역만 알려왔다. 응,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건가? 요즘말로 ㅂㄷㅂㄷ(부들부들).
지난 3월 한수원을 대상으로 언론사 홍보관련 예산집행 등 상기내용과 공문목록 중 흥미를 끌었던 제목 ‘반원전 NGO 대응논리 작성지원 자문료 지급’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홍보비는 말한 것처럼 연도별 총액을, 반원전 NGO 대응논리 건에는 ‘자료없음’을 알려왔다. 공공기관의 광고집행내역은 숱한 행정심판을 통해 공개대상임을 명시하고, ‘관련 공개는 옳다’는 법제처 해석까지 붙여서 정보공개 청구했는데도 이렇게 알려왔다. ‘야, 이것들 알면서도 생까는구나. 귀찮게 만들어서 알아서 그만두게 하려는구나./
작정하고 붙고 싶었다. 지들 말대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직결된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투명하고 안전한 원전운영을 하겠다면서도 정작 법과 제도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항마저 무시하는 저들의 위선을, 비밀주의를, 권위주의를 벗기고 싶었다. 권력감시형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로서 이번 건을 해결치 못하면 일반 시민들은 더더욱 한수원의 행태에 문제제기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울산민변 등과 함께 ‘클라우드 펀딩’을 통한, 비공개처분 취소 행정소송 시작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할 궁리를 했다.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건을 잡은 기회였다. 행정심판 따윈 무시하는 이들이니 소송으로 분명히 매듭을 짓고자 했다. 이번에 뚫어놓으면 다음엔 누가하더라도 보다 더 쉬워질 터이다 싶었다.
뜻있는 시민들이 십시일반하여 소송비용을 마련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것을 시도했다. 인터넷 업체를 통해 후원을 받는 방식으로 최근에는 영화제작, 출판비 마련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돈도 돈이지만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점에 주목했다. 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울산지부(울산민변)의 참여를 요청했다.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동영상이나 웹자보 같은 부분엔 지역사회의 뜻있는 분이 도맡아 주셨다.
올해 6월 10일, 한수원의 (일부) 비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장 제출과 함께 클라우드 펀딩 모금을 시작했다. 많은 분이 호응을 해주셨는데, 그만 결제가 쉽지 않은 업체를 선정하는 바람에 원활치는 못했다. 그럼에도 7월 20일 성공적으로 모금을 마쳤다.
소장을 제출하자마자 한수원측에서는 ‘반원전 NGO 대응논리’건에 대해서는 “찾아보니 있네요”라며 연락이 왔다. ‘아, 그토록 담당자 분과 통화하기 힘들더니만, 연락 주시네요’라며 받은 자료는 실상 별 내용이 없었다. 0000처리되어 있는 제목과 000된 저자는 내용을 보니 ‘탈핵한국’을 쓴 김익중 교수의 책 내용을 반박하는 짧은 내용이었다. 자신들이 생산한 공문목록이라고 올려놓고서도 없다고 하더니만, 소송을 거니 알려주는 얄팍함. 그리고 별 내용 없는 한수원측의 답변서에 반박자료를 보내면서 다시 이 건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개 거부할 정당한 이유 없다’는 판결…한수원은 관련 정보를 조속히 공개하라!
10월 15일, 이겼다. ▲공기업의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하는 점 ▲국가경제 및 국민의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정성·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예산집행의 합법성·효율성 확보라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공개를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판결문이 도착했다.
모두가 기뻐했다. 한수원을 상대로 모두가 이기는 광경을 봤다.
한수원은 당연히 공개해야하는 공공의 정보를, 세금과 전기료로 재판비용을 낭비해 가며 막아왔다. 거짓말과 비밀주의로 국민의 안전과 여론을 기만해 왔다. 국민의 세금과 전기료로 공론의 방향을 유도하고 편향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유통시킴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물론 공공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국민의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이번 승리는 한수원이라는 부당한 광고자본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번 승소는 공공기관의 정보통제와 왜곡에 문제의식을 가진 그리고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정책을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 추진하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참여에 의해 가능했다. 한수원은 이번 재판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조속히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울산시민연대는 해당 자료가 공개되면 내용을 분석해 시민들과 공유할 것이다.
탈핵신문 2015년11월호
김지훈(울산시민연대 시민감시팀장)
'부산,울산(고리,신고리관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으로 지면을 산 대국민 사기극 - ‘원전, 좋아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 (0) | 2015.12.30 |
---|---|
“물은 생명, 누구나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 있다” -기장해수담수 수돗물 공급 논란…“주민투표로 결정하자” (0) | 2015.12.30 |
제5회 부산반핵영화제를 마치며…원폭 70년, 핵 없는 사회를 위한 원년 (0) | 2015.08.24 |
7월 10일부터, ‘제5회 부산반핵영화제’ (0) | 2015.08.24 |
고리1호기 폐쇄, 탈핵의 시작이다! 고리1호기 폐쇄 결정, 그 의미와 향후 과제 (0) | 2015.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