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경성대 교수,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고리1호기 영구정지 결정, 새로운 역사를 썼다!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 결정이 났다. 탈핵시민단체는 물론 머리맡에 핵발전소를 이고 살고 있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주민들이 모처럼 기뻐하고 있다.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비롯한 지역의 시민단체가 막바지까지 총력으로 한수원의 고리1호기 수명재연장 신청을 막아낸 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안전신화의 붕괴, 부정부패·은폐비리로 얼룩진 핵발전 당국과 업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분노였다.
이로써 지난 1978년 상업운전을 개시한 고리1호기는 1차 수명연한인 2017년 6월 18일 해체 수순에 들어가게 된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하에서 묵묵히 탈핵운동을 해온 부산반핵대책위와,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에 결합한 모든 단체 그리고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탈핵시민의 힘이 ‘핵마피아’의 아성을 깨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제 시작이다…수명연장 더 이상 허용해선 안된다!
그런데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이 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일뿐이다. 안전한 폐로 감시는 물론 단계적 탈핵을 이루고 탈핵에너지전환도시로 나가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고리1호기 폐로와 관련해 생각해보아야 할 과제는 제법 손을 꼽아봐야 할 것 같다.
첫째, 향후 고리1호기에서와 같이 설계수명연한을 넘긴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더 이상 허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올 들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절차상 하자를 보이면서 날치기 승인한 월성1호기 재연장문제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고리2호기의 경우도 오는 2022년이 설계연한 40년이 되는 해이다. 노후핵발전소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신규 계획과 증설을 허용해선 안된다!
둘째, 향후 핵발전소의 신규 계획이나 증설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핵단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고리 일대에는 고리1~4호기, 신고리1~2호기(행정구역상으로는 울산시 울주군)가 가동중이고, 연말쯤에 신고리3~4호기가 가동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고리 일대에 모두 8기가 가동돼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최고가 된다. 여기에 신고리5~6호기가 연내에 발주될 경우 고리지역은 그야말로 핵단지가 된다. 특히 신고리5~6호기는 시설용량이 고리1호기의 2.4배인 140만kW 규모이다. 게다가 설계수명연한이 무려 60년이다. 고리1호기 한 기를 폐로하는 것 이상으로 고리일대의 핵단지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에 접어들어 핵발전이 사양사업화하고 있고,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보급으로 에너지이노베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폐로와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불완전 기술’ 핵발전에 우리들의 미래를 저당잡히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신고리5~6호기의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할 때이다. 이와 아울러 핵발전 당국이 당초 계획중인 신고리 7~8호기를 영덕 1~2호기로 변경하려는 시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해야 하고, 고리1호기 폐쇄를 가정하지 않고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에 건설을 강해온 송전탑문제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한 때이다.
안전한 폐로를 위해, 폐로 로드맵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공개하라!
셋째, 고리1호기 폐로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안전한 폐로가 되도록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조속한 폐로 로드맵 및 폐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고리1호기나 월성1호기 수명연장 때와 같은 비공개 꼼수를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된다. 영국의 핵발전 관련 ‘이해관계자 소통강령(SCE)’이나 프랑스의 핵발전소 입지 지역주민정보공개위(CLI) 운영 등을 통해 폐로 관련 핵발전 기밀까지 열람권을 부여하는 등 폐로와 관련한 정보공개 의무화를 입법화해야 할 것이다.
넷째, 폐로와 관련해 피해를 입게 될 기장지역을 위해 기존의 원전입지 교부금 외에 폐로지역지원금 등의 입법화가 절실하다. 지금까지 핵발전소의 경우 가동중일 때만 교부금을 지원해왔는데 실제로 가동기간보다 훨씬 긴 폐로기간에 핵발전소 입지 지역이 사실상 방폐장으로 변하는 실정이지만 이들 지역에 대한 보상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지역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입법 미비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고리1호기 폐로 문제는 막상 폐로가 시작되면 적어도 지금부터 7~8년 뒤엔 사용후핵연료 처리장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지역에 대한 과학적 지질조사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주체가 (주)한국수력원자력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형식적인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선 곤란하다.
부산·울산·경남, 하루빨리 ‘탈핵에너지전환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여섯째, 고리1호기 폐로를 계기로 이제부터 부산·울산·경남지역의 지자체는 하루빨리 ‘탈핵에너지전환도시’로 정책을 바꿔 고리일대의 탈핵발전화를 지향해 대안에너지타운 조성 등 미래지향적 에너지전환 및 에너지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 선도 도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일곱째, 고리1호기 하나 폐로한다고 해서 핵발전소의 안전성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현재 핵단지화된 고리일대의 핵발전소에서 만에 하나 중대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부터 실질적 방호방재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부산시가 최근 설정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핵발전소 반경 20~21km를 최소한 30km로 확대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대피센터의 확보와 방호복이나 요오드화칼륨 등 개인용품을 사전 지급하고 정기적으로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고리1호기 폐쇄 결정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이제부터 정말 새롭게 핵발전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 사진 제공 장영식
* 사진 설명 :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는 2015년 3월 7일 부산역 광장에서 16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고리1호기부산범시민대회를 개최했다.
* 사진 제공 반핵부산시민대책위
* 사진 설명 ; 고리1호기 폐쇄 결정 직후, 6월 15일 반핵부산시민대책위는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을 환영하며, 폐로 등 향후 과제를 실천하며 탈핵사회로 나아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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