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반복사회" 핵발전이 여느 재난과 같을 수 있을까?
김석철, 라온북, 2015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라며 종종 언급되는 ‘1백만 분의 1’이라는 숫자의 정체는 언제나 궁금하고 의심스럽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이제까지 세계의 핵발전소에서 멜트다운(노심용융)에 이르는 사고가 난 것만해도 평균 10년에 한 번 이상이었다. 그리고 핵발전소의 사고는 하나같이 큰 재난으로 이어지거나 재난 일보 직전에서 멈추곤 했고, 더구나 언제나 다른 꼴이지만 반복되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안전 및 재난관리 분야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저자는 우선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과학기술이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적 위험과 함께 점점 더 빠르고 복잡해지는 시스템과 블랙박스처럼 내부를 알 수 없는 구조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작은 결함이 더 크고 많은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게 되었다. ‘위험사회’라는 용어가 나온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상적 방법은 안전여유도를 고려하는 공학적 안전설계와 사고가 일어난 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재난관리 또는 위기관리 체계 구축인데, 이를 저자는 ‘결정론적 관리 체계’라 부른다. 이러한 접근법은 보수적 기준으로 설계를 한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의 관여를 배제하고 하드웨어적 대처수단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미국의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나 챌린저호 사고를 경험하면서 드러났듯이 현실에서는 무력해지기 십상이라는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98쪽).
또한 핵발전 분야에서는 발전소의 규제, 설계, 운전, 폐쇄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사용하는 ‘확률론적 안전성 분석’도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이러한 분석으로 계산된 리스크는 투입되는 데이터의 품질이나 기법 자체의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저자는 확률론적 분석으로 얻은 결과가 어떤 과학적 무결성을 갖는 절대값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직 같은 대상 내에서 해야 할 우선순위의 결정이나 상대적 가치평가의 도구로 사용될 때 그 유용성이 담보된다고 본다. 게다가 확률론적 안전성 분석 방법의 맹점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고는 확률값이 극히 적다는 이유로 배제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고려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다(115쪽).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강도의 지진은 이런 이유로 설계나 비상대응 과정에서 대비되지 못했다. 핵발전소 노심의 설계오류로 인한 사고 확률이 1백만 분의 1이라는 수치의 허구성이 여기에 있다.
재난이 반복되는 사회를 막기 위한 저자의 대안은 첫째,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과 둘째,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로, 그에 맞는 대비책을 세워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시의 재난에 대한 복구와 회복의 탄력성, 영어로 리질리언스(resilience)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 국가나 제도를 1백퍼센트 신뢰하고 의지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이런 결론은 핵발전 문제 앞에서는 당황스럽다. 말하자면 핵발전소의 사고를 대형 자동차사고나 홍수 같은 재난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계를 따질 수 없는 피해의 범위와 인간의 역사보다 긴 방사능의 영향 기간을 생각하더라도 핵발전의 안전은 내가 지킬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반드시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재난의 근원적 예방이 불가능한 바에야 하루빨리 폐쇄하는 길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원자력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생각이 너무 당연해서인지, 논의에서 배제하고 있다.
최근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지정 문제로 말이 많다. 어차피 핵발전소 사고시 한반도 전체가 위험 구역이 될 것이라면 정기 민방위 훈련에서도 핵발전소 사고 대응 훈련을 전국에서 전국민적으로 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민방위훈련에 맞춰 탈핵데모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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