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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위험한 동거』이상헌·이보아·이정필·박배균 저, 알트, 2014

핵발전이 강요한 위험경관의 실체

위험한 동거, 이상헌·이보아·이정필·박배균, 알트, 2014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원전으로 인해서 과거에 못 받은 돈은 그렇다 쳐도 이후로도 받을 수 있는 목돈이 있단 말입니다. 그 돈을 기능상실한 동네부터 우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싶습니다.”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는 울진 신화리의 한 주민은 기능을 상실한동네라고 표현한다. 마을은 사람들이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기능이다. 그렇다면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은 더 이상 삶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마을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물론 그러한 기능 상실의 원인은 핵발전이라는 뿌리에 닿아 있다. 단지 물리학적 원리로 영향을 끼치는 방사능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갖가지 장치와 주민들이 살아온 역사와 기억이 있다는 것을 외부의사람들은 좀체 알지 못한다. 이 책이 말하는 위험경관은 자연과 도시환경 같은 객관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이 주관적으로 느끼고 구성하는 사회적이고 공간적인 이미지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핵발전의 실체적 진실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발품을 팔아 핵발전 풍경 속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느끼는 핵발전의 풍경을 기록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핵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증언은 한결같다. 나라에서 하는, 전기 만드는 공장이 들어선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거의 헐값에 토지가 수용되고 사람들은 쫓겨났다. 보상금으로 어렵사리 시작한 사업들은 대부분 실패했고 집단 이주한 마을은 원주민의 냉대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핵발전소 건설 초기의 반짝 경기가 지역을 잠시 들썩이게 했고 지원금으로 아이들에게 돼지고기를 실컷 먹인 호시절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남은 것은 황폐해진 인부용 벌집들과 주민 사이의 갈등뿐이었다. 천혜의 어업자원과 농지는 쓸모없게 되었고, 달리 살 길이 없어진 주민들은 또 하나의 핵발전소, 또 하나의 핵폐기장이라도 들어와 달라는 마약에 빠지게 되었다.

고리 전체를 차지하고 앉은 고리 핵발전소 옆 마을로 쫓겨난 이들은 사라진 고래간과 월내 해수욕장의 기억을 전한다. 고리는 핵발전소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았던 아름다운 동네였다. 월성 핵발전소와 건설중인 방폐장은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석탑을 위압하면서 중수소를 내뿜고 있지만, 한수원은 같은 풍경을 천년 수도를 밝히는 천년 불빛이라고 해석한다. 울진에서는 도로가 집성촌을 가르고, 댐이 마을을 수장시키고, 154, 345, 765kV 송전탑들이 마을을 포위했다. 호남의 3대 해수욕장 중 하나로 꼽히던 영광의 가마미 해변은 사진으로만 남았고, 영광 굴비는 법성포굴비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 진행 중인 밀양과 청도의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의 위험을 최초로 실감하게 된 것도 충남 당진의 압도적인 송전탑 경관이었다. 그런데 저자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밀양 외에 다른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위험 인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점을 의아해한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위험경관을 안고 살아왔고 그리하여 스스로가 비극적인 위험경관의 일부가 된 탓이다.

핵발전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듯이 이러한 위험경관도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소외된 위험경관을 소통의 위험경관으로 바꾸고 그 느낌을 공유하는 일은 당장 시작할 수 있고, 시작되어야 한다.

 

발행일 : 2014.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