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방류하겠다고 결정한 이후,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4월 19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설치 허가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오염수 처리에 사용되고 있는 ‘다핵종 제거 설비’(ALPS)의 성능검증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10월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현황’ 보고서를 작성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면서 ‘일본이 방출할 오염수가 우리 국민과 환경에 미칠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해 논란이 되었다.
2019년 일본 정부는 지층 주입, 해양방류, 수증기 방출, 수소 분해 후 방출, 지하 매설 등 5개 오염수 처리방안을 검토했다. 이중 해양방류를 결정하면서 일본 정부는 이 방식이 가장 경제적이며, 국제 관행에도 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양방류는 2.5km 깊이에 보관하는 지층 처분보다 최대 200배 이상 저렴한 방법이다. 국제 관행과 관련해서 일본 정부는 세계 각국의 핵재처리시설과 핵발전소를 언급하며, 이미 많은 핵시설에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 특히 삼중수소를 바다와 대기 중으로 배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자국 연안에 방사성물질 방류, 별도 국제규정 없다
오염수 논란에 대해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일본 정부의 결정은 국제적 관행과 일치한다”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미국 역시 국무부 성명을 통해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외 할 것 없이 핵발전소와 연구소, 핵재처리 공장 등 핵시설에서는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을 방출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핵시설이 동일하다.
이와 같은 일은 과거부터 계속됐다. 미국은 1946년부터 태평양과 대서양, 멕시코만 등에 핵폐기물을 버렸고,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은 북대서양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일본은 동해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러시아는 동해와 북극해, 카라해 등 다양한 곳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이 중에는 상대적으로 준위가 낮은 중저준위 핵폐기물도 포함되어 있지만, 핵잠수함 원자로나 고준위 핵폐기물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초반까지 동해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1972년 채택된 ‘폐기물 및 기타 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 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런던협약)’에는 처음 처음엔 선박이나 항공기의 고의적 해상 폐기가 명시되어 있으나, 핵폐기물은 언급이 없었다.
핵폐기물 해양 투기가 계속 국제사회의 논란거리로 떠오르자, 1993년 런던협약에 방사성 물질의 해양 투기 금지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이제는 과거처럼 해양 투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국 연안에 방사성 물질을 방류하는 것에는 별도 규정이 없다. 액체 폐기물의 방류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핵발전소와 핵재처리 시설의 오염수 방류는 전 세계적으로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IAEA가 말하는 ‘국제 관행’이란 이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핵발전소에서 배출된 삼중수소 중 38.4%는 경주에 있는 월성 핵발전소에서 나온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바로 그 삼중수소이다. 월성 핵발전소는 다른 핵발전소와 달리 삼중수소 배출이 많은 중수로형 원자로이다. 이로 인해 월성 핵발전소 인근은 다른 지역보다 삼중수소 농도가 높고, 심지어 주민들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높게 발견된다. 또 갑상샘암 등 건강상 문제를 제기한 지역주민들의 소송과 이주 요구시위가 몇 년째 진행되고 있다.
잠시 들끓었다가 끝나는 논란 말고
지속적인 대응 필요하다
후쿠시마의 오염수는 아직 방류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직 2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 기간에 어떤 상황을 만드는지에 따라 오염수 방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혹자는 민족주의 반일 감정을 앞세워 일본을 규탄하고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 누군가는 미-중 경제 갈등을 통해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끼어 있는 현실을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탈핵운동의 입장에서는 지난 70여 년 간 지구상에 핵산업계가 핵폐기물을 버려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무책임하게 핵폐기물을 버려온 핵산업계의 오랜 악행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탈핵운동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히 일본 오염수 방류계획을 규탄하는 것을 넘어 우리 또한 얼마나 많은 방사능 오염수를 버리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규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염수를 양산하고 있는 핵발전소 폐쇄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국제 쟁점이 될 때마다 잠시 논란이 되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흐름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헌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5월(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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