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 4월 20일 발표한 '2021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180개국 중 일본은 67위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4월 13일 일본 정부가 결정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오염수 해양방출 계획에 대해 일본 언론은 연이어 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기에 급급했다.
일부 보도에서 해양방출에 반대하는 어민들과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제한적이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해양방출 결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펼치고 있다. 미디어는 독립성의 원칙을 망각한 채 정부와 도쿄전력의 공작에 편승하며 오염수 왜곡에 한몫하고 있다. 일본 언론의 속임수는 끝이 없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속임수1.
세 번이나 바뀐 호칭!
삼중수소수, ALPS처리수, 그리고 처리도상(途上)수
첫 번째 속임수는 오염수의 호칭이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해양 방출하는 오염수를 ‘처리수’ 또는 ‘ALPS처리수’라고 부른다. ALPS(다핵종제거설비)로 정화 처리된 ‘물’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처리수’보다 ‘삼중수소수’라고도 했다. 오염수를 ALPS로 정화하면 기본적으로 삼중수소만 남는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 ALPS로 정화한 이후에도 루테늄106, 코발트60, 스트론튬90 등 다양한 핵종이 기준치를 넘어 잔류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오염수 호칭을 슬그머니 ‘처리수’로 바꾼 것이다.
미디어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의향대로 이러한 호칭을 사용해 왔다. 해양방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오염수’라고 하면, “오염수와 처리수의 차이도 모른다”거나 “오염수의 전문적 이해도 없이 반대만 한다”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해양방출 결정을 발표한 그 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처리수’의 정의를 변경하겠다며 오염수의 새로운 ‘신조어’를 발표했다. ‘처리도상수’이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오염수에 남아 있는 각종 핵종을 제거하기 위해 ALPS를 이용해 2차 처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차 처리를 기다리는 기존 ‘처리수’를 향후 ‘처리도상수’라 부르고, 2차 처리를 마쳐 각종 핵종 농도가 기준치 이하가 된 것을 ‘ALPS 처리수’라고 부르겠다는 것이다. 기존에 ‘처리수’라 부르던 것은 ‘처리’된 물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웃을 수도 없는 ‘말장난’이다.
속임수2.
“모든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만들겠다”
해양방출 결정을 발표하던 날, 일본 미디어는 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대로 “기준치 이하까지 희석해 방출하겠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강조했다. “삼중수소에 대한 국가 배출농도기준인 리터당 6만 베크렐의 40분의 1인 리터당 1500베크렐까지 해수로 희석해서 방출하겠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마치 도쿄전력이 환경을 고려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꾸며댔다. 이것을 보는 많은 사람이 착각에 빠졌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 하겠다는데 괜찮겠지?’
그러나 국제 환경단체 FOE-JAPAN의 미츠타 칸나 씨는 해양방출 결정 하루 전에 열린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마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점에 대해 지적하며 기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도를 신신당부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6만 베크렐이라는 기준은 배수(排水) 중에 포함되는 방사성물질이 삼중수소뿐이라고 가정할 때 기준이자, 고려해야 할 방사선원을 배수로만 한정했을 때 기준이다. 한편 1500베크렐이라는 수치는 2014년 도쿄전력이 지하수 바이패스(원자로 건물에 지하수가 유입되지 않도록 설치한 우회수로)에서 나오는 배수를 해양 방출할 때 제시한 수치다. 부지 내에서는 다양한 방사선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부지 경계선 상의 법령 기준치인 ‘추가 실효선량 연간 1밀리시버트’ 를 준수하기 위해 배수를 전체 방사선원의 약 20%로 가정하고, 기타 방사성 물질의 존재를 고려해 삼중수소 농도는 리터당 1500베크렐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결국, 미디어는 도쿄전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삼중수소 농도를 리터당 1500베크렐 이하, 즉 기준 농도의 40분의 1로 하겠다고 보도했지만, 결국 1500 베크렐이라는 수치는 규제 상 지켜야 하는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규제치 이하’가 강조될 뿐 방출될 오염수의 총량 개념이 아예 누락되었고 2차 처리의 유효성과 ALPS 기능의 불확실성 또한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속임수3.
‘소문 피해’라는 이름의 책임 돌리기
일본 정부는 미디어를 통해 오염수 해양방출로 발생할 문제를 ‘소문 피해(후쿠시마 인근 농수산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는 현상)’에만 한정하려고 한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처리수 해양방출 처분 방침’에는 “해양방출에 따라 소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도쿄전력이 배상하고, 정부는 농수산물 판로 확대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해양방출을 강행해도 실제 피해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만약 소문 피해가 발생할 시 정부와 도쿄전력이 책임 있게 배상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해양방출의 문제점을 소문 피해로만 축소함으로써,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우려하는 사람들을 마치 소문 피해의 가해자인 양 내비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속임수4.
다른 나라도 일상적으로 해양방출한다
또한 일본 미디어는 “삼중수소를 포함한 오염수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핵발전소에서 방출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영국 세라필드 재처리시설 약 1540조베크렐(15년), 프랑스 라아그 재처리공장 약 1경3700베크렐(15년) 등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로 인한 건강 피해와 환경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반발이 큰 한국의 핵발전소 사례를 들먹였다. “원성원전에서 2016년에 배출된 삼중수소는 연간 약 25조 베크렐”이라며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가 계획하고 있는 연간 배출량 22조 베크렐 보다 더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해양방출에 반발하는 한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해양방출에 높은 평가와 지지를 보냈다는 것 또한 크게 보도하고 있다. 한편, 해양방출로 인한 한국 내 반일 감정 악화를 자세하게 소개함으로써, 일본의 일반 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후쿠시마 10년,
핵마피아 속임수에 탈핵 진영이 이기려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속임수에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가담해 해양방출을 정당화하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정부와 도쿄전력과 미디어의 유착은 핵마피아 구조의 단면이다. 이에 비해 일본 탈핵 진영의 힘은 너무나 미약해 보인다. 2년 후로 예정된 해양방출을 어떻게 해서라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핵 없는 세상을 원하는 사회의 양심들이 오롯이 견뎌내야 할 시간이다.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5월(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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