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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에너지전환

기후위기와 탈핵(5) _ 기후위기 대응, 비용과 시간의 문제

국내외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 행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핵발전으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낡은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더는 늦출 수 없는, 그리고 후회 없는 기후위기 해법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핵발전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탈핵신문은 연중기획으로 <기후위기와 탈핵>을 연재한다.

 

<기후위기와 탈핵 연중기획>

유엔 기후체제 협상에서의 핵발전 논쟁사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보는 핵발전

온실가스 감축을 말하는 찬핵론자는 누구인가

핵사이클과 온실가스 배출

기후위기 대응, 비용과 시간의 문제

지구온난화는 핵발전소도 위협한다

세계 핵발전 추진국과 온실가스 감축 실적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충돌하는 핵발전 시스템

탈핵과 탈석탄은 동시에 가능하다 

 

 

 

∥기후위기와 탈핵 연중기획(5)

기후위기 대응, 비용과 시간의 문제

 

 

기후위기 대응에서 핵발전의 기여 잠재력을 주장하는 이들의 핵심 논거는 지금으로서는 특히 재생가능에너지의 불안정성과 높은 가격을 고려할 때 핵발전이 가장 신뢰할만한 온실가스 무배출 발전원이라는 것이다. 인류세의 가속화 속에서 탄소 예산’, 즉 세계의 기후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의 티핑포인트로 여겨지는 산업혁명 이후 1.5도 상승에 이를 때까지 배출 가능한 탄소의 양을 계산해보면 채 9년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매우 급격히 줄이더라도 1.5도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인데, 그렇다면 화석연료 이용량 자체를 급격히 줄이는 것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굉장히 빨리 늘릴 수 있는 탄소 배출제로 발전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핵발전이 유의미한 대안이 되려면 비용과 시간에 있어서 의미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선 폴 호켄 등이 온실가스 감축 솔루션들을 폭넓게 조사한 <플랜 드로다운>에서 지적했듯, 핵발전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더 비싸지고 있는 전력공급 수단이다. 핵발전의 절대적인 경제성 우위나 상대적 장점도 주장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십수 년 전까지 정부의 막대한 지원 없이는 실용화되기 어렵게 보였던 태양광과 풍력 같은 현대적 재생가능에너지원의 비용은 그야말로 괄목상대하게 떨어졌다. 반면에 핵발전은 지진과 쓰나미 같은 기술적인 사고 대비와 수용성 해결을 위해 설비와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이 시나브로 늘어나면서 발전소 건설 비용마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이는 핵폐기물 처분 비용과 사고 시 대응 비용 등 이제까지 감춰져 있던 비용을 제외하고도 그렇다는 것이다.

 

세계 신규 핵발전소 건설 추이 (출처:미국 핵과학자 회보)

 

 

세계 핵발전산업 동향을 지속해서 추적해 온 프랑스의 마이클 슈나이더가 인용하는 숫자를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 자산운용사 라자드(Lazard)의 분석에 따르면 2009~2017년 사이에 생산전력당 평균 발전비용은 풍력은 67%, 태양광은 86% 감소한 반면 핵발전은 20% 증가했다.

 

핵발전은 유일하게 비싸지는 전력공급원

 

또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따지려면 단지 핵발전이 화석연료와 달리 원자로의 반응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만 보아서는 안 되며, 실제로 전력 생산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과 화석연료 대체 효과의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2014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총배출량의 42% 정도이며 이중 석탄화력에서 73%가 발생한다. 그리고 전체 발전 비중에서 핵발전의 비중은 10% 남짓이며 설비용량으로는 6.5%로 화석연료 발전소의 1/10 정도다. 전체 발전설비 용량 6117GW 중에 화력발전소는 3878GW, 핵발전소는 397GW.

 

세계의 전력생산 원별 추이 (자료: 에이머리 로빈스)

 

 

강양구 기자가 <뉴스톱>(지구온난화, 핵발전소 건설로 막을 수 있을까? 2017.08.31.)에서 제시한 계산에 따르면, 만약 핵발전소로 화석연료 발전소의 1/3을 대체하려면 1.4GW 신형 핵발전소 기준으로 대략 923기를 더 지어야 한다. 지금부터 2050년까지 짓는다고 할 경우 13일마다 1기의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하며, 화석연료 발전소의 절반을 대체한다면 거의 일주일에 1기가 완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동 중인 447기의 핵발전소 중 2/32050년 전에 폐로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 지어야 하는 핵발전소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규모의 증설이 가능할까? 1956년에 첫 상업 발전이 시작된 이래 세계에서 건설된 핵발전소는 612기이므로 대략 60년 동안 평균 1년에 10기가 증가한 셈이다. 물론 1986년 체르노빌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증설은 더욱 둔화하여 최근에는 1년에 2~3기가 늘어나기도 어렵다. 오히려 영구 정지되는 핵발전소가 늘어나서 총 전력공급원 중 핵발전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이른바 핵발전 르네상스는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2050년까지 1천 기 가까운 핵발전소를 그러니까 평균 1년에 30기 이상을 늘린다는 것은 중국을 포함하여 핵발전을 추진하는 국가들의 에너지 계획을 살펴보아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1년에 30기 이상 핵발전소 증설은 난센스

 

주요 국가들의 에너지 계획을 지금이라도 엄청나게 뜯어고쳐서 핵발전소를 급증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희망 섞인 주장에서 간과되는 것이 시간의 문제다. 핵발전소는 부지 선정과 설계, 시공, 가동까지 12년 정도가 소요된다. 한국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이 15년 단위로 설정되는 것도 핵발전소 증설에 걸리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실용화되더라도 8년은 걸린다. 반면에 풍력터빈은 길어야 2-3, 태양광은 짧게는 2-3개월이면 설치 가능하다.

 

미국의 환경경제학자 에이머리 로빈스에 따르면, 상대적인 속도에 대한 증거는 더욱 분명하다. 핵발전의 생산량은 2010년 이후 하락 또는 정체하고 있는 가운데, 소수력을 포함하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발전량은 2015년 핵발전을 넘어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로빈스는 핵발전에 매달리고 있게 되면 핵발전의 비용과 시간의 규모와 경직성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다른 유효한 선택지들을 더욱 몰아내게 된다고 경고한다. 이는 그가 필진으로 참여한 <세계 핵발전산업 현황 보고서 2019>의 한 결론이기도 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탈핵신문 2020년 8월(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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