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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반핵이 민주주의임을 알려준 김종철 선생


격월간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이 6월 2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김종철 선생은 인생의 모든 단계, 모든 국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유린되거나 뒤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체제에 대항하면서 녹색평론을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김종철 선생은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하여 한국사회에 생태사상을 뿌리내리는 데 큰 몫을 했으며, 탈핵 담론을 끊임없이 펼쳤다. 탈핵신문은 활동가들이 기억하는 <김종철과 한국 탈핵운동>을 주제로 글을 소개하고, 고 김종철 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 탈핵신문




고 김종철 선생을 기억하며 _ (2)


반핵이 민주주의임을 알려준 김종철 선생



자신이 발행하는 <녹색평론>과 녹색평론사의 책들을 통해 핵에너지의 본질적 문제점을 앞서서 환기해 온 김종철 선생이었지만 후쿠시마 핵사고의 충격은 그에게도 엄청났을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2011311일 직후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지 막막해할 때 그는 사람들과 긴 시간을 들여 대화하고 설명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가 특히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핵이 존재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열흘 뒤인 321<한겨레>에 실은 원자력과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핵사고는 우리가 순응해야 할 재해가 결코 아니며, “원전이란 원폭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국가의 군사적 야망과 핵 자본의 이익, 기생적인 정치가, 관료, 학자, 언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해에 여러 차례의 강연에서 핵발전의 비민주성을 조목조목 파헤쳤다. 핵발전 가동을 위해서는 세 가지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너무나 설득력이 있다. 첫째는 원자로 내부에 들어가 피폭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하도급 노동자가 겪는 차별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이 차별이 제염 작업 노동자로까지 확대되었다. 둘째는 지방과 서울의 격차 문제다. 김종철 선생은 차별의 문제를 의식하는 서울시장 후보라면 서울시만 좋게 하겠다는 공약을 할 게 아니라 핵발전소를 서울시에 짓겠다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세 번째의 격차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격차다. 현세대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핵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없는 데도 핵발전을 계속하는 것은 차별이자 반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이 세 가지 차별을 기초로 하지 않고서는 단 한 순간도 성립할 수 없는 게 핵발전 시스템이라고 일갈했다.



△ 녹색평론사가 펴낸 다카키 진자부로의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그가 일본에서 어렵사리 반핵의 목소리를 이어 온 시민과학자다카기 진자부로 선생과 양심을 지키려다 평생 교토대학 원자로연구소의 조교로 근무해야 했던 고이데 히로아키 선생을 한국에 소개한 것도 그들과 느끼는 동질감,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통해 알리고 싶은 핵발전과 윤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4주년이 되는 2015311<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그는, 핵발전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또 한 번 환기했다. 그즈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설계수명이 다한 월성1호기의 연장 가동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당시 원자력안전위 위원장은 연장 가동을 반대해 온 사람들을 외부세력으로 지칭하며 기술문제에 정치가 개입하는 현실을 비난했다. 하지만 김종철 선생은 이런 발언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 혹은 몰이해의 소산이라고 반박했다. 핵발전소 건설이나 운영에 관한 노하우는 전문가들의 몫이겠지만, 원전 자체의 사회적 용인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주민과 시민들이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대원칙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나라의 중대사를 좌지우지하는 이 한심한 상황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파행 상황과 정확히 들어맞는 대목이다.


핵폐기물 처분의 불가능성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는 유명한 비유로 잘 알려진 다카기 박사의 책 제목은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이다. 거짓 신화로부터 해방될 때 우리는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해 반핵은 필수이며 또한 반핵은 민주주의와 함께해야만 올 수 있다는 것은 김종철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준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 중 하나일 것이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7월(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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