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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탈핵 운동의 든든한 동지이자 후원자, 김종철


격월간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이 6월 2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김종철 선생은 인생의 모든 단계, 모든 국면에서 우리의 삶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유린되거나 뒤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체제에 대항하면서 녹색평론을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김종철 선생은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하여 한국사회에 생태사상을 뿌리내리는 데 큰 몫을 했으며, 탈핵 담론을 끊임없이 펼쳤다. 탈핵신문은 활동가들이 기억하는 <김종철과 한국 탈핵운동>을 주제로 글을 소개하고, 고 김종철 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고 김종철 선생을 기억하며 _ (1)


탈핵 운동의 든든한 동지이자 후원자, 김종철



고 김종철 선생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벌써 몇 년 동안이나 말 못 할 큰 희생을 치르고 있습니다. (중략)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면 국민들 사이에서 지역민의 고통을 분담하자는 기운이 일어나야 합니다. 정부에 대한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밀양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 교육이나 학교 교육을 통해서 윤리를 배우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현대 생활 자체가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고는 유지가 안 되는 구조입니다. 오늘날의 사회 구조가 약자를 희생시키는 구조적인 악행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비단 핵발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근대 문명 자체의 본질적 성격이 그렇습니다.

- 김종철 <탈핵학교 '탈핵의 윤리와 상상력'> 중에서 -


 

무너져버린 사회시스템, 희생과 갈등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성이나 관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 문제는 물론이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도 유출되는 방사성 물질이나 대형 송전탑, 온배수 문제도 중요한 탈핵 운동의 근거다. 하지만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은 언제나 핵발전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구조와 문명 문제를 중심으로 탈핵 운동을 설명했다.


핵발전소는 단순히 기술 발전으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다. 대용량 에너지원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요구로 만들어진 기술이며, 그간 핵발전소는 우리 사회의 이런 요구를 정확히 충족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벌어진다. 우라늄 채굴에서 핵발전소 운영, 폐로 과정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폭 노동자, 핵시설 인근에서 사는 지역주민들,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핵폐기물로 고통받을 많은 후손들


전력 생산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이 이어지지만, 정작 이 전력을 사용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어쩔수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수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고 김종철 선생은 설명했다. 독일 아우슈비츠 경험을 담은 프리모 레비의 증오없는 폭력과 일본 다카하시 데쓰야의 희생의 시스템개념을 오고가며 핵발전을 둘러싼 희생과 시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폭력을 설명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갖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며, 이런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핵발전소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김종철 선생은 현장 활동가가 아니었다. 내 기억에 그를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에서 본 기억이 없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만들어졌던 탈핵교수 모임 결성식에서 발언한 정도가 사실상 거의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탈핵운동가였다. 기술용어나 수치를 말하지 않지만 그는 왜 핵발전소가 우리 사회에 들어오게 되었고, 왜 그리도 핵발전소를 없애는 것이 힘든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지역주민들의 현장 운동으로 시작한 탈핵운동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었지만, 대부분 핵발전소의 위험성이나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머물렀다. 탈핵학교를 비롯해서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었던 탈핵 강의에서 김종철 선생이 대표적인 연사로 초청된 것은 이런 부분을 짚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연사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석달이 되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닙니다. 거의 묵시록적 파국이라고 해야 할 사건이죠.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실은 요즘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김종철 <녹색평론 20117-8월호 서문> 중에서 -


 

후쿠시마 사고 직후 김종철 선생은 사석에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난 직후 긴박한 상황과 혼란, 무너져버린 사회 시스템, 그 속에서 생기는 또다른 희생과 갈등을 목격하면서 그는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고민은 녹색평론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1년 간 녹색평론은 사실상 격월간 탈핵운동 잡지라고 할 정도였다. 탈핵운동에 대한 다양한 시각, 일본 현지 목소리, 어떻게 탈핵을 이룰 수 있을지 등 다양한 글이 녹색평론에 실렸다. 사고 1년 이후에도 탈핵 서평이나 기획 기고 등의 흐름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단편적인 기사가 아닌 원고지 50-60매 이상 되는 긴 탈핵 관련 글을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잡지는 국내에서 녹색평론이 유일했다.


인문학적 지식에 기반한 탈핵 이야기


그는 탈핵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든든한 배후였다. 편치 않은 건강 상태에도 탈핵 강의를 요청하면 두툼한 책을 대여섯 권씩 들고나와 다양한 이들의 관점을 바탕으로 핵발전소 이야기를 풀어내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경제성이니 안전성이니 하면서 과학적 사실과 숫자로 핵발전소 문제를 지적할 때, 인문학적 지식에 기반해 상황을 설명하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식인을 잃은 것은 탈핵 운동의 큰 손실이다. 탈핵운동이 더 풍부해졌으면 좋겠다고 어려운 걸음 부탁드릴 때, 허허 웃으면서 내가 이런 거라도 해야지하는 소탈할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찬핵-탈핵 논쟁에 지치고 탈핵운동 내부의 복잡한 사정이 있을 때, 그는 편하게 상의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탈핵운동의 어른이자 동지였다.


한국 생태주의 운동에서 김종철 선생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탈핵운동은 그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탈핵운동 입장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동지이자, 후원자였다. 그는 방향성을 잃고 현실 논쟁에만 빠져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누구보다 통렬히 비판했고, 어둡고 절망적인 운동 상황에서 사회 구조와 문명의 전환을 통해 탈핵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주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0년과 녹색평론 30주년을 앞둔 지금, 그의 부재가 더욱 아쉽다.


이헌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7월(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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