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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스토브리그


칼럼

스토브리그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스토브리그 계절이다. 비시즌이지만 팬도 선수도 프런트도 쉴 수 없는 계절이다. 기대를 걸만한 올해의 선수를 찾아보기도 하고, 훈련이나 시범경기의 성적을 확인해 보는 것 또한 팬들의 주요한 일과다. 각자 응원하는 팀의 감독이나 구단주의 인터뷰 하나하나를 챙겨보며 올해는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꾼다. 올해는 우리 팀이 어떻게 바뀔까.


바야흐로 정치도 스토브리그의 계절이다. 누군가는 팀의 리빌딩을 말하고, 누군가는 신인 선수 영입에 관심이 많다. 유망주 영입 경쟁도 뜨겁다. 팀마다 올해 성적을 점치며 필승전략을 구상하는 중이다. 팀의 로고를 바꾸기도 하고, 스프링캠프도 열정적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의 삶은,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이 거대한 축제는 때론 허망하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썰물처럼 열정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허탈감도 든다. 그런데도 선거에 주목하는 이유는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든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치의 계절에 우리는 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의 계절은 부산스럽고, 시끄럽다. 서로가 각자의 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공간이므로 목소리를 높여 우리의 삶이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고 외치는 중이다.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뒤엉켜 갈등한다. 이러한 소란함이 과연 사회적 비용의 낭비이기만 할까.


샤츠 슈나이더는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치는 갈등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정치는 갈등의 기저에 담긴 모순을 드러내고 문제의 근본을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단지 핵발전소가 없는 세계를 두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다. 왜 고리의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강제이주를 반복해야 했는지, 왜 수많은 지역의 공동체가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붕괴되어야 했는지, 왜 발전소의 노동자들은 아팠는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가 외면한 얼굴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잊힌 이들의 표정이 살아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들을 대변할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말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다른 세계의 생명을, 우리 지구의 위기를 말할 정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더 많은 갈등이,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는 정치의 얼굴을 바꿀 수 있다. 1(1°C)라도 지구를 식히는 일. 거대한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넘어서 다른 세계를 만드는 일, 그 와중에 소외되고 잊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 우리에게는 지금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전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게일로드 넬슨은 말했다.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Quality)을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 GNP)과 동등하게 여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국민적 연합을 형성합시다. ‘생태 의회(Ecology Congress)’를 만들기 위해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입시다. 생태 의회는 더 많은 고속도로와 댐, 무기경쟁을 고조할 새로운 무기체계를 구축하는 대신 시민들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다리를 놓을 것입니다.”


게일로드 넬슨이 생태의회를 주장한 것이 1970년 일이다. 우리는 지금 2020년을 살고 있다.  


탈핵신문 2020년 3월(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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