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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아름다운 후쿠시마'를 위해 오염된 것을 받아들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9주기를 맞아 호리키리 사토미 씨가 취재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가 있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전한다. 탈핵신문은 이 외에 사고 9년이 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폐로 현황, 피난민 상황, 오염수 문제, 소아갑상샘암 쟁점을 네 면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후쿠시마 9주기 기획(1) _ 후타바마치 사람들의 삶

일본 정부가 원하는 건 부흥아니라 망각



●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것은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 후 불과 2년 반이 지난 20139월이었다. ‘오염수는 통제되고 있다고 아베 수상이 장담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긴급사태 선언은 해제되지 않았다. 폭발한 핵발전소를 폐로하는 작업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아마 지금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수습을 끝내 못 볼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고 있다. 아니 잊지 않으면 이 땅에서 살 수 없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2011년 3·11 이후부터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한국 면소재지에 해당하는 행정 단위주민들을 취재해 왔다7100명이던 후타바마치 주민 모두가 고향을 떠나야 했다. 피난 구역 중 제일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은 귀환 곤란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사고부터 9년이 지난 현재도 후타바마치의 약 96%가 이 귀환 곤란구역이다.


그런데 그중 일부 지역이 올 3월에 피난 구역을 해제한다고 결정되었다후타바마치 주민들은 해제 이유가 방사선량이 낮아지고 안전해졌기 때문이 아니라올림픽 개최에 맞춘 조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도쿄올림픽 개최 결정은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 후 불과 2년 반이 지난 2013년 9월이었다후타바바치 주민들의 현재 생활과 심정에 대해 전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는 후타바마치와 오오쿠마마치 경계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오오쿠마마치에는 후쿠시마제1핵발전소 1·2·3·4호기후타바마치에는 5·6호기가 있다.



'아름다운 후쿠시마'를 위해

오염된 것을 받아들이다


● 중간저장시설 들어선 후타바마치



다나카 신이치 씨가 후타바마치에 있는 방사능 오염폐기물 소각재를 보관하는 건물 앞에 서 있다. 이 자리에는 원래 다나카 씨가 살던 집이 있었다.


 

다나카 씨가 목재 하나하나까지 소중히 골라 지은 집은 후타바마치에 중간저장시설이 들어오면서 헐리었다.  


 

후타바마치 주민 다나카 신이치(69) 씨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바로 옆 마을인 호소야 지구에 살고 있었다. 다나카 씨의 가족은 부모와 아내, 딸과 사위, 4명의 손자까지 총 10명의 대가족이다. 그는 담배 농사를 지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구내 환경정비 업무에도 종사하고 있었다. 사고 후 그의 가족은 총 12개의 피난소를 전전했다. 현재는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에 살고 있지만, 후타바마치에 남겨두고 온 집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목재 하나하나까지 소중히 골라 지은 집은 그의 자랑이었는데, 생활할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2015, 후쿠시마 핵발전소 주변 부지에 중간저장시설건설이 결정되었다. 국유지와 함께 후타바마치와 그 옆 오오쿠마마치 주민 약 2600명이 소유한 토지가 대상 지역이다. 후쿠시마현에는 제염작업을 통해 나온 오염된 흙, 나무, 풀 등을 담은 검은 포대가 곳곳에 쌓여 있고, 이것을 한 곳에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중간저장시설이다


다나카 씨는 이 시설을 만들기 위해 후타바마치에 있던 집과 밭을 팔았다. “누군가가 희생돼야지, 어쩔 수 없지 않냐라는 말은 그의 입버릇이다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다. ‘중간저장시설 예정지에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운이 좋은 거야. 돈 좀 벌었겠는데라는 말을 듣게 된다.


올해 2, 나는 다나카 씨와 함께 후타바마치를 방문했다. 귀환 곤란 구역은 사전에 신청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스크리닝 장에서 선량계와 방호복을 받았지만, 이미 선량계는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 이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고 전 일반인의 피폭 허용선량은 연간 1밀리시버트(시간당 0.114마이크로 시버트)였으나, 정부는 사고 발생 후 허용 방사선량을 어린이를 포함해 연간 20밀리시버트로 인상했다.  


다나카 씨와 나는 중간저장시설 부지에 갔다. “여기는 다 논밭이었지”, 다나카씨가 말했다. 온통 녹색이었던 이곳엔 창백한 회색 건물이 즐비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저장하는 탱크도 보인다. 그의 집이 있던 곳에는 야외무대처럼 생긴 철근 구조물이 들어섰다. 이 구조물은 오염된 폐기물의 양을 줄이기 위해 소각한 후 나온 재를 보관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방사능 오염토와 풀 등을 담은 검은 포대가 마을 곳곳에 쌓여 있다.


 하야마 신사에서 바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중간저장시설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그의 말에 따라갔더니, 그곳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수조가 있었고 그 안에 토사가 쌓여 있었다. 포대 안의 제염폐기물을 분별한 후 깨끗해진 흙을 저장하는 곳이라고 한다. 다나카 씨는 깨끗해졌다고 하지만 나뭇가지나 뿌리를 제거했다는 말이지 방사선이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것은 아닐 거야라고 말했다. 여기 저장된 흙은 일본 전국의 도로와 농지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위한 제염이었던가? 다나카 씨도, 나도,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후타바마치 곳곳에는 아름다운 후쿠시마를 되찾자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다나카 씨는 아름다운 후쿠시마를 되찾기 위해, 후타바마치는 오염된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라고 말했다


언덕 위에 올랐다. 여기에는 주민들의 뜻을 반영해 유일하게 해체하지 않고 남긴 하야마 신사가 있다. 여기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노골적으로 들어난 사고 현장이 보인다. 방사선량계는 3.8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키고 있다. 작년 여름1·2호기 사이에 있는 배기탑 철거 작업이 난항을 겪은 탓에 주변 방사선량이 높아졌지만, 일시적으로 고향을 찾는 후타바마치 주민들에게 경고 안내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나와 다나카 씨는 후타바 역으로 이동했다. 피난 지시 해제를 앞두고 철도역 주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귀환 곤란 구역인 이곳도 올림픽 개최에 맞춰 피난 지시를 해제하기로 했고, 며칠 전 성화봉송 코스에 갑작스럽게 이곳도 포함됐다. 다나카 씨는 기쁘냐는 질문에 차갑게 웃으며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부흥 올림픽이라고 하는데 후타바마치를 빼면 더 이상하잖아라고 답했다.



오염폐기물 옆에서 농사짓기


 하치스가 히데오 씨가 '농업재생구역'이 표기돼 있는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치스가 히데오(76) 씨는 오랫동안 후타바마치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저농약 농업에 종사한 사람이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는 280km 떨어진 사이타마현에 피난 가서 살고 있다. 그가 직접 만든 집은 쓰나미에 쓸려가 지금은 흔적도 없고, 자연재해로 간주하여 배상금을 한 푼도 못 받았다이렇듯 후타바마치 주민이더라도 받을 수 있는 배상 범위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어, 사이좋게 지내던 친척, 친구들과도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치스 씨는 배상금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 피난 간 사이타마 현에서 땅을 사서 바로 영농을 시작했다. 피난민들이 생활하는 가설주택 건설에도 종사했다. 사고 후 8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현재 사이타마 현에 앞으로 살 새로운 집을 짓고 있다


나는 중간저장시설 건설을 받아들인 후타바마치에서는 앞으로 사람이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타바마치는 중간저장시설에 인접한 북서부 일대를 특정 부흥 재생 거점지역으로 지정해 2년 후에는 주민들을 이곳으로 돌아오게 할 계획을 세웠다지도를 보면 농업재생구역이라고 쓰인 곳이 몇 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나카노·나카하마 지구는 후타바마치 안에서도 비교적 방사선량이 낮기 때문에 쌀 생산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치스 씨는 후타바마치에서 농업 재개를 추진하는 움직임에 부정적이다. 특히 쌀을 생산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 논은 밭보다 많은 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염작업을 했다고 해도 물을 저장하는 댐이 오염되었기에 쌀농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쌀 덕분에 그동안 건강했고 장수했지. 쌀이 오염되면 우리는 죽는 거야. 이런 곳에서 쌀농사를 재개한다니 말이 안 되지!”, 하치스 씨는 분노한다.


쌀농사 재개에 적극적이지 않은 후타바마치 주민은 하치스가 씨 뿐만이 아니다. 그래서 후타바 행정은 후쿠시마현 밖에 있는 농업법인과 계약을 맺어 쌀 생산부터 판매까지 위탁하려고 한다. 수확한 쌀은 후쿠시마산이 아닌 그 법인이 속한 현 이름으로 판매할 계획이고 한다. 후쿠시마산으로 표기하면 팔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후타바마치에서 농업 재개를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피난 생활의 어려움

 

 우누마 히사에 씨가 소를 키우던 농장


 우누마 씨는 농사 재개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농업위원으로 참여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수람들로부터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후타바마치는 좋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외지 땅에서 후타바마치 주민들이 밑바닥부터 생활을 재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고향이 그리울 것이다.


우누마 히사에(66) 씨는 후타바마치에서 남편과 함께 약 50마리 소를 키우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핵발전소가 폭발할 때 주변 주민들은 모두 피난했지만, 우누마 씨는 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으려고 했다. 결국 피난해야 했지만, ‘소들을 굶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후타바마치에 돌아가려고 했다. 결국 키웠던 소들 절반은 아사했고 나머지도 살처분되었다. 정부가 내린 결정이었지만 동물을 두고 인간만 도망갔다는 죄책감을 지금도 버릴 수 없다.


우누마 씨는 피난 간 사이타마현에서 농업을 재개했다. 낙농가였던 그녀는 사고 후 사이타마현 농림공사에 다니며 밭농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 사이 수확량도 늘어 지역의 급식센터 등과 거래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주변 주민들이 안 좋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쿄전력에서 배상금을 받고 있는데 왜 여기 와서 농사짓냐"는 것이다. 또 한편 9년이 지난 지금은 후쿠시마현 행정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왜 후쿠시마에 돌아와서 농사짓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누마 씨는 처음에 언젠가는 후타바마치에 돌아가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정부는 후쿠시마 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지 않는 것은 피해를 조장하는 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녀는 후타바마치에서 농사 재개가 정말 가능한지 직접 확인하려고 후타바마치 농업위원이 되어 시험재배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확한 작물의 방사선량 측정에는 주민들이 참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지금 그녀는 농민들의 개인적 만족을 위해 거액의 제염 비용을 투입해 후타바 마을에서 농사를 재개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원하면 돌아갈 수 있는 '오염된 아름다운 곳'

추모식은 10주년에 마무리 계획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후타바마치는 방사선량이 여전히 높아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지금 후타바마치는 주민들이 원하기만 하면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도 돌아가고 싶었던 고향이지만, 우누마 씨의 마음은 복잡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안전하니까 돌아가세요라고 하면 돌아가야 하고, 주민들이 안 돌아가겠다고 하면 고집쟁이 취급을 받는 이 구조에 분노한다


부흥이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타바마치 주변의 지자체들 중에는 이미 피난 지시가 해제된 곳도 있지만, 주민들의 귀환율은 높지 않다. 부흥 올림픽이라고 하지만, 올림픽으로 후쿠시마가 정말로 부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부는 동일본 대지진 추모식 개최를 내년 10주년을 끝으로 마무리한다고 한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후쿠시마의 부흥이 아니라 후쿠시마의 망각일 것이다.


사진과 글 : 호리키리 사토미

번역 :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호리키리 사토미(堀切さとみ) : 1965년생. 일본 사이타마현에 거주,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2008년에 시민미디어 강좌 ‘MediR’ 에서 영상 제작을 배웠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고 있다. 20113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소 피난민들의 기록 영화 <원전마을을 쫓겨나서 _ 피난민 후타바마치의 기록>을 제작했다.




후타바마치는 어떤 곳?


후타바마치는 전체가 피난 구역이었으나 올해 34일 일부 구역 피난 지시가 해제됐다. 후쿠시마현은 급하게 올림픽 성화봉송 코스에 후타바마치를 포함할 것을 요청해 올림픽 성화봉송실행위원회가 214일 후타바마치도 성화 봉송로에 포함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후타바마치의 사고 전 인구는 약 7100, 사고 후에는 591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 중 현내 피난은 3776, 현외 피난은 2135명이다. 후타바 행정은 특정 부흥 재생 거점구역의 피난 지시 해제 시기를 2022년 봄으로 삼고, 2027년까지 약 2000명의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의하면 귀환을 원하는 주민은 전체 약 10%에 지나지 않는다.


후타바마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행정이 독자적 판단해 주민들을 후쿠시마 현외로 피난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후타바 지자체장은 발전소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사이타마현 가조시에 많은 주민을 집단으로 피난시켰고, 행정 기능도 옮겼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피폭을 막는다는 것이 당시 지자체장이던 이도카와 가츠타카 씨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도카와 지자체장과 의회 간 대립이 심해졌고, 결국 그는 20132월 지자체장 직을 그만두었다. 같은 해 6, 후타바마치는 행정 기능을 다시 후쿠시마 현내(이와키시)로 이전했다.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3월(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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