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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력적폐’ 청산을 위하여

하승수(변호사)


5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밝혀질 것은 밝혀져야 한다. 그래서 적폐청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무슨 무슨 TF가 만들어지고, 검찰이 과거 정권의 핵심인사들을 소환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만 손을 댄다고 해서, 이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적폐가 과연 청산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에 적폐인데, 이것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 퍼져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력업계이다. 그 핵심은 한국전력과 산업부, 이들과 유착되어 있는 전문가들이다. 이들 속에 쌓여있는 적폐를 걷어내고 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핵, 탈석탄화력도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행태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비밀주의이다. 국민이 내는 세금과 전기요금으로 유지되는 조직들이 투명하지 않다.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퍼뜨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경남 밀양을 지나가는 신고리-북경남 765천볼트 송전선 문제였다.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송전선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해 왔다. 정부는 신고리 핵발전소의 추가건설 때문에 새로운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었다.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고리2,3,4호기가 순차적으로 수명이 끝나는데, 수명이 끝나는 핵발전소를 가동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송전선을 건설할 필요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리-신고리 핵발전소단지에서 출발하는 345천볼트 송전선이 이미 3개 라인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기존 송전선의 용량을 증대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런데 정부는 신고리-북경남 765천볼트 송전선 건설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다. 한국전력은 돈을 풀어서 마을공동체를 파괴했다.

 

이 일은 지금도 끝난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내는 전기요금 수천억원이 투입되었는데, 아무리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벌여놓았기 때문이다. 미국 등지에서 1km 이상의 장거리 송전에 쓰이는 765천볼트 송전선을 겨우 90km짜리로 건설했다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다.

 

사업추진과정을 보면, 납득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한국전력은 애초에 신고리~북경남간의 765천볼트 송전선로를 수도권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그 계획은 백지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신고리에서 출발한 765천볼트 송전선은 겨우 90km를 간 다음에 다시 345천볼트로 전압을 낮춰서 영남지방으로 송전된다. 과연 왜 765천볼트라는 초고압 송전선을 고집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01310월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를 강행할 당시의 상황도 의혹투성이다. ‘공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공사를 강행했는데, 그 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신고리3~4호기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핵심부품이 장착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신고리3~4호기 완공은 1년 이상 늦춰졌다. 이런 정황을 보면, ‘정부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송전선 건설공사를 강행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송전선 건설, 발전소 건설은 큰 이권사업이다. 이런 이권사업이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없이 왜곡되어 왔고, 그로 인해 수많은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지역공동체가 파괴되어 왔다. 경남 밀양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져 왔다.

 

이런 적폐를 그대로 두고 전력정책을 혁신하고 탈핵, 탈석탄화력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도 이해관계집단들이 정보를 왜곡하고 국가정책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적폐는 국정원, 경찰같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이권이 걸려있는 곳에는 적폐가 쌓여있다. 이 적폐를 걷어내고, 국가의 정책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촛불정신을 실현하는 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경남 밀양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송전선, 발전소 건설과 관련해서 제기돼왔던 문제들에 대해 진상조사를 할 수 있는 전력적폐 청산 TF’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덮는 것이 아니라, 밝혀내는 것이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탈핵신문 201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