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기 보유문제의 심각성이 높아가는 가운데, 핵무기 폐기를 위한 비정부 국제네트워크로 일본 피폭자 단체와도 관계가 깊은 ICAN(핵무기 폐기 국제운동)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국가 차원의 핵무기 폐기를 위한 노력에는 긴 역사가 있다. 현재 세계 핵무기 관리 구조는 1970년에 발효된 핵확산방지조약(NPT)이다. 이 조약은 당시 핵을 보유하고 있던 5개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이 성실히 핵무기 축소에 임할 것과 여타 국가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국제조약이었다.
그러나 NPT 발효 이후 50년 가까이 지나도 핵무기 축소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롭게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NPT 체제에서는 핵무기 폐기는커녕 핵무기 확산 방지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뢰금지조약이나 클러스터폭탄(=집속탄)금지조약처럼 시민의 힘으로 각국 정부를 압박해 핵무기 금지 조약을 만들어 확산시킴으로써 핵무기 폐기를 실현시키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이 아이디어가 핵무기 금지조약으로 결실을 맺어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활동에 앞장선 조직이 ICAN이었다.
핵보유국은 모두 핵무기금지조약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반세기에 걸쳐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던 사실에는 눈감고 끝까지 핵무기를 계속해서 보유하려 하고 있다. 만약에 핵보유국이 NPT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다면 20세기 말 쯤에는 세계의 핵무기가 사라지거나 그에 가까운 상태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핵보유국의 약속 불이행이 핵무기금지조약을 만들어낸 것이다.
핵보유국 및 일본을 포함한 몇몇 국가가 핵무기 축소 및 핵무기 폐기에 소극적인 것은 핵억지론과 핵억지 전략을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억지론이란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핵무기로 반격해, 참기 힘든 손해를 줄 의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미리 잠재적 공격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이 공격을 단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로 인한 억지는 상대국 입장에서 보면 핵무기로 인한 위협이다. 오히려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게 만들기 쉽다. 실제로 미국의 핵무기 개발은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후 각국의 핵무기 보유도 대부분이 선행하는 타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핵억지는 현실적으로는 끝없는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진다. GDP 규모가 일본 가가와현의 규모와 동일한 정도의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니, 어떤 나라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자기 힘으로 핵무기 보유가 가능하다. 많은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공격용으로 사용하거나 폭발시키는 국가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핵무기 보유국이 파탄나서 핵무기 사용을 꺼리지 않는 무장집단 손에 핵무기가 넘어가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핵억지는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강행된 것이고, 미국에 대항해 핵우산을 스스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도발적인(거의 만화적인) 언동이 동반된 점은 이례적이지만, 북한만의 핵억지 전략 구축을 위한 노력인 것은 틀림없다.
극단적인 군사 편중정책을 취하는 북한은 핵무기 보유에 체제의 운명을 걸고 있어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상대는 호전적이고 조야한 트럼프 정권이다. 중요한 관계국 중 하나인 일본의 수상은 이 문제를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현 시기는 북한도 미국도 상대를 폭발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방적인 압력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관계국들의 보조가 안 맞으면 효과가 없을뿐더러, 효과가 있더라도 북한이 폭발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핵무기 폐기에 이르는 핵무기 축소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핵보유국과 일본은 핵억지 전략에 대한 고집을 그만두고, 핵무기금지조약을 받아들여 핵무기 폐기를 명백한 도달 목표로 하는 핵무기 축소를 계획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는 세계적인 핵무기 폐기 과정 속에 북한을 포섭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상, 핵억지는 필요하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국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핵억지 전략은 상대국의 핵무기 보유를 고정화시킬 뿐이다. 핵억지 전략의 상호적 포기만이 문제해결의 올바른 길이다. ICAN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이 길을 일구어나가려는 세계적인 비정부 시민활동에 대한 격려와 기대를 의미하고 있다.
글 : 다나카 요시아키(田中良明, 전 아이치(愛知)대학 교수)
번역 :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 출처 : 개인통신 ‘원전잡고(原発雑考)’ 352호에서 일부 내용 수정하여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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