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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핵자살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생명의 소중함과 안전에 대한 교육 또는 인식이 잘 안 돼있다는 뜻이다. 2014년에 벌어진 세월호 침몰은 이런 문제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속도와 능률만을 중히 여기다 보니 그 외 다른 가치들은 어찌되든 알 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리 된 것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전력질주한 결과이다. 지금은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이러한 태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시절에 갖게 된 습성이 하나의 국민성으로 자리잡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자살에 관한 한 온갖 세계기록을 다 가지고 있는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살무기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핵자살이다. 죽기위해 핵물질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 정도가 되면 사회가 거의 도박판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각계의 경고에 굴하지 않고 같은 지역에 계속 핵발전소를 짓고 있는 미친나라이다. 그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활성단층이 있어 애초부터 핵발전소 같은 것은 짓지 말았어야 함에도 오로지 경제’, ‘경제를 외치며 막무가내로 짓고 있다. 작년부터 같은 지역에 지진활동이 활발해져 건축물에 금이 가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질 지경인데도 대한민국 핵발전소는 세계 최강이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하긴 자살하려는 사람의 눈에 뵈는 게 없겠지.

 

지금 정부는 핵발전소 부지에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소를 지으려는 계획을 암암리에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격납고 안의 수장고에 보관해왔는데 이제 포화상태가 가까워져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이 무언가? 핵연료를 태우고 난 후 발생하는 고방사능 덩어리로 적어도 십만 년 이상 관리해야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핵쓰레기이다. 이것을 원래의 수장고에서 꺼내어 근처 평지에 노적가리(집 밖이나 들판에 수북이 쌓아 둔 곡식 더미, 편집자 주) 쌓듯 쌓아두려고 한다. 영구처분장이 건설될 때까지 한시적이라고 하지만 영구처분장 건설이 3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지역주민들은 일단 건설되고 나면 그대로 영구저장소가 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지만, 정부는 대안이 없다면서 돈 많이 줄테니 잠시 눈감아달라고 한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국민들 대다수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며 은근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정부는 건식저장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일단 건식저장의 문을 열어놓으면 핵확산의 고삐가 풀려버린다는 것이다. 땅만 있으면 어디든 무한정 폐기물을 쌓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돈 몇 푼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어떤지 한번 따져보자.

 

먼저 고준위핵폐기물을 노천에 보관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핵폭탄을 껴안고 사는 것과 같다. 지금 한반도는 북의 핵미사일 문제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만약 전쟁이라도 나면 북한으로서는 굳이 핵폭탄을 쓸 필요도 없게 된다. 일반 미사일로 핵발전소를 때리면 그대로 핵폭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미국더러 북한 좀 어떻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핵자살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폐기물 저수조의 용량에 맞추어 핵발전을 하던가 아니면 진작부터 중간저장소를 지어야지 여태 가만히 있다가 지진과 전쟁 위협이 난무하는 가운데 노천저장을 하겠다고 나선단 말인가.

 

두 번째로. 우리 역사서를 들여다보면 진도 7이상의 지진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근세에 들어 큰 지진이 없다가 작년부터 지진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지진대 위에 핵발전소를 수십기 세우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살행위이다. 보수 정객들은 지진으로 핵발전소가 깨진 사례가 한 건도 없다며 종북좌빨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고 떠들어내고 있는데 그러다가 정말 큰 지진이 나서 대형사고라도 터지면 책임질 것인가? 책임은커녕 해외로 자금 빼돌려 도망가기에 급급할 작자들임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폭발은 사고 날 확률이 백만분의 일이라는데도 사고가 나고 말았다.

 

셋째로,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면 피폭(被曝)당했다는 표현을 쓴다. 방사선 폭탄을 맞았다는 건데 이 말에 핵발전의 진실이 담겨있다. 방사성 물질에서 방사되는 입자 또는 파동은 하나의 초소형 폭탄이나 다름없다. 이 폭탄의 속도와 파괴력은 너무도 가공할 수준이어서 지상의 모든 것을 뚫고 들어가 파괴해 버린다. 그러나 워낙에 작은 단위라 폭탄의 위력이 서서히 진행된다. 이것을 대량으로 집적하여 한꺼번에 터트리는 것이 바로 전쟁에 사용하는 핵폭탄이다. 핵발전의 역사는 사실 핵폭탄 개발의 역사였다.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핵폭탄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언제라도 필요하면 핵폭탄을 제조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죽음의 물질이 땅속에 광물의 형태로 있을 때는 자체의 파괴력으로 지구토양 형성에 기여하는 등 나름 유용한 물질이었지만, 일단 지상으로 꺼내어 집적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폭탄으로 작용한다. 자연생태계의 입장에서는 절대 밖으로 꺼내어서는 안 되는 물질인 것이다. 인간이 이 죽음의 물질을 지상으로 꺼내어 개발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넷째, 1945년에 최초의 핵폭탄이 터진 이후 약 50년 동안 인류는 이미 어마어마한 량의 방사성 물질을 지구에 퍼질러 놓았다. 1993년 구 소련 정부가 스스로 발표한 기록만 보아도 그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 러시아는 228척의 핵추진 잠수함을 가동하고 있었으며, 7척의 핵추진 쇄빙선과 군수공장, 34기의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핵폐기물을 해양의 투기했다는 것이다. 이 때 투하된 방사능폐기물의 총량은 250만 퀴리에 달하며, 여기에는 핵반응로(=원자로) 18기와 폐기물 컨테이너 13,150개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도둑놈이 제발 저리는 심정으로 발표한 것이니 보고에 누락된 것도 상당할 것이다. 러시아 뿐 아니라 핵을 보유한 모든 나라가 1993년에 조인된 국제협약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너나 할 것 없이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렸다. 어디 그 뿐인가, 지금의 핵폭탄 보유국들은 폭탄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무려 2,121회의 핵폭발실험을 했는데(미국 홀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음) 이로 인해 얼마만큼의 방사능이 방출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히로시마급 도시가 지구에 약 2000개쯤 있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문제는 한번 방출된 방사능은 거의 반영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핵발전소에서 핵반응로를 돌리면 수백 가지의 핵종이 생산되는데 이 가운데 우라늄238은 반감기가 무려 447천만년이나 된다. 질량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지구 나이와 같다.

 

오늘날 인간이 겪는 질병 가운데 가장 사망빈도가 높은 암 발생은 지나치게 많이 방출된 방사능과 연관이 있음이 거의 틀림없다. 평소에 건강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암에 걸리는 것을 보면 방사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인류는 1945년 이래 집단적인 자살행위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생로병사가 자연의 이치라 하지만 굳이 자살의 방법으로 죽음을 앞당기려는 심사는 이 문명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증거이다.

 

탈핵신문 제59호 (2017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