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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탈핵동지들의 2차 맨붕을 보면서

탈핵동지들의 2차 맨붕을 보면서

김익중(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반핵의사회 운영위원)



패닉 :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결과를 승복하기까지

 

신고리5·6호기 공론화가 시작되었을 때 시민사회에서는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탈원전은 공약사항이니 그냥 실시하면 되지 왜 시민사회에 부담을 주고 위험을 자초하는가’, ‘공론화를 하려면 탈핵여부를 물어야지 왜 핵발전소 2기 공사재개를 묻는가’, ‘공론화를 하더라도 정부와 핵산업계 간의 논의가 되어야지 선수가 되어야할 정부는 왜 심판만 보나등등의 목소리였다. 공론화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공정성 시비 등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고, 특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공론화의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 시민사회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선 때 여론이 탈핵이 우위였으므로 승리를 자신했던 분위기와는 정 반대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공론화 과정의 공정성 문제가 다시 언급되었고, 이 과정에 참여했던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그러나 공론화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러한 불만과 우려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고, 그만큼 결과를 마음속에서 승복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성과 : 삼척·영덕 신규 백지화, 국민적 관심, 탈원전 정책의 공식화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 사건을 큰 틀에서 보면 이 공론화가 전혀 의미 없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냥 드러난 성과만 보더라도 2기의 핵발전소를 완공하는 대신 계획된 6기의 핵발전소(혹은 그 이상의 핵발전소)를 백지화했다는 점을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핵산업계도 이후 핵발전소 건설에 관해서는 그다지 큰 목소리로 저항하지는 않고 있으니 두 개 양보하고 이후의 모든 핵발전소를 백지화 한 셈이다. 물론 이후 정권의 변화라는 변수가 있지만 그것까지 미리 당겨서 평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공론화 이후에 있었던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고리5·6호기 이후 핵발전소는 모두 사라졌다. 조만간 삼척과 영덕의 핵발전소부지 고시는 철회될 것으로 보이고, 핵산업계 역시 앞으로 신규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절반 정도는 포기하고 있지 않나 짐작된다.

 

공론화를 통하여 얻은 두 번째 성과는 아무래도 국민적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일 것이다. 대선과정에서 탈원전이 공약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 대중은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대선은 다른 이슈들에 의해서 결과가 도출되었고, 탈핵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탈원전 정책을 널리 알리는 효과를 공론화 과정이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 번째 성과는 공론화의 결론에도 포함되었듯이 탈원전 정책이 공식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셈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대선 이후 여론조사 결과는 항상 약 60% 정도의 탈원전 정책 지지도를 보여왔지만 그것이 공식화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제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며, 동시에 국민적 동의가 확인된 정책이 되어버렸다.

 

정부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를 푼 형국이 되었다. 이 과정이 정권 초기에 실시된 탓도 있겠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대통령 지지도의 하락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었다. 가장 강한 저항이 예상되는 부담스러운 공약이었을지 모르는 탈원전 공약이 지지도 하락도 없이 성공적으로 연착륙을 한 셈이 되었다. 일반 국민도, 핵산업계도 이제 탈원전 정책을 기정사실화 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공론화에 참여했던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수고 덕분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늦게나마 참여했던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남은 숙제 : 탈원전 여론 강화 및 교육홍보, 고준위핵폐기물 재공론화 대응, 핵재처리 연구 봉쇄 등

 

현재 우리 탈핵 시민사회는 이 공론화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하고 있다. 나처럼 크게 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 역시 분명한 근거를 갖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그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이다. 앞으로 남은 숙제가 많다. 남은 숙제들을 생각하면 이 공론화 과정이 너무 적은 성과를 내었다고 느낄 만도 하다. 앞으로 남은 숙제들 중 언뜻 떠오르는 것만 나열해도 십 여 가지가 된다. 한번 나열해보자.

 

1. 탈원전 여론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한 탈원전 홍보, 교육

2.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해결방안 찾기, 재공론화 대응

3. 핵재처리 연구 봉쇄

4. 원자력 연구예산을 재생에너지로 전환

5. 원자력 안전성 강화(규제 국산화, 현실화, 정보공개 및 비리척결)

6. 방사선 건강영향에 대한 의학적 증거확보, 핵발전소에 의한 피폭 문제 드러내고 책임입증

7.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에너지 전환의 내용 충분히 담기

8. 태양광, 풍력발전 확대(재생에너지로 전기의 100% 공급 목표, 간헐성 문제 해결, 주민참여 확대, 규제 개혁)

9. 전력수요관리, 에너지 효율화

10. 전력거래 방식 분산화, 민주화

남은 숙제가 끝도 없다.

 

현재까지 달성한 것은 겨우 신고리5·6호기 이후 핵발전소 건설은 없다는 점과 탈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금 얻은 점, 그리고 앞으로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없다는 정도이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기는 하겠지만 이전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라서 그 속도가 느릴 것이다.

 

평가 : 2011년 이후 탈핵운동은 엄청나게 성장했고, 앞으로 성장할 것이다.

 

2011년 이후 약 7년간 우리나라의 탈핵운동은 사실상 엄청난 성장을 해왔고, 앞으로도 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시민과 기업들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또한 에너지 전환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크게 바꾸는 변화이므로 나중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평가될 것이다.

 

현재 우리는 적어도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출발선에 서있다. 이 출발선까지 오는 데는 실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수많은 집회와 기자회견, 강의와 토론회, 영화제작과 선거참여 등이 있었다. 출발선에 서기 전까지의 모든 노력은 탈핵에 대한 국민 설득 과정이라고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국민설득과정의 끝부분에 정부 정책화가 있고, 정부 정책을 실제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이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 공론화의 2가지 결론을 뚜렷이 기억한다. 첫째는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재개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탈핵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것이다.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는 핵산업계에게 마음을 정리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평가해볼 수도 있다. 마치 보채는 아이에게 이 사탕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해주는 여유 있는 엄마처럼 말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총 28개냐 아니면 30개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신규핵발전소는 없다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실제적으로 에너지가 전환되는 출발선을 의미하며, 이 출발선에 서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있었는지 평가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은 숙제가 달성한 숙제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 정말로 반이다.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한다.

 

전망 : 총론은 끝났다. 다양한 활동을 필요로 하는 각론의 시대가 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탈핵, 혹은 세계 탈핵의 완성시점을 약 40년 후로 계산한다. 한번 두고 보시라. 40년이다. 그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들을 수행하고 기다리고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수십 년의 반핵운동을 이끌었던 가장 큰 담론이 막을 내렸다. 나를 비롯한 많은 활동가들이 사실상 맨붕 상태에 다시 빠졌다. 5년 전 탈핵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한 후 겪었던 맨붕과 매우 유사하다. 목표를 상실한 우리 탈핵진영에 말하고 싶다. 이제 총론이 끝났을 뿐이고 각론의 시대가 왔다는 것, 그리고 각론은 훨씬 많은 사람들의 훨씬 다양한 활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한 10가지 과제들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목표를 설정하고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이 과제들을 수행해야한다. 심기일전해서 다시 한 번 일어서야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1, 6번 과제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탈핵동지들이여 힘내시라. 그리하여 기왕 쉰 김에 좀 더 쉬고, 이후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한번 켜시라. 


탈핵신문 2018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