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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신고리5·6호기 공론화가 남긴 것

 

현실의 벽은 높았다. 탈핵운동은 시민참여단으로부터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이하 신고리 공론화)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의 얼개도 드러나고 있다. 훗날 탈핵의 역사 속에서 2017년 신고리 공론화는 어떻게 그려질까?

 

에너지 민주주의 실험과 정치적 책임 회피의 경계

 

신고리 공론화는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후퇴의 산물이다. 탈핵공약은 핵산업계의 반발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백지화를 약속했던 신고리5·6호기는 공론화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탈핵운동은 공론화를 선택했다기보다 선택을 강요받았다. 신고리 공론화는 탈핵공약의 후퇴를 인정하는 것이자 결론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에서 탈핵운동진영은 탈핵의 사회적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공론화에 뛰어들었다.

 

초기 논란을 뒤로 하고 정부가 제시한 공론화 방식은 공론조사였다. 그리고 숙의를 거친 시민참여단의 결론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한다. 통상적으로 공론화 결과가 권고적 효력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조치였다. 시민참여단의 조건으로 특별한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정치적 평등도 보장되었다. 폐쇄되었던 정치적 공간의 개방, 참여를 통한 시민성의 증진은 공약 후퇴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공론화를 더 나은 에너지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씨앗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에너지 민주주의 실험의 토대는 견고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책임 의지가 불투명했다. 특히 민주당은 공론화 기간 내내 정치적 입장의 표명을 극도로 꺼렸다. 논란이 확대되고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충돌하면 자신들이 내건 탈핵공약이라도 쉽게 폐기할 것처럼. 신고리 공론화가 숙의적 민주주의 실험과 정치적 책임 회피의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시민, 주민, 미래세대 사이의 긴장

 

신고리 공론화를 거치며 탈핵운동이 풀어야할 숙제도 늘었다. 먼저 전국 단위 공론조사가 실시되면서 탈핵운동은 시민과 주민, 미래세대 사이에서 흔들렸다. 대표성에 초점이 맞춰진 유권자 대상 전국 단위 공론조사는 적어도 의사결정권에 있어서 지역 간, 세대 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전국 단위 공론조사에 담긴 정치적 평등성은 환경정의, 에너지 분권·자치 주장과 충돌하기도 했다. 지역 가중치나 청소년(미래세대) 의견 반영 문제가 단적인 사례다. 긴장 관계는 인접 지역의 건설 재개 비율이 높았던 덕에 봉합될 수 있었지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역 간, 세대 간 이해관계 충돌이 심각할 때, 현 세대의 정치적 평등과 대표성에 방점이 찍힌 전국 단위 공론조사가 최선의 시민참여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보다 구체적으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도 공론조사로 풀어야할까? 생각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리 공론화를 통해 시민참여와 공론화 모델의 선택, 다시 말해 시민과 주민, 미래세대 사이의 결정권 배분 문제가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공론화 관리기구와 탈핵 논리도 되짚어봐야

 

공론화위원회는 쌍방 제척을 통해 구성되었다. 이로 인해 공론화위원회에 정작 공론화 전문가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몇 차례 논란에 휩싸였다. 토론 자료, 편향된 언론 보도, 한수원 및 정부출연연구기관 관여 등 수시로 문제가 불거졌지만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기계적 중립성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공정성이 침해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통해 유추하건데, 공론화 관리기구의 구성과 역할, 실질적 중립성 확보 문제는 앞으로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탈핵운동의 대안은 마련되지 않은 듯 싶다.

 

시민참여단 설득에 실패한 미시적 이유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설문조사가 진행되면서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의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즉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은 건설 재개 측 주장에 더 공감했다. 특히 건설 중단의 비율이 높았던 20~30대가 건설 재개로 돌아선 것은 뼈아픈 결과다. 또한 시민참여단은 탈핵진영의 기대보다 훨씬 더 점진적으로, 여러 상황을 따져보면서 탈핵을 추진해야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고리 공론화를 통해 탈핵 논리의 정교화, 재구성이 없다면 탈핵의 확장성이 한계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탈핵의 제도적 기반 구축 필요!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기 위해 탈핵의 제도적 기반을 확충해야하는 과제도 남았다. 시민참여단이 원전 축소를 지지하고 건설 재개 시 필요 조치로 제시한 것들이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몇 가지만 예로 들면, 먼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는 필수적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강화는 인·허가 및 안전 규제 강화의 첫걸음이자 핵발전 경제성 현실화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둘째, 재생에너지의 신속한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한다. 여기에는 원자력연구개발 예산의 조정과 원자력문화재단의 해체·개편도 포함된다. 셋째, 폐로 시대를 대비해 국가적, 지역적 폐로 전략을 만들어야한다. 향후 탈핵의 속도는 폐로의 기준으로서 설계수명의 타당성, 폐로에 대한 저항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고리 공론화가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중단시키진 못했지만, 탈핵과 에너지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한 과제를 발견하고 해결의 단초를 찾는 계기가 되길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홍덕화(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탈핵신문 2017년 11월호 (제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