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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두가 다 현장에 갈순 없잖아요 - 일상에서 꾸준한 캠페인…매주 화요일 시위, 138차 진행

 이동원 사무국장(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 인터뷰

 

아직은 초여름인데도 이국의 낯선 역병과 기록적인 가뭄으로 그 어느 때보다 햇살이 가혹하게 느껴지는 6. 숨쉬는 것마저 미안한 시절이 극악(極惡)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숨쉬는 것이 공포인 새로운 극악을 온몸으로 겪다보니 난생 처음으로 어디 해외도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온나라가 전염병과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던 어느 날, 정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난데없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한다는 깜짝 발표를 단행했고, 그 속내는 너무 빤해 차라리 말문이 막혔다. 전기요금 일이천원이 더 나오고 덜 나올 때마다 일희일비했던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 그 순간, 밀양의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이 순간 그분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모멸감과 비애감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전기요금 인하에 대한 분노가 아직 삭지 않은 상태로, 핵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 이동원 사무국장을 만났다. 대구백화점 앞에서 진행된 138차 화요시(매주 화요일 정기 시위를 뜻함, 편집자 주)를 마치고 난 뒤 인근 커피점에서였다. 음악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그의 음성은 굵고 시원하게 울렸다. 호탕한 성격을 짐작케 하는 목소리였다.

 

지금 직함이 어떻게 되나요?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 사무국장이고 대구녹색당 탈핵에너지전환의제모임 대표에요. 대구녹색당 운영위원이자 탈핵담당이구요, 대구경북탈핵연대 집행위원이자 삼평리 실행위원이기도 하네요. 모두 녹색당 탈핵담당을 하면서 맡게 된 일들이죠.

 

녹색당 가입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녹색당 활동에 끌린 건 아니에요. ‘땅과자유모임이나 녹색평론 독자모임 같은 기존에 관계하던 모임의 사람들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녹색당에 가입하게 됐어요. 노동당, 사회당도 있었지만, 그때는 결합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제가 그동안 읽었던 책과 주위 사람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녹색당 탈핵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데는 이전의 땅과자유활동의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 그래도 땅과자유가 좀 자유로운 형식의 모임이라면 녹색당은 더 짜임새가 있고 에너지를 더 많이 쏟게 되는 일이지 않나요?

녹색당 활동 이전부터 밥나누기 활동을 하고 있어요. 2000년 초에 가톨릭청년단체협의회 회장을 하면서 지역에 있는 성당 1백여개 청년단체를 모아서 청년예수의 모습으로 살아가자 그런 운동을 했는데, 그때 통일도 있었고, 환경도 있었고, 사형폐지, 낙태 반대, 반핵운동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신부님하고 좀 갈등이 있었죠. 운동성이 너무 강하다고. 봉사활동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처음에는 반발심 같은 걸로 하게 됐어요.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대구역에 갔더니 노숙인 밥주기 봉사활동이 화요일만 비어있었던 거예요. 저녁식사로 2백인분. 그게 20005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활동을 하다보니까, 사람이 밥을 나누고 말을 나누는 게 중요한데, 밥이라는 게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땅에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농사의 중요성으로 연결되고, 농사를 알게 되면 환경의 중요성하고 연결되고. 탈핵이라는 주제 하나로 이렇게 활동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넓은 범위에서 생명도, 환경도,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걸 인식은 하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했는데, 당장 급하게 다가오는 게 탈핵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죠. 맡은 역할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활동이나 생업을 희생하고 거의 반()업으로 활동하는데 부담을 느끼거나 하진 않나요?

희생이라기보다는 다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자기 취미생활도 하고 그러잖아요. 저도 그렇게 하는거죠. 탈핵도 취미활동처럼. 밥 좀 빨리 먹고 하면 되고, 저녁에 다른 여유 가지는 걸, 이런 활동을 하는거고. 그렇게 2년 좀 넘게 온거죠. 전 중심에 있기 보다는 밑에 있으려고 했어요. 환경쪽 분들이 기동력도, 돈도 별로 없어요. 그런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꾸려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원래 제가 삶의 목표가 하루에 일을 반만 하자거든요. 반은 일을 하고 반은 다른 일을 하자. 탈핵을 하든 뭘하든. 하루에 8시간이라고 하면 4시간은 일을 하고 4시간은 다른 일을 하는거죠. 결국 그러다보니 밤이나 새벽에 추가로 일을 하긴 하지만요.

 

탈핵대구시민행동의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나고 연말 정도에 결성됐어요. 환경운동연합과 녹색당이 주도했죠. 활동은 뭐, 다 걸려있어요. 영덕신규핵발전소, 청도 삼평리 송전탑, 경주핵폐기장까지. 경상북도도지사는 핵클러스터 만든다는 사람인데, 제가 그것 때문에 경북도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한달 동안 했었어요. 경북도의회 상정되고 통과시키니마니 하고 있을 때. 방사능안전급식 문제도 있었고. 그래도 아무래도 현장은 가까운 청도 삼평리에 제일 많이 가요.

일상적으로는 매주 화요시를 꾸준히 하고 있죠. 우리 화요시가 138차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야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거쳐가고 바라봐준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그린피스처럼 9시 뉴스에 한번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처럼 일상에서 캠페인으로 꾸준히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어차피 모두가 다 현장에 갈순 없는거잖아요.

탈핵운동 열심히 하는 활동가들도 많고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저는 지나가다가 수고한다고 커피한잔 사주고 가는 분들의 영향력도 생각보다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전략에 대해 녹색당 내에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개인적으로든, 탈핵운동과 관련해서든.

활동은 올해까지만 하고 정리할꺼에요. 당원으로서는 활동하겠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죠. 역할들이 단칼에 끊어지지가 않으니까. 일반시민의 모습으로 참여하고 바라봐주는 분위기도 있어야 할텐데 다 타이틀을 달고 있잖아요. 일반적인 참여가 잘 안되고.

장기적으로는 시골로 가고 싶어요. 그런데 골짜기 좀 좋으면 댐 만든다 하고, 산 깎아서 휴양림 만든다 하고, 풍력발전소도 마찬가지고 좀 걱정은 되죠. 하지만 내 삶이 바뀌지 않으면 뭐가 바뀌겠어요. 어떻게 전기를 줄이겠어요. 차도 안타야 되지. 삶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 내가 탈핵활동을 하더라도 좀 괜찮게, 요즘 말로 하면 좀 세련되게 크게 문제없이 진행되는 걸 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좀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지금은 2년째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정 안되면 애들을 빨리 독립시키고 귀촌을 하려구요.

 

삶의 어느 시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그러니까 어쩌면 연륜이라는게 조금씩 쌓인 뒤부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과거에 만났던 다른 사람과 같은 범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종종 있었다. 이동원 씨도 그런 사람 중의 한명이었는데, 목소리부터 전체적인 에너지까지 내가 알던 어떤 호방하고 막힘없는 성격의 어떤 경상도 아저씨를 떠올리게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그의 삶을 유지해주는 또 다른 반쪽의 일을 위해 총총 떠나갔다. 문득, 그의 자신감 있는 태도는 어쩌면 정직한 노동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양 날개가 언제까지고 강건하기를.

 

 

 

2015년7월(제32호)

황성원(에너지정의행동 회원·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