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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 재난 속 숨은 이야기 찾기

 

∥ 책 소개

 

재난 속 숨은 이야기 찾기

 

 

『3·11 동일본대지진을 새로이 검증하다: 복구·부흥·재생 프로세스 및 방재·감재·축재를 위한 과제』 (간사이대학 사회안전학부 엮음, 김영근 옮김, 한울아카데미, 2021)

 

 

일본 정부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스치듯 지나갔지만,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새로운 핵분열 반응 조짐이 감지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꺼지지 않는 불의 다른 이름이 끝나지 않는 재난이라는 사실은 핵사고의 피해를 이해하기 위해 장기적인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긴 호흡으로 추적하지 않으면 핵사고의 피해를 온전히 포착할 수 없으며,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는 계획 역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간사이대학 사회안전학부가 펴낸 3·11 동일본대지진을 새로이 검증하다는 재난을 다각도로 추적하는 책이다. 검증 3·11 동일본대지진의 개정판인 이 책은 5년 지난 시점에서 재난의 전개 과정을 포괄적으로 되짚어보고 있다. 탈핵을 표방하는 책은 아니지만 자연과학과 공학, 사회과학, 인문학을 아울러 방재, 안전설계, 의학, 커뮤니케이션 등 재난 이후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눈여겨볼 만한 점이 곳곳에 있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곳 중 하나는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컨센서스 커뮤니케이션크라이시스 커뮤니케이션”, “케어 커뮤니케이션으로 구분하며 단계별, 대상별로 대응 체계를 정교하게 만들 필요성을 제기한다. 통상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은 핵 시설의 안전성을 전제로 시설 사용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핵사고 발생 후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비상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 방안(크라이시스 커뮤니케이션)과 방사선 피폭 등 직접적·잠재적 피해에 노출된 이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방안(케어 커뮤니케이션)을 체계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정보의 제한, 피해자의 분산과 이탈 등 현실적인 문제들은 방사능 방재 계획이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재난 보도의 방식과 역할을 따져보는 부분도 흥미롭다. 포스트 3·11의 재해 저널리즘: 과제와 전망은 재난 경험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시공간적으로 입체적인 보도가 필요함을 환기시킨다. 예컨대, 체험된 현실로서의 재난은 국지적인 현장 경험을 매개로 하며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횡단적 시각을 통해 개인의 파편적 경험이 총체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재구성된다. 지역 미디어의 밀착 보도, 1인칭 관점의 연속 보도, 그리고 이를 연결해주는 웹 아카이브 구축 등 재난 경험을 시공간적으로 연결해주는 작업이, 소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이유이다. 또한, 긴급 보도를 매개로 한 재난 경험이 살아있는 역사적 교훈이 되려면 현재를 과거화하고 과거를 현재화하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을 가로지르고 세대를 아우르는 시각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에서 크고 작은 핵사고가 보도되는 방식을 되돌아보고 핵사고가 체험된 현실로 경험되지 않는 배경을 생각해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일본에서 발간된 시기가 2016년인 만큼 이 책이 지난 10년의 변화를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했지만, 전체적인 연구 흐름을 반영한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 한계는 윤여일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해 지역에서는 지역 부흥을 위한 어떠한 지식이 생겨났는가: 진재학의 10년사를 통해(경제와사회, 2021년 봄호)를 곁들여 읽으면 일정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온진재학은 재난 현장과 마주한 이들의 시각에서 재난의 장기 궤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거대 방조제 건설과 고지대 이전으로 인한 생활공간과 일터의 분리, 지역의 자율적 대응 능력에 기초한 순응적 부흥의 필요성 등 주류 언론의 보도를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3·11 동일본대지진을 새로이 검증하다진재학에서 드러나는바, 장기 지속되는 재난을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체험된 현실로서 재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맥락을 고려해 주민들의 시각에서 재난 경험을 해석하는 시도가 곁들여져야 한다. 한국의 탈핵 연구에서 가장 부족한 지점을 꼬집는 것 같아 뜨끔하지만, 일본 학계의 추적 연구를 보며 곱씹어볼 만한 또 다른 지점이 아닐까 한다.

 

홍덕화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탈핵신문 2021년 6월(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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