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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 소개] 후쿠시마 사고와 안전규제의 현실

 

후쿠시마 사고와 안전규제의 현실

- 글쓴이: 윤종호 무명인출판사 대표

 

 

지금까지 10, 앞으로 10

 

 

탈핵신문을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독자라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지나온 10년의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지치지는 않으셨는지요? 그간 참으로 고생 많으셨죠?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인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아직도 남아 있으신가요?

 

, 지쳤습니다. 방전 직전의 몸과 마음으로 차마 외면하고 뿌리칠 수 없어서, 저에게 주어진 혹은 제가 자임한 역할을 겨우겨우 마주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때 우후죽순처럼 뛰어들었던 많은 선생님과 선·후배님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이미 돌아가시기도 했고, 또 어떤 분은 기존의 활동을 중단하거나 혹은 잠시 활동을 쉬며 충전하고 계시는 것 같고, 또 다른 분은 비슷하지만 다른 활동공간에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이곳에 남아 함께하는 분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지만, 후쿠시마 10년을 즈음하여 새삼 지난 과거의 기억과 책들을 뒤척이다 보니, 새삼 정신이 뻔쩍 듭니다. ‘지금 우리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충격, 지진과 사고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장래를 위한 각오를 잊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사고 1년여의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반추하고 있는 이 책의 필자의 언질이, 10년이 지난 시점의 저를 일깨웁니다.

 

똑같이 후쿠시마 사고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일이지만, 사회적·정치적 논란 끝에 기존 핵발전소 17기 중 절반가량을 당장 멈추고, 나머지 절반가량을 2021년까지 폐쇄키로 했습니다. 그리고,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늘여가는 산업시스템과 사회구조의 개혁을 성취해왔습니다. 물론, 우리의 산업시스템과 사회구조, 시민의식과 정치 상황 등을 독일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금 우리 주변의 현실을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2021년 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렇게 겨우 추슬러 봅니다.

 

 

폐쇄가 최선안전규제 역시 중요한 의제!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의 반핵·탈핵운동의 핵심적 의제는 오랫동안 신규 건설과 노후 수명연장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방사선비상계획구역과 방재계획, 라돈침대와 같은 생활방사선 문제와 갑상선암 공동소송, 핵발전소 격납건물 철판부식과 공극, 증기발생기·핵반응로(원자로)헤드 등의 사건·사고 등도 빈번하게 사회적 이슈로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은 해당 시민 또는 핵발전소 주변지역 대책위나 주민들의 계기적·제한적 관심사였지, 흔히 말하는 시민사회의 주요 관심과 의제로 일관되게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신규·노후는 여전히 핵심적 의제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핵발전소를 지금 당장 폐쇄해야 한다는 바람과는 달리, 사회구조적으로 체제를 전환하기까지는 짧든 길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핵폐기물을 비롯해 폐쇄된 핵 시설물 등의 처리까지 고려한다면 그 위험물의 안전관리 역시 요구된다. 그렇다고 핵발전소의 위협·위험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방안은 모든 핵 시설의 폐쇄라는 것을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폐쇄하기 ·까지 어떻게든 사고가 나지 않도록 위험관리, 안전규제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사회에서 통상 반핵·탈핵단체들의 이름은 핵 없는 세상등으로 시작하거나 탈핵○○등으로 명명된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끈질기게 지역의 핵발전소 반대 주민운동을 전개해 온 영광지역은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명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 측면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쿠시마 사고의 검증과 안전규제의 실태한국의 현실은?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후쿠시마 원전사고 대응과정의 검증과 안전규제에 대한 제언』 마쓰오카 슌지(松岡俊二) 지음, 김영근 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3년 3월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후쿠시마 사고는 왜 발생했고, 어떻게 진행되었길래 제어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검증하며, 이 일련의 과정에서 안전규제기관인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더불어, 일본 핵발전산업의 안전규제제도와 기관의 역사적 전개와 변천, 그리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2012년 상반기에 출간된 책을 20133월 번역한 것으로 비록 130쪽 내외의 분량으로 일본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의 핵발전소 위험관리, 안전규제 현실을 비추어 볼 때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적절한 분석과 방안을 밀도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안전규제 흐름과 문제점이 우리나라 그간의 현실과 어쩜 이렇게 판박이일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원자력산업에 대한 안전검사체제는 행정은 전력회사 떠넘기기, 전력회사는 제조사 떠넘기는 구조였으며, 실질적으로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독립된 검사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35)”와 같은 부분이다. 한국의 안전규제 최고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행정)는 한빛(=영광)핵발전소 격납건물 공극이나 증기발생기 내 이물질·망치, 핵반응로(=원자로) 헤드 부실 용접 등의 사건·사고 때마다 사업자(전력회사)인 한수원에게 책임을 묻고, 한수원은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등(건설·제조사) 등에게 원인을 떠넘겼다. 행정이 실질적인 검사·규제체제를 갖추고 제대로 된 역할을 했더라면, 과연 사업자와 제조사 등이 그런 부실시공·불량설비·엉터리작업 등을 반복할 수 있었을까.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핵발전을 상정하고 있는 일부 논자들이 횡행하는 우리 현실에서, 이 책의 저자의 고백도 인상 깊다. “필자는 환경경제·정책학이 전문인 사회과학자로 대학원생 재학 시절 미국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사회적 규제에 관한 논문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 후 지속적으로 원자력발전문제를 연구해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온난화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자력산업에 대한 안전규제와 핵폐기물의 최종처리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자연에너지가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에 한해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발언·주장을 이어왔다. 나는 지금 사회과학자로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 사회과학자로서, 사실에 근거하여 일본의 원자력산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과학적인 평가를 통하여 원자력발전에 대한 발언을 했어야 했다. 정말로 안전이 보장되는 심사제도인가,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면 중대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책과 체제는 확립되어 있는가, 규제를 받게 되는 전력업계의 대응 능력은 어떠한가, 리스크에 대한 정보와 피난 방법은 주변 지자체와 주민들에게 주지되어 있는가 등을 진지하게 연구했어야 한다(30).”

 

혹시 모를 핵발전소 사고와 최소 10만년 갈 핵폐기물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무쪼록,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탈핵신문 2021년 3월(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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