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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권력에 구속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자유인

권력에 구속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자유인

-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 인터뷰

 

전국 탈핵 집회 현장에 가면 노란색 바탕에 검정 글자로 핵발전 반대라고 쓴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깃발 아래는 어김없이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가 서 있다. 박종권 대표는 울산에도 탈핵 강연을 오곤 했다. 질문식으로 진행하는 강연은 쉽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이다. 부산이나 경주처럼 마산-창원-진해 지역은 핵발전소가 바로 눈앞에 없지만, 꾸준히 탈핵운동을 한다. 박종권 대표와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대표는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의장을 지냈고 지금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로 활동 중이다.

 

- 간략하게 살아온 이야기와 환경에 관심 가진 계기를 말해달라

 

집안이 가난해서 상고를 갔다. 은행에 취직해서 월급도 많이 받고 잘살고 있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은행 근처에 있던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회원 가입을 하고 두 달짜리 시민환경학교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매연버스가 서울에 참 많았는데 보는 대로 서울시에 신고하고 1년에 200대 정도 신고하니 서울시가 모범시민상을 주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KBS가 출연 요청을 하여 환경 이야기를 하게 됐다. TV 방송에 나오자 나의 직장인 은행에서 환경운동가로 알려지게 되었고, 동료직원들이 환경에 관해 물어보곤 했다. 그에 답하기 위해서 환경 공부를 계속하면서 환경에 점점 빠지게 되었고, 은행 사보에 환경칼럼을 시리즈로 쓰고 내부 환경 강사로 강연까지 하게 됐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은행직원들을 환경단체에 회원 가입도 많이 시켰다.

 

서울에서 직장인 은행 일을 하면서도 환경운동연합 비상근인 총무국장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정년퇴직 전인 1998년 기업은행 마산지사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당시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활동도 했다. 2013년에 직장 은퇴한다고 했더니 마창진환경련이 나더러 의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마창진환경련 의장을 맡아 서울과 창원을 오가며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은행 퇴직 후에 창원으로 왔다. 고향이 창원이다. 창원은 고리핵발전소에서 60km, 양산은 12km밖에 안 되는데 예전에는 탈핵운동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 탈핵 운동에 처음 관심 가진 것은 언제인지

 

탈핵은 환경운동연합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이었고 환경운동연합 김혜정 씨 강연을 듣고 핵발전은 절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면도 핵폐기물 처분장 집회에도 갔으니 20년 정도 된 이야기다. 그 이후 굴업도 핵폐기물 처분장 싸움에도 많이 참여했다. 이후 2011년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이후 본격적으로 탈핵 운동을 시작했다. 사고 직후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 등이 주관한 탈핵학교에 1번으로 등록했다. 핵산업계의 심장인 서울대 원자력 전문가 과정도 수강했다.

 

지역에서는 제법 알려진 탈핵 강사가 되어 100여 회 이상 탈핵 강연을 다녔다. 두산중공업이 창원에 있어서 친구들이나 노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 살지 왜 내려왔냐고 하더라. 나는 특정 핵발전소를 표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리1호기를 지목했고, 그때 제가 서울에서 고리1호기 폐쇄특별위원장을 맡았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탈핵 정책을 받아냈고 고리1호기 폐쇄 선언식에도 갔는데 그때는 참 감격스러웠다.

 

 

- 탈핵경남시민행동의 탈핵 활동을 소개해 달라

 

탈핵경남시민행동은 창원에 내려오자마자 만들었고 고리1호기 폐쇄에 몰방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때도 엄청 활동을 많이 했다. 창원에서 고리핵발전소까지 약 100km 거리인데 자전거 타고 가는 집회도 했고, 지금은 많이 보편화 되었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차량시위도 했다. 두산중공업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대기업이고 하청업체는 무려 300개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두산 노동조합이나 창원시장이 창원 경제를 생각한다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발언을 두 번이나 해서 시장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창원시장은 그 이후로는 신한울 3·4호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소문이 났는지 도지사도 신한울 3·4호기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현재는 기후문제에 열중하다 보니 탈핵 운동은 경주나 부산 등지에서 문제가 있을 때 지지방문 등의 활동 정도를 한다. 그럼에도 탈원전 정책 폐기.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요구 등이 있으면 바로바로 대응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의 확대가 핵발전을 조기에 폐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이 점에 집중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탈핵 활동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탈핵 강연을 100번 이상 했고, 신문에 칼럼도 쓰고, 탈핵 광고를 지역 경남도민일보에 광고비 내고 공익광고로 100번 냈다. 100번 다 내용이 다르게 하여 광고했다. 강연할 때 핵발전의 몰락 판도라라는 소책자를 5천 부 정도 만들어 배포해서 반응이 좋았다. 한 번은 핵발전 찬성 측인 양재영 교수(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와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불러서 경남대학교 강당을 빌려서 대중 공개토론을 한 적도 있다. 김익중 교수와 내가 두 사람과 싸웠는데 우리가 판정승했다.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대표가 2017년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서 부산-울산-경남 차량시위에 참여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외치는 장면

 

또 한 번은 2020년 초에 창원시와 상공회의소가 주관하여 탈원전 문제로 세미나를 열었는데 90%는 친원전 쪽 사람들이고 반대는 나 혼자 짧은 시간(5)으로 배정하여 강력하게 항의해서 나만 20분 배정받아 신나게 핵발전의 문제점을 부각한 적이 있어 기억에 남는다.

 

천주교 마산교구청에서 핵발전 강연을 하는데 두산노조 간부가 내 강의를 처음부터 듣고 조목조목 반박은 하지 못하고 너무 심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만나 토론을 좀 하자고 했는데 그 이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두산노조는 나의 방송 인터뷰, 신문 기고 등을 전부 모니터하고 있던데 항의 전화는 없었다.

 

 

- 신울진 3·4호기 건설재개 우려와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신청기한 연장 관련해 어떻게 해석하나

 

창원은 두산중공업이 있어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요구가 많다. 요즘은 좀 수그러들었지만, 창원시장은 몇 차례 건설재개 검토요청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두산이 풍력으로 전환하고 정부에서도 풍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해서 좀 조용하다. 그러나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지 건설재개 요청이 세질 것이라 항상 긴장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노조와 토론회를 두세 차례 요청해도 거절하더라. 우리는 탈원전을 하려면 정부가 실직노동자를 보상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원전을 못 짓게 하면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다. 독일은 그렇게 했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신청기한 연장 시도 역시 탈원전 정책을 흔들기 위한 꼼수이고, 정권 잡으면 핵추진 하겠다는 것으로 읽히는데, 세계적으로 사양산업인데 우리만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재생에너지 아니면 수출도 어렵다. 탈핵 법제화가 필요하다.

 

 

-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탈핵이 진전이냐 후퇴한 것이냐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전도 아니고 후퇴도 아닌 제자리걸음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핵마피아들의 요구에 흔들리는 기색이 보이면 탈핵 진영에서 강하게 싸울텐데 그렇지 않다. 지난해 주호영 원내대표가 청와대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요청했을 때 한마디로 거절했다. 지금도 전력 설비량이 30% 여유가 있는데 더 지을 수 없다고 답하더라. 핵폐기물 임시저장고 건설허가 때문에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탈핵진영이 강력하게 대응할 명분이 생겼고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월성핵발전소 삼중수소의 유출 문제를 계속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 삶의 철학을 말해달라

 

나는 30년 동안 환경운동에 나름대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직장 은퇴 후에는 거의 실무자 수준으로 지금까지 탈핵운동과 환경운동을 해 왔다. 마창진환경련 두 번의 의장과 운영위원을 맡아 활동하면서 활동비를 받은 적이 없다. 후원금 끌어오고 강연료도 다 가져다 준다. 그런데 2018년 그레타 툰베리 등장으로 심한 좌절감을 느꼈고 부끄러움도 느꼈다. 지금까지 어떻게 운동을 했길래 지구가 이렇게 망가졌나. 그래서 죽기 전까지 온 힘을 다해서 기후위기를 막아 보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물론 핵발전소 사고 없이 폐쇄할 때까지, 가능한 한 조기에 폐쇄하도록 운동하면서 말이다. 내 평생의 좌우명이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다. 물질이나 자리에 구속되지 않고 권력자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다.

 

용석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3월(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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