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합기사, 핵폐기물

<8호>갑자기 불고 있는 핵발전소, 방폐공단 이름바꾸기 열풍

껍데기를 바꾼다고 알맹이까지 바뀔까? 각종 핵에너지 시설·기관, 이름 변경 열풍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대표)


갑자기 불고 있는 핵발전소, 방폐공단 이름바꾸기 열풍

최근 한수원은 이사회를 통해 기존 영광과 울진 핵발전소 명칭을 한빛과 우리로 바꿨다. 이에 앞서 영광군과 울진군은 각각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운 발전소 명칭 공모를 했고, 그 결과 한빛, 우리 등 각종 이름이 개진된 바 있다. 지자체와 한수원 측은 각종 사건·사고로 핵발전소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지역농산물 판매와 지자체의 이미지 손상이 발생해, 지자체 이름과 무관한 이름을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이와 별개로 국회에서는 기존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하, 방폐공단)의 이름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으로 바꾸는 법이 발의돼, 현재 소관 상임위인 산업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통과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법안의 발의자 역시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경주 출신 정수성 의원이고, 그는 이 법안을 “‘방사성폐기물이란 혐오시설이 경주에 있어, 지역민원으로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방폐공단의 담당부서였던 지경부 방사성폐기물과가 올해 산업부로 정부조직이 개편되면서 원자력환경과로 이름을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단지 지역민원 때문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역사가 깊은 핵에너지 관련 용어 논란

우리나라에서 핵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이름 논란은 한두번이 아니다. 핵발전·원자력발전은 처음 반핵운동이 소개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핵폐기장을 둘러싼 명칭에서는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원전수거물관리센터 등이 혼용되다가 결국 경주 핵폐기장의 이름은 경주와 방사성, 폐기물이란 단어가 모두 빠진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로 확정되기도 했다. 관광산업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들 3가지 단어를 반드시 빼는 방향으로 이름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수명연장과 관련해서 정부 스스로가 처음엔 수명연장이란 말을 사용하다가 계속운전이란 말로 바꾸었고, 현재 법적인 용어인 사용후핵연료도 언제부터인가 사용후원전연료, 사용후연료 등 이란 글자를 빼는 방향으로 혼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은 반핵진영 표현으로 위험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며, ‘원자력은 정부측 표현이라는 양 진영간의 팽팽한 긴장관계와 함께, 추진쪽에서는 최대한 부정적인 표현인 을 빼고자하는 고육지책의 일환이다.

이름을 바꾸면 소통이 안된다

그러나 이름에는 대상물의 특성이 담겨있는 소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꾸면 정보교환과 소통이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어로는 아무리 원자력이라고 외쳐도 한국수력원자력의 영어 명칭이 한국수력핵발전(Korea Hydro & ‘Nuclear’ Power Co.,LTD)이고,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의 영어 명칭도 월성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Wolseong Low and Intermediate Level Radioactive Waste Disposal Facility)인 이유는 한글을 영어로 옮겨봤자 그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많은 국민들, 특히 부산시민들이 고리핵발전소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지명이 포함되지 않는 이름은 발전소의 위치를 알기 힘들게 한다. 물론 이는 지역농·수산물을 팔 때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고 발생시 대피 여부 등의 정보를 알기 힘들게 만들고, 일상시기에는 핵발전소에 대한 관심을 더욱 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영광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면 인근 주민들은 이에 반응하지만, 한빛핵발전소라고 하면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단지 해당지역의 농·수산물 판로가 문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더 큰 혼란과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한수원의 비리와 은폐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그러한 피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 변경을 통해 일시적인 이익이 올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더 큰 혼란과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정부와 해당 지자체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발행일 : 201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