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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설> 원자력공학과 대학원생의 결심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학과 핵에너지


전국 여러 역광장에서 원자력 관련 학과의 교수와 학생들이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이 목격된다. 자신의 미래가 위협받고 자긍심이 하락하는 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탈원전 정책 반대가 최선이거나 유일한 길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생각난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몽환화』(히가시노 게이고 저, 비채 출판)



국내에도 인기가 높은 추리작가인 그는 이미 1995년작 <천공의 벌>에서 핵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며 자위대 헬기를 납치하여 시위를 벌이는 핵전문가의 이야기를 오싹하게 담아냈었다. 그가 2013년에 쓴 <몽환화>는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 탓인지, 핵에너지에 대해 보다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몽환화’는 에도 시대부터 비밀리에 전해지는 노란 나팔꽃을 말한다. 이 꽃이 가진 강력한 환각 성분 때문에 약으로도 쓰이지만 살인 사건을 일으키기도 해서 세상으로부터 감춰졌다는 것이다. 엄청난 위력을 갖지만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재하는 꽃이라는 양면적 성격을 작가는 핵에너지의 그것과 연결시킨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소타는 핵발전 분야에 진학하여 박사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학과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혼란에 빠진다. “사람들이 뭘 연구하느냐고 물어도 대답하기 곤란한 연구자, 얼버무릴 말을 찾는 연구자, 그게 우리야. 자업자득이지. 선견지명이 없었으니까.”


동료와의 대화 속에서 핵발전의 딜레마는 구체화된다. “일반적인 집은 방치하면 폐가가 돼.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달라. 방치한다고 저절로 폐로가 되는 게 아니야. 이를테면 발전을 중지해도 엄중하게 관리하고 신중하게 폐로 절차를 밟아야 해. 게다가 폐로 때는 방대한 양의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해. 그것을 처리하는 장소 또한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아. 그런 장소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분명하고. 가령 처리장이 생겨 거기에 묻어도 방사능 수준이 안전한 수치로 내려갈 때까지는 수만 년이나 걸리지.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런 무서운 선택을 수십 년 전에 이미 내려버린 거야.”


그런 고민 속에 소타의 선택은 오히려 핵발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도 일본이 원자력발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전을 포함해 지금까지보다 더 높은 기술이 요구될 거야. 가령 철수한다면 어떨까. 나는 추진할 때보다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제까지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해야 할 테니까.”


동료는 그런 그를 걱정한다. “네가 얘기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거, 엄청 배고플 거야.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도 받아야 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돼.”


소타는 담담히 대꾸한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핵발전이라는 빚을 원자력공학과 출신들이 다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그 빚을 나누어 부담하고 같이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탈핵의 한 부분이 아닐까.


김현우 탈핵신문 편집위원

탈핵신문 2019년 6월호(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