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스미스 지음, 강병철 옮김, 『원전, 죽음의 유혹』 꿈꿀자유, 2015
책의 표지 그림이 뭔가 들여다보니, 작은 물고기를 꼬드기는 빛나는 더듬이 뒤로 아귀의 커다란 입이 희미하게 보인다. ‘죽음의 유혹’이라는 한글 부제목에서 짐작되듯 핵발전의 한 면모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더 실감나는 것은 영어 원제목인 ‘핵룰렛(Nuclear Roulette)’이다. 핵발전의 룰렛이라는 복불복 게임은 요령을 많이 안다고 해서 늘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임일 리도 없다. 한 방법이 있다면 이 룰렛판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오는 것뿐이다.
환경관련 탐사보도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가 스미스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14가지 이유’를 풀어놓는 것으로 지면 강의를 시작한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책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저자는 핵발전소의 너무 느린 건설 속도와 감당할 수 없는 비용, 낮은 신뢰성과 비효율성을 우선적 이유로 꼽는 게 눈에 띈다. 지금의 조건에서 핵발전과 같은 경직적이고 경제적 ‘리스크’까지 큰 발전원을 고집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그래서 핵발전은 은폐와 구조적 기만을 수반하게 된다. ‘미국 최악의 원자로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언론인의 경력과 정보력을 지렛대 삼아 데이비스-베시, 디아블로 캐년, 인디언 포인트, 샌 오노프레, 버몬트 양키 등 미국의 주요 핵발전소의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을 전해준다.
그런데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핵발전의 암울한 현재와 전망을 넘어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이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들에 오히려 가슴이 뛴다. 에너지 효율성은 가장 값싸고 깨끗한 ‘제5의 연료’다. 재생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력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촉진하는 공공 정책과 제도의 사례들에서 벌써 많은 답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독점 대기업이 주도하는 초대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으며,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회피하지 않는다. “풍족함과 공정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답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반가운 이름들도 인상적이다. 추천사를 쓴 서민 교수는 ‘기생충에 방사능을 쏘이는 일을 한 뒤 기생충과 원자력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그 관심을 인간과 원자력의 관계로 확장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자는 서문 앞면에 “모든 도전에 미소와 영감으로 맞섰던 상냥한 선동가이자 작가이며 선구자였던 내 친구 어니스트 ‘칙 칼렌바크’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1975년에 반핵환경소설 『에코토피아』를 쓴 바로 그 유명한 칼렌바크로, 가 스미스가 이 책을 내기 얼마 전인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 인디언 포인트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방사능 피해를 경고하는 헬렌 칼디콧은 『원자력은 아니다』(양문출판사)의 저자이자 한국에도 친숙한 의사 활동가다. 노후한 버몬트 양키 핵발전소의 계속 가동을 둘러싼 공방에서는 바로 그 버니 샌더스 당시 상원의원은 “어떤 회사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낡아빠진 원전을 붙들고 있으리라 강요할 권리가 없습니다”라고 사자후를 날린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당신께, ‘대안 없이 비판하지 말라’는 당신께, 또는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단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한다면, 수많은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이 책이 무척이나 적절해 보인다.
탈핵신문 2017년 10월호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책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핵발전이 큰아들, 재생가능에너지가 막내아들이라고? (0) | 2017.12.13 |
---|---|
에너지 문제는 정치 문제임을 확인한다 (0) | 2017.11.08 |
시민참여와 에너지 민주주의의 당위성과 현실성 (0) | 2017.09.08 |
인류가 핵을 불러낸 순간 (0) | 2017.08.11 |
<새책소개>너무 이른 희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0) | 2017.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