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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고리,신고리관련)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 주민투표를 돌아보며…

기장해수담수공급 찬반 주민투표 16,014명 참여, 89.3% 해수담수 공급 반대

많을 때는 하루 100~150명의 젊은 엄마들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물을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겠다는 그 일념만으로 17,683(기장군 유권자 대비 29.5%)으로부터 주민투표 서명을 받으며 치러낸 기장 주민투표는 기장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2004년 부안, 2014년 삼척 그리고 2015년 영덕에서의 민간주도 주민투표의 흐름이 2016420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기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01512월 기준 기장읍(44,934), 장안읍(8,010), 일광면(8,133)의 유권자 중 실제 주민투표가 어려운 부재자(19대 총선 기준)를 제외한 총 59,931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기장에서의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은, 총 투표자 수 16,014명으로 총 유권자 대비 26.7%의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1개월의 짧은 공식 일정을 감안한다면 민간주도의 주민투표로써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투표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해수담수 공급 반대가 14,308(89.3%)으로, 찬성 1,636(10.2%)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기장군 장은읍, 경우기를 몰고 투표하러 오시는 어르신들

 

 

4·13 총선 이후 부산시 해수담수 강제 통수에 대한 불안감주민투표 강행

더더구나 이 주민투표는 지자체나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의 중립적인 태도 속에서 자유롭게 치러진 투표가 아니었습니다. 투표를 방해하는 수많은 시도를 넘어, 78기로 성사시킨 투표였습니다. 그간 자행된 투표방해 행위는 주민투표반대캠페인, 투표소 제공 학교 압박으로 투표소 지정 무산, 투표소별 감시자 배치, 불법 채증, 투표독려 현수막과 유인물의 훼손 및 탈취, 경찰의 치안유지 요청 거부, 세금으로 언론에 잘못된 정보 제공, 기장군의 편파적인 행정 및 지역주민조직 압박 등 그 사례를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방식으로 투표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수많은 방해행위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어려움은 짧은 시간에 주민을 조직하고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투표율을 더 높이고, 주민들에게 해수담수의 문제점을 널리 확산시킬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뒤 투표를 진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와 정부의 기만전술에 오랫동안 고통을 당해온 주민들로서는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결과에 따라 해수담수를 강제로 통수하려는 시도가 더 노골화되리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사람, 재원, 조직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것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강행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기장 주민투표는 악조건 속에서 치러진 주민들의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제일 먼저 부안, 삼척 그리고 영덕으로 이어진 민간주도의 주민투표 역사입니다. 평범한 주부들이 주축이 되어 감히 법적 효력이 없는 이 민간주도의 주민투표를 감행하게 된 것은, 더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그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민투표법 자체가 이미 부안 방폐장 싸움의 직·간접적인 결과로 마련된 것이라고 할 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보다 앞서 법을 이끄는 이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실효성을 믿었던 것입니다.

 

젊은 엄마들을 비롯해 900명의 자원활동가 결합부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연대

또한 기장 주민들은 기장해수담수화 시설이 결코 기장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기에, 부산시민사회단체의 광범위한 참여를 바탕으로 주민투표를 치러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22년 만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이 주민투표는, 연대의 사슬을 끊어 분절된 지역을 고립시키며 진행되어 온 정부의 전통적인 개발사업의 전략을 깨고 광역단위 연대의 틀을 복원한 중요한 운동이었습니다.

주민들로서는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다른 연대로 나아갈 길을 개척한 투표였습니다. 주민투표가 끝난 다음 날인 321() 기장군청에서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난관을 넘어 결과를 받아든 주민들은 기장을 넘어 고통받고 어려움에 부닥친 곳을 찾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껏 도와준 수많은 활동가의 노고에 대한 의례적인 감사의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필요성을 체감하였음을 고백하는 언사였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부안, 삼척, 영덕을 거쳐 기장으로 이어진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은 또 어딘가로 연결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기장 주민투표는 단순히 기장주민에게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산시민사회단체, 특별히 부산의 탈핵 진영에 큰 의미로 다가오는 역사적인 투표였습니다. 물론 투표 양일에만도 연 900명이 넘는 자원활동가가 결합하였고, 그 외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활동가와 재정적인 지원이 답지하였습니다. 하지만 탈핵부산시민연대라는 부산지역 탈핵연대체가 주축이 되어 기장주민과 전국단위의 역량을 조율하는 체험은 대단히 값진 교훈을 남겼으리라 여겨집니다. 또 이번 기장 주민투표는 고전적인 방식의 탈핵이슈에만 함몰되지 않고 영역을 확장한 체험으로써, 부산지역에서 향후 탈핵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을 익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투표 후 1인 시위를 이어가는 기장주민들

 

주민투표 결과를 반대운동의 동력으로 활용해, 해수담수 공급 반대 싸움의 2막 시작!

마지막으로 이번 투표의 가장 큰 의의는 주민들의 역량 강화입니다. 곧 많은 주민이 지치지 않고 주민투표의 결과를 반대운동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인 시위를 포함한 주민투표 결과 홍보, 그리고 더욱 강한 조직 구성을 통한 기장군과 부산시, 그리고 부산시상수도본부에 대한 직접적인 단체행동까지도 불사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민투표가 주민운동의 중요한 고비이지만 그것에 온전히 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가는 단계로 여길 줄 아는 역량을 확보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장주민들은 해수담수 공급찬반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그 싸움의 2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기장 주민투표 주요 경과

2008- 공업용수 공급 명목의 테스트베드(시험용) 해수담수화시설 추진

201411- 해수담수 수돗물 공급 계획 발표

2015124부산시, 해수담수 통수 결정 언론 통해 일방적으로 발표

2016113- 해수담수 공급반대 주민투표 돌입 기자회견

2016222-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출범

2016319~20-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 주민투표 및 개표

 

2016년

김준한(신부,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상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