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마피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원전 화이트아웃』, 와카스기 레쓰, 김영희 옮김, 오후세시, 2014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이 책은 무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줄거리를 미리 너무 알려주는 셈이지만, 후쿠시마사고 이후 높아진 일본내 핵발전 반대 여론을 거스르며 핵마피아의 갖은 공작에 힘입어 핵발전소들이 재가동에 들어가고, 핵발전소의 전력을 수송하는 50만킬로와트급 송전탑이 중국 공작원의 폭발물 테러로 무너지면서 일본 전체가 후쿠시마사고를 뛰어넘는 비상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들은 핵발전소마다 각종 안전장치를 추가하고 새로이 강화된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재가동에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지만, 신정 연휴와 겹쳐 쏟아진 폭설은 발전기와 발전차를 못 쓰게 만들었고, 노심이 멜트다운을 시작하고 뉴스를 본 주민들이 도로와 기차역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간토 전체가 마비되고 만다.
아무리 대비 태세를 갖춘다 하더라도 인간의 계산은 언제나 현실보다 협소하다는 것, 그리고 사고는 언제나 전례없는 경우로 다가온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흔한 재난 영화와 닮아있다.
밀양과 청도에서 그렇게 눈물을 쏟게 만든 송전탑이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는 점도 눈길을 끌지만, 이 책을 더욱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핵마피아 집단의 생생한 모습들이다.
전력회사와 노동조합이 여당과 야당을 나눠 의원들을 정치자금과 각종 이권으로 좌지우지 하는 것은 기본이고, 낙선 의원까지 살림을 챙겨주며 치밀하게 관리한다.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는 인기있는 현지사를 검찰 수뇌부까지 끌어들여 비리 사건으로 엮어넣고, 총리 관저 앞에서 금요일마다 진행되어온 반핵발전 시위는 일반참가자들을 분리시키고 핵심을 고립시켜 와해시키며, 원자력규제청에서 벌어지는 전력회사와 규제 당국 사이의 유착 현장을 고발한 내부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구속되게 만든다.
보수당의 정권 탈취 이후 핵발전소 재가동을 향해 무섭게 달려가는 이 과정에 입법·사법·행정부를 모두 포괄하는 정치권, 경제계, 언론, 전문가들이 죽을 맞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것은 일본전력연맹의 고위간부와 경제산업성의 실무 관료다.
후쿠시마에서 소를 키우며 살아온 아버지가 방사능이 검출된 소를 출하했다는 비난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한 후, 반핵 활동에 뛰어든 전직 방송인과 양심적인 공무원, 배우 출신의 참의회 의원, 의식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들 핵마피아에 맞서보지만 잇달아 패퇴하고, 핵발전소는 하나 둘 재가동의 수순에 들어선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 다수는 이제 핵발전 관련 뉴스는 지긋지긋하다며 관심을 돌리고, 전력산업 개혁을 흉내내는 작은 제스쳐와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협박 카드만 잘 활용하면 핵마피아 집단에게는 거칠 게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가동된 핵발전소에는 물론, 미흡한 설비와 부실 시공 그리고 테러 대비에 이르기까지 관료들도 예상치 못한 허점이 있었고, 비극은 되풀이된다. 하지만 핵마피아의 브레인들은 핵발전소의 노심이 또다시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일본의 핵발전을 지탱하는 몬스터 시스템은 머지않아 다시 숨을 쉴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본 사회 특유의 관계 문화와 정치권의 분위기가 깔려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마지막 장면까지도 헐리우드 재난 영화와 닮아있다. 그런데 헐리우드가 많은 경우 현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저자는 ‘와카사키 레쓰’라는 가명으로 이 책을 출간했는데, 일본 관료계에서는 실제 인물과 사건들을 넌지시 떠올리게 하는 책의 내용 때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가명을 쓴 이유를 짐작할 만 하다.
일단 우리는 핵마피아가 어떤 일들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은 어떠한지를 생각해 봄직 하겠다.
발행일 : 20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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