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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한울 관련)

신울진 1호기 항공기재해도 평가 톺아보기

 

신울진 1호기 항공기재해도 평가 톺아보기

 

자의적으로 안전을 평가해온 핵산업계의 민낯

 

* 아래 본문에서 밑줄친 10-710의 마이너스 7승, 10-810의 마이너스 8승을 의미합니다. 특수문자 표기가 안 되어 부득이 밑줄로 표시하고 안내문을 달았습니다. 참고로 지면 편집본을 첨부합니다.

 

 

신울진 1호기 항공기 충돌 재해평가 생트집?

 

 

지난 79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울진(신한울) 1호기의 운영허가를 승인했다. 신울진 1호기 운영허가 심사는 202011월에 보고안건으로 처음 논의가 시작되어, 20216월과 7월 본 안건 심사 두 번 만에 조건부로 운영이 허가됐다. 원안위가 안전성 심사를 완료하지 않고 조건부로 허가를 해 준 것은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 조건부 승인에 이어 두 번째다.

 

8개월 만에 신울진 1호기의 운영허가가 승인되었지만, 보수언론을 비롯한 찬핵진영에서는 전문성도 없는 원안위“1000만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로 생트집을 잡아 신울진 1호기 운영허가를 늦추고, 이후 조건부 사항이 이행되지 않으면 허가 취소나 고발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며 원안위와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보수언론과 찬핵진영이 ‘1000만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로 생트집을 잡았다는 사안은 항공기재해와 관련한 부분이다.

 

원안위는 2021년 7월 9일 142차 회의에서 신울진 1호기 운영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사진=원안위)

 

원안위는 8개월간 심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항공기재해와 관련해 검토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조건부로 운영을 승인해 주었다.

 

 

항공기 재해평가 왜 쟁점인가

비상활주로와 불과 3km 거리

 

 

신울진 1호기의 항공기 재해평가가 원안위 운영허가 승인 과정에서 왜 쟁점이 되었을까? 신울진 1호기는 죽변 비상활주로에서 3km 떨어진 곳에 건설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신울진 1호기는 국영항로군 훈련 공역안에 있다. 그러다 보니 신울진 1호기 운영허가 과정에서 항공기로 인한 재해평가와 항공기 충돌을 고려한 설계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었다.

 

원자력시설 등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피폭선량 기준을 초과하는 방사선 재해를 유발하는 항공기 재해도가 연간 10-7 수준을 초과하면 발전소 설계에 고려해야 한다. 즉 재해도를 평가했을 때 1000만 년 동안 1번 정도의 확률로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 예상 된다면 핵발전소를 설계 할 때 이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원안위 심사과정에서 신울진 1호기 주변으로 위치한 죽변 비상활주로’, ‘국영항로’, ‘군 훈련 공역에 따른 각각의 항공기 재해도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 평균 재해도는 2.47X10-7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보수언론과 찬핵진영이 주장한 소위 생트집 논쟁이 시작되었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항공기 재해평가

 

 

항공기 재해도 평가는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의 원자로 기술기준 규칙에 준하는 10CFR 5.150이라는 규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항공기 충돌 사고를 설계기준 사고로 정의해 정량적 평가를 하고, 그에 따른 설계와 설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2018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 표준설계 승인을 받은 우리나라 APR1400 핵발전소 역시 항공기 테러 등을 대비해, 신울진 1호기는 같은 모델인 신고리 핵발전소 4호기보다 격납건물을 60cm 두껍게 설계했다.

 

미국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2016년에 사고관리계획서를 법제화했다. 그 전에는 고리와 월성, 영광 등에서 항공기 충돌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없기도 했거니와 관련 규정도 존재하지 않아 항공기 충돌로 인한 사고를 설계와 건설, 심사과정에서 검토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기술한 것처럼 신울진 1호기 반경 3km에 비상활주로가 있고, 발전소가 국영항로와 군 훈련 공역에 포함되면서 이를 심각히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자력시설 등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핵발전소 설계에 고려하는 항공기 사고는 설계기준사고설계기준초과사고로 구분된다.

 

설계기준사고는 예상 가능한 항공기 충돌로 인한 사고를 말하며, 재해도 평가에서 사고 발생 확률이 10-7을 초과(1000만 년에 한 번 보다 더 잦은 빈도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핵발전소 설계과정에서부터 이를 반영해야 한다. 이때 9.11 테러와 같이 항공기 테러나 미사일 공격 등 예상이 불가능한 충돌 사고는 설계기준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항공기 테러나 미사일 공격과 같이 예상이 불가능한 충돌 사고는 설계기준초과사고로 분류되어 사고완화전략을 수립하게 되어 있다. 즉 항공기가 충돌하거나 미사일 공격이 발생하면 핵발전소의 중대사고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방사능 오염이 확산되는 것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만 수립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고관리계획서가 법제화되면서 2016년 이후 건설 허가를 받은 신규 핵발전소의 경우 사고완화전력을 포함해 설계기준초과사고를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가 이 규정에 따라 설계기준초과사고가 설계에 반영되었다.

 

문제는 2009년에 건설 승인이 난 신울진 1호기의 항공기 재해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원자력시설 등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항공기 재해도가 10-7을 초과하지 않으면 이를 설계에 반영할 필요가 없다. 앞서 기술한 바처럼 신울진 1호기의 항공기 재해도는 2.47X10-7이다.

 

 

모호한 규제지침과 자의적 해석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신울진 1호기의 재해도는 기준을 초과해 항공기 재해를 설계에 반영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10-7을 초과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10-7 수준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결정해 왔다며, 신울진 1호기의 항공기 재해도는 10-7 수준으로 재해 수준이 미미해 설계에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평가했다.

 

규제기준과 심사지침은 명확해야 한다. KINS2016년 사고관리계획서 법제화 당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함께 10-7 수준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확인하는 세미나를 했다고 한다. 사실상 10-7 수준이 어느 정도를 뜻하는 것인지 KINS나 원안위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KINSNRC와의 세미나를 통해 10-7 수준이란 자릿수, 즉 앞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몇 번째에 수가 나타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이를 근거로 KINS는 신울진 1호기의 항공기 재해도가 10-7 수준으로 설계에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KINS가 작성한 심사지침에는 10-7과 관련해 수준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심사지침서에 10-7이 총 12번이나 기술되어 있었으나, “정도라는 표현만 1번 등장했을 뿐, 그 외에는 정도수준이라는 단어가 아예 표기되어 있지도 않았다. KINS는 이를 단순한 표기상의 오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6년에 NRC의 자문을 받은 정도로 기준이 모호했는데, 이를 단순히 오기라 할 수 있을까? 원안위들은 수준을 정의한 문서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KINS2016년에 진행한 NCR와의 세미나 자료를 제출했다. “수준을 정의한 국내 규정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수준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자 KINS는 올해 518NRC로 신울진 1호기 문제를 질의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질의의 요지는 항공기 재해도가 2.47×10-7로 나왔는데, 이 경우 설계에 고려해야 하는가였다. 한국의 핵발전소 규제기준을 적용하는데 미국의 규제기관에 문의한 것도 어이가 없지만, KINSNRC의 답변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기까지 했다.

 

NRC이 경우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요지의 답변을 하며 여러 가지 조건의 데이터가 맞지 않고 불안하면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회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KINS미국 NRC에 서면질의 해 2016년에 확인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라며 10-7 수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계속 이어갔다.

 

 

정치적 압박에 못 이겨 또다시 조건부 승인

일관했던 2.47×10-7 8.75×10-8으로 수정

 

 

원안위 제139(2121.5.28.)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장을 비롯한 원안위 위원들이 국민의당 국회의원들로부터 질질 끌지 말고, 합의되지 않는 사항들은 조건을 걸고 허가해주라라는 압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KINS와 한수원은 625일 제141차 원안위 회의에 신울진 1호기의 항공기 재해도를 8.75×10-8으로 수정하여 제출했다. 그동안 KINS는 항공기 재해도가 2.47×10-7이라서 설계에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KINS는 항공기 재해도를 다시 평가하라는 명령도 없었는데, 계산 오류였다며 재평가한 수치를 8.75×10-8으로 원안위에 보고한 것이다. 결국, 142차 원안위 회의에서 신울진 1호기는 조건부로 운영이 허가되었다. 원안위는 1차 계획예방정비 때까지 항공기재해 저감을 위한 비행횟수 제한 등을 관련 기관과 협의하고 필요시에 후속 조치를 이행할 것, 평가방법론을 개발해 항공기 충돌 사고로 인한 방사선 누출 사고 빈도와 재해도를 다시 평가할 것 등을 조건으로 달았다.

 

보수언론과 찬핵진영이 ‘1000만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로 생트집 잡는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원안위의 모호한 심사규정과 그들만의 자의적인 평가 관행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 항공기 충돌 고려한 핵발전소 없다

 

 

신울진 1호기 심사과정에서 확인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항공기가 충돌해도 끄떡없습니다라는 말은 핵발전소를 견학해본 사람이라면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심사과정에서 확인되었듯이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핵발전소 중 항공기 충돌을 고려해 설계에 반영한 사례는 단 1건도 없다.

 

정수희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8월(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