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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만 년의 경고 메시지는 가능할까?

10만 년의 경고 메시지는 가능할까?



△ 피터 갤리슨의 2015년 다큐멘터리 핵의 봉인(Containment)”이 보여주는 화강암 스파이크의 이미지

 

핵폐기물은 방사성 물질 고유의 반감기가 지나는 수천수만 년 동안 유독할 것이다. 그래서 핵폐기물 처분은 지질학적, 물리적 안정성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래의 문명이 이 시설을 파헤치거나 파괴하여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를 포함하여 미래의 누군가가 지구에 와서 핵폐기물 시설을 보고 호기심으로 발굴하려 들지도 모른다. 10만 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 어떤 언어를 썼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 이후의 언어, 문화, 기술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먼 미래에도 이해할 수 있는 핵폐기물 경고를 지금 어떻게 작성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은 쉽지 않다.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1999년에 운영을 시작한 핵폐기물 격리 파일럿 프로젝트(WIPP)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승인돼 운영하는 심층 핵폐기물 저장시설이다. 비슷한 시설이 2020년대 중반에 핀란드(온칼로)에 문을 열 예정이다. 향후 10~20년 안에 시설이 가득 차면 동굴은 콘크리트와 흙으로 봉인되고, 부지를 표시하는 건물 단지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깊은 시간의 심연을 가로질러 소통하기 위한 시도가 함께 진행될 것이다.

 

먼 미래까지 위험성을 전하기 위한 제안들

 

△ WIPP 주변에 무작위로 뿌려져서 함부로 파헤치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한 도안

 

WIPP에서는 이 계획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한 픽토그램과 공격적인 구조물이 고려되었고, 위험을 알리는 텍스트는 유엔의 6개 공식 언어들과 지역 나바호족 언어로 번역되도록 제안되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와 같은 그림도 고려되었다. 초기 구상에는 전체 부지의 10외부 경계를 표시하는 7.6미터 높이의 비쭉 비쭉한 화강암 기둥 설치도 들어있다. 그리고 부지 내에는 실제 저장시설의 윤곽을 표시하는 추가적인 표식도 제시되었다. 이렇게 들어가지 말라는 의미의 상징물 한가운데에는 부지에 대한 정보센터 개념의 방이 만들어지며, 바람이 불 때 특유의 휘파람 소리를 내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 장치도 포함되었다. 또한, 풍화작용으로 경고를 읽을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하여 20피트 아래에 하나, 그리고 예비로 또 하나의 정보 자료도 포함되었다. WIPP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이 시설의 운영 기간으로 상정되는 1만 년 동안 유지되도록 특수용지에 인쇄하여 세계 곳곳의 문서고에 저장한다는 것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핵 기호학이라 할 만한데, WIPP의 제안들은 일정하게 공상과학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핵물리학자뿐 아니라 공학자, 인류학자, 공상과학 소설가, 예술가 등이 우리 이후의 미래에 치명적인 유산을 어떻게 경고할지를 두고 광범위하고 난해한 연구를 위해 모인 것이다.


하지만 부지를 콘크리트 가시 수풀로 덮거나, ‘핵 사제직책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실제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핵 사제는 언어학자 토마스 시벅이 1981년에 처음 제안한 것으로, 핵시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제와 같은 역할을 지정하여 여러 세대 동안 이 시설의 위험에 대한 지식을 전승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방사선 고양이(ray cat)’도 제안되었는데, 방사선에 노출되면 털 색깔이 변하는 유전자 조작 고양이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고양이의 색이 변하면 즉시 그 지역을 떠나도록 대를 이어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이 역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레이캣 무브먼트라는 문화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완전한 핵 기호학은 가능할까?

 

 

국제적으로 공인된 방사선 로고와 2007년에 공개된 새 로고

 

방사능에 대한 국제적 경고 기호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칼날 3개로 이루어져 있다. 1946년에 만들어져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11개국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진행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연구에 따르면 케냐, 인도, 브라질에서는 응답자의 6%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냥 프로펠러 모양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에는 이를 보완하여 빨간 바탕에 파장, 두개골, 도망가는 이미지를 추가한 더 복잡한 기호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전달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한 상징이 문화와 세대가 달라지면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핵폐기물 통으로 다가가서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의미의 그림을 반대 순서로 읽는다면 폐기물 통에 올라가서 병이 낫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1천 년 전에 쓰나미를 경고했던 표지석의 의미를 현대의 사람들도 이해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표지석 아래에 건물을 지었다가 큰 희생을 당했다.


화강암 기둥이 요행히 몇천몇만 년을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고고학과 도굴의 역사는 이런 경고가 무시되거나 더욱 호기심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은 무서운 저주와 함께 깊숙이 숨겨져 있었지만 침범당했다. 미국인들이 거대한 규모의 디자인을 고려하고 있을 때 북유럽 사람들은 더 조용한 접근을 선택했다. 핀란드의 온칼로는 경관에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설마 그곳에 핵폐기물이 있을 것이라 알고 지하 400미터를 파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카엘 마슨 감독의 2010년 영화 <영원한 봉인>은 이런 난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지를 거듭 묻는다.


결국 WIPP의 사례는 핵발전을 지속하는 모든 나라가 고민해야 할 숙제를 보여준다. 파리에 본부를 둔 핵에너지기구(NEA)2011년에 세대 간 기록과 지식 및 기억을 보존하는 기획을 시작했고 2019년에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사업은 인간이 부주의로 지질학적 처분장소에 들어갈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적 수단을 탐색했고 문헌 보관, 타임캡슐, 물리적 표식 등 여러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표식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보장하거나 안전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은 부지와 시설에 대한 정보와 물리적 표식, 만약을 위한 보완 장치들, 사람들의 기억 등 복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핵폐기물의 상징과 표식을 만들고 전달하는 일에 과학자뿐 아니라 예술가와 심리학자까지 나서는 이런 상황은 핵폐기물 처리가 토목공학과 핵물리학의 범위를 한참 넘어설 뿐 아니라 인간 인식과 행동의 지평 또한 엄청나게 넘어서는 일임을 알려준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1월(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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