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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왜 우리는 대만과 달리 탈핵국민투표가 안될까

칼럼




지난 11월 24일, 대만 국민투표에서 2025년까지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멈추기로 한 전기사업법 조항을 삭제하는 의견에 약 590만명(59.5%)가 동의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보수언론과 찬핵 진영에선 ‘탈원전 국민투표’ 요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만의 경우, 국민투표 직후 전기사업법의 해당 조항은 삭제되지만, 기존 탈핵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이다. 총 6기의 핵발전소 중 2기는 영구폐쇄 상태이며, 나머지 4기는 모두 2025년까지 수명이 끝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는 이를 수명연장할 계획도 없다. 설사 수명연장을 결정한다 할지라도 법적 절차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 때문에 2025년까지 가동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따라서 이번 국민투표는 상징적 법조항을 없앤 것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대만 국민들의 의견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보수언론이나 찬핵진영의 주장처럼 한국에서 탈핵정책 지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가능할까? 이에 대해서는 헌법 재판소의 판례가 있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실시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72조의 ‘중요정책’을 해석하는 지침을 판시한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예외 규정은 확장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되고, 축소적으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 안위’에 대한 개념 역시 비상사태를 전제로 한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헌법이 국민들의 직접 민주주의를 담기 위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투표를 많이 하고 있는 스위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헌법 개정 절차를 제외하고는 국민투표를 해 본 역사도 관련 규정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핵국민투표를 하자는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주장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이들은 그간 국민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요구를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심지어 이들은 지난 4월, 재외국민의 국민투표를 가능하도록 하는 국민투표법 개정도 반대했다. 이 법안은 아직도 통과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판례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가 성사된다할 지라도 이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음에 따라 국민투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핵문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더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의견을 묻는 절차도 더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법 개정이라도 해 놓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는 헌법을 바꾸는 것이 먼저다. 정말로 탈원전 국민투표를 하고 싶다면,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헌법 개정을 먼저 진행하고, 그 다음에 법 절차에 따라 탈원전 국민투표를 발의하라.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가짜뉴스나 선동을 일삼지 말고 말이다.


탈핵신문 2018년 12월호(복간준비호)